진화는 진보가 아니다.
환경 적응일 뿐이다.
지구상에는 150만종의 생물이 존재한다.
이같은 생물의 다양성은 인간이 진화체계의 맨 꼭대기에 있고 '진화=진보'라는 관점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또한 다윈의 진화론에선 자연선택과 적자생존이 종(種)의 유전자를 보존하는 최선의 전략이지만 이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생물들 또한 수없이 많다.
예컨대 코알라는 하루 20시간,나무늘보는 18시간씩 잠을 잔다.
천적들에겐 이보다 더 좋은 먹잇감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살아남았다.
반면 야생동물인 이리의 일종이었던 개는 인간과 친해짐으로써 먹이와 안전을 해결해 생존할 수 있었다.
무엇이 생물을 이토록 다양하게 만들고,살아남게 만들었을까? 진화에 얽힌 수수께끼들을 파고 들어가보자.
⊙ 왜 그렇게 진화했지?
뒤뚱거리며 걷는 펭귄의 모습은 참 우스꽝스럽다.
물속에서는 최고 시속 36km에 달해 그야말로 물 찬 제비지만 땅에선 정말 별 볼일 없는 존재다.
하지만 펭귄의 뒤뚱거림은 몸을 시계추처럼 진동시켜 운동에너지를 위치에너지로 변화시키는 에너지 고효율 기능을 한다.
펭귄의 숏다리는 두더지의 숏다리나 기린의 롱다리만큼이나 충분히 이유가 있다.
더구나 서식지에서 펭귄의 천적이라야 바닷속 범고래 상어뿐이니 여태껏 살아남은 것이 이상할 게 하나도 없다.
하루 20시간씩 자는 코알라는 편식으로 질병이 많다.
하지만 다른 동물은 먹지 않는 유칼립투스 나무잎만 먹으니 먹이 경쟁자가 없고,게다가 호주의 서식환경에선 천적도 없다.
육상동물 중 가장 빠르다는 치타는 순간 가속에선 최고이지만 20초 이내에 사냥하지 못하면 굶어야 한다.
사냥감이 지그재그로 뛰면 잘 못따라간다.
치타는 유전자 도박게임에서 순간 빠르기를 선택하는데 올인했던 것이다.
⊙ 선택된 가축과 '안나 카레니나 법칙'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는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말은 행복해지려면 수많은 요소들이 성공적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를 '안나 카레니나 법칙'이라고 하는데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총,균,쇠'에서 가축화할 수 있는 동물과 그렇지 못한 동물을 '안나 카레니나 법칙'을 통해 설명한다.
가축이란 인간이 번식과 먹이를 통제하는 동물을 의미한다.
가축의 용도는 고기,유제품,가죽,털,비료,운송,농업 등이다.
이런 점에서 고대에 가축화된 대형 초식성 포유류는 불과 5종(양,염소,소,돼지,말) 뿐이다.
이외에 단봉낙타,쌍봉낙타,라마와 알파카,당나귀,순록,물소,야크,발리소,인도소 등 9종이 한정된 지역에서 가축화됐다.
결국 세계의 148종에 달하는 대형 초식성 포유류 가운데 모두 14종만 가축화 시험을 통과했을 뿐이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개,고양이,토끼 등 작은 동물들은 대개 음식,의류 보온 등 제한된 용도로만 활용돼 가축화를 설명하는 데서 제외했다)
한니발 군대가 알프스를 넘을 때 이용했던 아프리카 코끼리도 길들이기는 했지만 감금상태에서는 번식시키진 못했다.
말,소와 달리 얼룩말과 들소도 가축이 되지 못했다.
다이아몬드는 많은 대형 초식동물들이 가축화에 실패한 이유로 △까다로운 식성 △느린 성장속도 △번식 애로 △골치아픈 성격 △겁먹는 버릇 △사회적 구조 등을 꼽았다.
여기서 사회적 구조란 무리 간 위계가 있어야 사람을 잘 따라 가축화가 용이하다는 점이다.
반대로 독자 세력권을 갖고 혼자 사는 포유류 중에서 가축화된 것은 고양이와 흰족제비뿐이라고 한다.
⊙ 진화는 진보가 아니다. 적응이다.
진화란 다양한 환경에 각 종들이 적응해 가는 과정에서 환경에 적합한 유전자가 살아남고 불리한 유전자는 도태되면서 서서히 돌연변이를 거쳐 새로운 종으로 탈바꿈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천적의 유무,서식지와 먹이의 특성,번식력 등이 모두 진화와 종의 생존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진화생물학자들은 인류가 생물 종 가운데 '가장 진화한 존재'라는 점을 부인한다.
'가장 진화한 존재'라는 말에는 진보의 의미가 담겨 있는데 인간이 동물보다 무엇이 낫다는 것이냐고 반문한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풀 하우스'(전체 시스템을 의미)에서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적응"이라며 "진화론의 세계에서 인류가 오만한 위치를 유지하기 위한 유일한 희망으로 진보를 붙잡고 늘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윈도 본래 진화가 진보로 읽히는 것을 꺼렸다고 한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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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이 세상사를 더 잘 설명해준다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1858)에서 제시한 진화론은 인류가 역사적으로 경험한 가장 거대한 사상의 대변혁으로 꼽힌다.
진화론은 이는 종교적 관념론(창조론)과의 격렬하고 오랜 투쟁 끝에 얻은 성취이기 때문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후대 학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보완·발전되는 동시에 극복되면서 생물학뿐 아니라 인간관·세계관 및 사회사상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수천년 동안 철학에서 미처 풀지 못한 인간본성의 문제를 오늘날 진화생물학,사회생물학,동물행동학 등이 더 잘 설명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관한 지식을 넓혀줄 대표적 교양서적들을 소개한다(대입 논술의 단골 제시문이기도 하다).
우선 이 분야의 대표적 학자로 꼽히는 에드워드 윌슨은 '통섭''인간본성에 대하여' 등을 통해 수천년간 이어져온 철학적 논의를 생물학적 출발점에서 다시 시작했다.
윌슨과 한 쌍으로 거론되는 리처드 도킨스는 쉬운 문체로 쓴 '이기적 유전자''눈먼 시계공' 등을 통해 인간의 이기주의와 이타주의를 함께 설명해 진화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인류의 역사와 문명에 왜 커다란 불균형이 존재하는가를 알고 싶으면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와 '제3의 침팬지'를 읽으면 된다.
다이아몬드는 인간 사회가 다양한 운명의 갈림길에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흥미롭게 펼쳐준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경이로운 생명'과 '풀 하우스'라는 쌍둥이 저작을 통해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다"라는 명제로 플라톤적 진보주의 사고를 뒤집는다.
이외에도 인간이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마르크시즘적 환경결정론을 반박하는 매트 리들리의 '본성과 양육', 스티븐 핑커의 '빈 서판'도 필독서로 꼽힌다.
독일 과학저널리스트인 외르크 치틀라우의 '다윈,당신 실수한 거야!'에서는 생존경쟁에서 적자만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