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선거의 정치경제학 … 경제원리로 풀어본 네거티브 선거전략
'민주주의의 축제'라는 선거.특히 대통령 선거는 앞으로 5년간 나라를 이끌 대표를 뽑는다는 점에서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된다.

하지만 들려오는 이야기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후보들끼리 상호 비방전에만 열을 올리면서 정작 앞으로 5년간의 비전에 대한 토론은 자취를 감추었다.

혹자는 남의 발목만 잡으려는 정치인 개개인의 자질 탓으로 돌리기도 하고,혹자는 선거 자체가 갖는 속성에서 이유를 찾기도 한다.

그동안 우리가 생글생글을 통해 배운 경제원리들을 활용해 네거티브(negative·상대방의 약점을 들춰내 공격하는 행위)가 선거판을 지배하는 이유는 뭔지,그 이면에는 어떤 작동원리가 돌아가고 있는지 알아보자.

⊙ 네거티브가 정책선거를 구축(驅逐)한다

우선 모든 정치인들이 선거에 뛰어들면서 "정책선거를 벌이겠다"고 부르짖지만 잘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한다'는 경제학의 금언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이 금언은 귀금속으로 동전을 만들던 시절,사람들은 오랫 동안 유통되어 닳아 버린 주화(악화)를 주로 쓰고 정작 귀금속 함량이 완전한 새 주화(양화)는 자기 집에 보관해 둔다는 데서 나왔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이런 경우처럼 선거에서는 네거티브 공세가 대중의 흥미를 더욱 유발하면서 정책 경쟁을 압도하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권자들은 정책의 중요성은 알지만 후보의 자질과 경력에 대한 시비가 훨씬 알아듣기 쉽고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는 경향이 있다.

선거라는 장(場)에서 자신을 팔아야 하는 후보와 정당들은 유권자들이 좋아하는 '떡밥'을 던져줄 수밖에 없다.

1위 후보만이 당선되는 승자독식의 선거제도에서 상품(후보 자질)의 차별성이 작을수록 정치인들은 네거티브에 골몰하게 되고,그만큼 3주간의 짧은 공식선거 기간에 정책 경쟁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네거티브의 내용이 조금만 어려워져도 효과를 발휘하기 힘든 것도 이런 맥락이다.

내용이 어려워질수록 대중은 흥미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주가조작 관련 의혹이 이번 대선의 가장 큰 쟁점으로 부상했지만 관련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이 단적인 예다.

⊙ 선거 시장에서의 '역선택'

네거티브에 골몰하는 후보들과 이에 열광하는 유권자들은 역시 경제학에서 면죄부를 찾을 수 있다.

불완전한 정보로 질 낮은 상품을 구매하는 등의 비정상적인 선택을 설명하는 '역선택(逆選擇)'의 문제가 그것이다.

역선택이란 시장(중고차,보험,채용 등)에서 정보비대칭으로 인해 좋은 것은 사라지고 나쁜 것만 남는 현상을 가리키는 경제학 용어다(생글생글 114호,9월17일자 14면 참조).

대통령 선거라는 시장에서 상품을 고르는 유권자도 역선택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후보들이 자신의 좋은 경력만 내세울 뿐 부정적인 정보는 감추므로 정확히 어떤 자질과 능력을 가진 인물인지를 유권자가 판단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상반된 생각과 철학을 가진 후보들이 서로 경쟁하며 상대 후보의 공약을 비판하는 것은 유권자들에게 더욱 사실에 근접한 정보를 제공해 역선택을 줄이는 장치가 된다.

상대 후보를 공격할 때 '후보에 대한 검증'이라는 명분을 내거는 것도 이런 이유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변명에도 한계는 있다.

후보 간에 제기하는 비판과 의혹이 사실이 아닐 경우 유권자들은 또다른 역선택을 범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는 결국 거짓으로 밝혀진 의혹 제기가 승부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

1992년 대선에서 당시 김대중 민주당 후보에 제기된 남파간첩 연루 의혹,1997년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에 대한 청와대 선거자금 수수의혹,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패배로 몰고간 병역비리 의혹 등이 그 예다.

⊙ 네거티브와 지지율의 탄력성

최근 김경준씨의 국내 송환과 함께 BBK 주가조작 문제가 이슈화되면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지지율이 소폭 내려갔다.

가격에 따라 수요가 변화하는 상황을 경제학에서는 '탄력성'이라는 말로 표현하는데 후보의 지지율(수요)은 결국 네거티브(가격)에 탄력적일 수밖에 없다.

패배한 쪽이 5년간 '야당'이라는 멍에를 지고 가야 하는 대통령제 국가에서 후보 간 상호 비방은 피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네거티브는 결국 복잡한 것을 싫어하고 쉬운 이야기와 선정성을 쫓는 유권자들 자신 때문에 번성하게 된다.

투표에 대한 권리가 중요한 만큼 정책과 네거티브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위한 고민은 민주사회를 살아가는 유권자의 '의무'라는 점을 생각하자.

노경목 한국경제신문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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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의 밴드왜건 효과와 중위투표자 정리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후보자 간의 비방전만이 아니다.

선거의 결과를 좌우하는 요소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선거과정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특성 중 하나로 밴드왜건(band-wagon·악대차) 효과를 들 수 있다.

축제행렬이 악대차를 따라가듯 유권자들이 별다른 고민 없이 가장 앞서나가는 후보에게 표를 주는 상황을 의미한다.

특히 매주 발표되는 후보의 지지율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는 상황에서는 이 밴드왜건 효과가 힘을 얻게 된다.

밴드왜건 효과는 또 지지율의 급등과 급락을 설명해 준다.

특정한 사건과 관련해 오르거나 내린 지지율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 그런 보도를 접한 유권자들이 자신의 의사를 바꾸고,이런 성향이 다음 여론조사에 나타나 연쇄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2002년 대선 당시 새천년민주당 후보였던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이 당내 경선을 거치며 몇 개월 사이에 5% 수준에서 70% 이상까지 올라간 것도 일정 부분 밴드왜건 효과에 근거한다고 볼 수 있다.

'중위투표자 정리'도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특성이다.

주요 정당이 보수나 진보 성향의 표를 각각 확보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도성향의 표를 더 많이 끌어오는 후보가 승리하게 된다는 것이다.

유권자들이 이념적 성향보다는 지역색에 따라 투표하는 한국에서는 호남과 영남에 비해 지역색이 옅은 중부지역이 선거의 결과를 결정짓는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지난 대선에서 호남을 기반으로 둔 민주당이 영남에 뿌리를 둔 한나라당을 이긴 것도 수도이전 공약으로 충청권의 표를 얻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선거 전체의 규율과 룰을 관장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존재도 변수가 된다.

선관위는 대선에 앞서 선거운동과 관련된 규제사항을 내놓는데 이것이 특정 정당에 유리하기도,불리하기도 한 것이다.

예컨대 이번 대선은 지난 대선과 견줘 인터넷을 이용한 선거운동에 대한 규제가 크게 강화됐는데 이는 젊은층에 인기있는 후보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