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박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진화한 결과

[Cover Story] 왜 호주의 동물들은 주머니를 갖고 있을까
호주 하면 떠오르는 동물은 캥거루다.

어미 캥거루의 주머니 속에서 고개를 밖으로 내밀고 있는 새끼 캥거루….

이런 사진을 보며 우리는 캥거루가 주머니 속에서 새끼를 기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코알라를 비롯한 많은 다른 호주 동물들도 주머니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캥거루나 코알라처럼 주머니 안에서 새끼를 기르는 동물을 유대류(有袋類)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주머니가 있는 종류라는 뜻이다.

지구상에는 330여종의 유대류가 있으며 200개가 넘는 종이 호주에 산다.

나머지는 아메리카 대륙에 일부 서식하고 있다.

호주의 동물들은 왜 주머니를 갖고 진화했을까?

⊙ 신기한 유대류의 세계

[Cover Story] 왜 호주의 동물들은 주머니를 갖고 있을까
캥거루나 코알라처럼 호주에 사는 동물들의 임신 출산 육아 방식은 일반 포유류(젖을 먹이는 동물)와는 상당히 다르다.

주머니를 가진 호주 동물들의 평균 임신기간은 30~36일 정도로 불과 한 달이 조금 넘는다.

유대류 중 가장 몸집이 큰 캥거루라고 해도 갓 태어난 새끼의 크기는 2.5㎝ 안팎에 몸무게는 1~2g 정도에 불과하다.

캥거루 중에서도 가장 몸집이 큰 황색캥거루 수컷이 다 자라면 몸무게가 100㎏에 육박하는 것과 비교하면 거의 10만분의 1에 불과한 셈이다.

갓 태어난 캥거루 새끼는 일반 포유류 태아의 발달 초기 모습을 하고 있으며 동물이라기보다는 빨간 색의 꿈틀대는 벌레처럼 보일 뿐이다.

사람으로 치면 임신 7주 정도된 태아가 엄마의 몸 밖으로 나온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이렇게 태어난 캥거루 새끼는 어미 몸에서 나오자마자 서둘러 어미의 배를 기어올라 주머니 속으로 들어간다(주머니 속에 새끼를 낳는 게 아니다).주머니 안은 안전할 뿐 아니라 젖꼭지가 있어 새끼는 충분히 먹고 따뜻하게 자며 무럭무럭 자랄 수 있다.

갓 태어난 새끼는 오직 앞발만 발달해 있는데 이는 출산 직후 어미의 배를 타고 기어올라 주머니에 다다르기 위해서다.

주머니 안에서도 젖꼭지에 매달리기 위해서는 앞발의 힘이 필요하기 때문에 신체 다른 부위에 비해 유독 앞발만이 발달한 상태로 태어난다.

어미의 주머니에 들어간 새끼 캥거루는 대체로 9개월가량을 주머니 안에서 지낸 후 세상 밖으로 나오며 생후 18개월까지는 주머니를 들락거리다가 이후에는 완전히 독립한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코알라 웜뱃을 비롯 호주에 사는 다른 유대류도 이와 유사한 출산 육아 과정을 거친다.

⊙ 왜 호주의 동물들은 모두 주머니를 갖고 있을까

그럼 왜 유독 호주에 사는 동물들은 거의 모두 주머니를 갖고 있고 벌레처럼 작은 새끼를 낳을까.

전문가들에 따르면 유대류 특유의 임신 출산 육아 방식은 모두 환경에 맞게 적응하는 과정에서 진화한 결과다.

호주대륙의 기후는 일부 해안가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매우 척박하다.

사막 내지는 준사막 지역이 대륙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몇 년 동안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역도 많다.

유대류는 바로 이 같은 척박한 기후에서 살아남는 데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진화해 오늘날에 이르렀다.

캥거루 새끼가 임신 후 불과 한 달여 만에 태어나는 것은 새끼가 어미 뱃속에서 머무르는 시간을 가급적 줄이기 위해서다.

새끼가 오랜 기간 어미의 몸속에서 자라야 할 경우 임신 기간에 닥칠 수 있는 각종 위험으로부터 새끼를 보호할 수 있는 확률이 낮아진다.

특히 어미가 오랜 가뭄 등으로 충분히 먹이를 먹지 못할 경우 새끼는 유산되거나 발육이 부진할 가능성이 높다.

또 대부분의 포유류에서처럼 임신한 암컷은 상대적으로 움직임이 둔해져 각종 천적의 공격으로부터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유대류의 새끼가 아주 작은 크기로 조산됨에 따라 새끼는 어떤 면에서는 상당한 위험에 노출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시간은 어미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기 전까지고 일단 주머니 속에 들어가면 비교적 안전하게 지낼 확률이 높다.

캥거루의 경우 다 자란 암컷은 거의 늘 임신 상태로 지내는 경우가 많으며 먼저 난 새끼가 주머니를 아직 떠나지 않았거나 가뭄이 들어 먹잇감이 부족할 경우 몸안의 수정란은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

수컷 캥거루 역시 건기에는 정자를 생산하지 않는다.

다시 우기가 와서 나무나 풀 등 먹잇감이 많아지면 몸 속의 수정란이 자라기 시작하고 수컷도 다시 교미할 준비를 하게 된다.

호주 유대류들의 라이프사이클은 모두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최적화되도록 진화했다는 이야기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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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 동물에 의해 유대류 점차 멸종위기

[Cover Story] 왜 호주의 동물들은 주머니를 갖고 있을까
그럼 호주에 사는 포유류는 모두 주머니가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호주에는 소나 양도 많고 토끼 고양이도 있고 딩고라고 부르는 들개도 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주머니가 없다.

모두 외부에서 인간에 의해 호주 대륙에 들어온 동물이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진화해 호주에 유입됐기 때문에 주머니를 갖고 있지 않다.

문제는 인간과 인간이 갖고 들어온 외부 유입 동물들로 인해 호주의 원주인 격인 유대류 중 상당수가 멸종했거나 멸종 위기에 놓여있다는 점이다.

특히 고양이와 딩고는 호주의 소형 유대류(주머니 쥐 종류)를 멸종의 위기로 내몰고 있다.

주머니 쥐 등 소형 유대류의 절반 이상이 개와 고양이가 호주에 들어온 이후 사라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 포식자는 월러비와 같은 소형 캥거루 종류에게도 매우 위협적이다.

소 양 토끼 등 초식 동물들도 호주 동물들에게 생명의 위협이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은 캥거루와 같은 동물과 풀 등 먹이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소나 양을 대량으로 사육하기 위한 목초지 개발도 호주 유대류들의 서식처 파괴로 이어진다.

호주에도 원주인격인 육식동물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현재 본토에는 전혀 없고 타즈마니아라는 호주 동남부에 위치한 섬에 사는 타즈매니안데블이라는 육식 유대류가 유일하다.

작은 반달곰과 너구리를 합해 놓은 것처럼 생긴 이 동물은 작은 동물을 잡아 먹거나 동물의 시체를 뜯어 먹고 사는데 현존하는 유일한 육식 유대류다.

호주에는 사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타즈매니안 울프라는 주머니 달린 늑대도 살고 있었다.

이 늑대는 오래 전에는 호주 대륙 전체에 분포했으나 수천년 전에 이미 본토에서는 사라졌고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타즈매니아 섬에 살다가 남획과 서식지 파괴 등으로 현재는 완전히 멸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