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링컨은 혼자서 노예를 해방시켰을까?

경제성장과 기술혁신이 역사를 바꾼다

미국인들은 링컨을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꼽는다.

미국의 분열을 막고 흑인 노예들을 해방시켰다.

하지만 링컨이 처음부터 노예해방론자는 아니었다.

오히려 노예제를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노예해방을 가능케 한 것일까?

'피터 래빗'이란 토끼 그림동화로 친숙한 영국 작가 베아트릭스 포터를 다룬 영화 '미스 포터'를 보면 100년 전만 해도 최고 선진국이던 영국에서조차 여성의 사회활동에 제약이 많았다.

하지만 20세기 이후 여성의 지위는 비약적으로 신장됐다.

여성들의 자의식이 깨어났기 때문일까?

역사 교과서를 보면 흔히 위인의 등장이나,집단의 자각을 가장 큰 역사의 동인(動因)으로 기술하는 경우가 많다.

과연 그것만일까?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지만 근본적인 '경제적 토대'가 뒷받침되지 않고선 대개 실패하게 마련이다.

실제로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무수한 왕조가 명멸했다.

역사의 변혁도,태평성대도 경제성장과 기술혁신이 전제되지 않고선 불가능하다.

무엇이 역사를 움직이는지 살펴보자.

⊙ 경제성장 없이 인권 없다

노예해방의 직접적인 계기는 스토우 부인의 '톰아저씨 오두막'과 링컨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왜 미국 북부는 노예제를 일찌감치 폐지한 반면 남부는 노예제 고수를 주장했을까.

흔히 북부는 공업지대였기에 공장 노동력이 필요했던 반면 남부는 대규모 농장 위주여서 노예제를 고수했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미국의 영토가 확장되고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노예제와 임금노동 사이에 역전현상이 일어난다.

노예는 주인이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줘야 하는데,노예의 의식주 비용이 공장노동자 임금보다 비싸지게 된 것이다.

또 해외에서 값싼 면화가 대거 수입되면서 남부의 경제상황이 노예제를 유지하기 어렵게 된 것도 그 배경이다.

이렇듯 경제적 토대는 인권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가난한 나라치고 민주주의가 성숙된 나라를 찾아보기 어려운 점도 그런 이유에서다.

⊙ 여성해방은 가출한 '노라'가 시작했을까?

여성해방의 중대한 모멘텀으로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1879)에서 주인공 노라가 자기 인생을 위해 집을 뛰쳐나가는 장면이 꼽힌다.

이후 세계적으로 여성해방 운동에 불이 붙었고 우리나라에서도 1920년대 이른바 신여성이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보통의 여성들이 맘껏 일자리를 가질 수 있게 된 요인은 다른 데 있다.

여성이 집에서 애 낳고 살림만 해야 했던 가장 큰 이유는 가사노동과 잦은 임신 탓이었다.

이를 대신할 사람이 없는데 사회진출은 꿈도 못 꿀 일이다.

20세기 가속화된 기술혁명은 가전제품을 통해 세상을 바꿔놨다.

세탁기,냉장고,식기세척기,다리미,재봉틀… 등.

즉 여성을 하루종일 끝나지 않는 가사노동에서 해방시킨 것이다.

또 하나의 요인은 콘돔,피임약 등 피임법의 발명에 따른 임신공포에서의 해방이다.

베아트릭스 포터가 활동하던 시절 영국 여성들은 약 30년의 가임기간 동안 평균 14회 임신(출산,유산 포함)을 했다.

그러니 일할 수 있는 나이에 '임신→출산→임신→출산…'을 해마다 거듭한 셈이다.

이런 상태에선 여성들이 사회활동을 결심한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콘돔이 여성해방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이다.

⊙ 200년 전 가장 빠른 운송수단은?

아놀드 토인비는 산업혁명을 격렬한 현상이 아니라 점진적이고 연속적인 기술혁신 과정이라고 평가했다.

경제학자들이 산업혁명기 영국 경제성장률을 추정한 결과 연 평균 1% 수준이었다고 한다.

이는 경제규모가 두 배가 되는 데 무려 72년이 걸리는 것이다.

우리나라나 최근의 중국이 두 자릿수 고도성장을 구가했거나 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정체 상태였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200년 전인 1807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운송수단은 기차가 아니었다.

당시엔 말의 속도를 능가하는 것이 없었다.

증기기관차는 1814년 스티븐슨에 의해 발명돼 1825년에야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시속 20㎞도 안 되는 마차의 속도에서 우주를 왕복하기까지 걸린 기간은 불과 200년이 채 안된다.

오늘날 우리는 물질문명을 너무도 당연한 것처럼 여기지만 실상 인류 역사의 대부분은 헐벗고 굶주리며 살아온 것이다.

경제성장과 기술혁신이 역사를 바꾸고 인간의식을 바꿔왔다.

이제 개개인의 발명·혁신·변화는 가장 효율적 조직인 기업을 통해 구현되고 있다.

그 결과 빌 게이츠가 말한 대로 '생각의 속도'로 변화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문명을 쉽게 폄훼해서는 안 되는 이유들이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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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토크에 해운대행 버스가 굴러다니는 까닭은?

김정호 자유기업원장이 쓴 「블라디보스토크의 해운대행 버스」는 제목 자체가 흥미롭다.

왜 이런 제목이 붙었을까?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는 한국의 중고 버스들이 본래 한글 표지판을 떼지 않은 채 시내를 질주하고 있다고 한다.

해운대행, 중곡동행, 방학동행 등 종류도 다양하다.

한글 표지판에 달려 있어야 진품 한국산이 되고 그래야 러시아 사람들이 더 값어치가 있다고 여긴다는 얘기다.

캄보디아에도 한국 백화점 셔틀버스들이 백화점 로고를 붙인 채 운행되고 있다고 한다.

중앙아시아나 동남아의 몇몇 가난한 나라 시장에 가보면 눈길을 끄는 모습이 있다.

녹슨 막대기, 폐가구에서 떼낸 널판지, 걸레로도 쓰기 힘든 낡은 옷….

이런 것들을 어떻게 팔 생각을 했으며, 사는 사람은 또 누구일까 궁금하게 만든다.

이들 나라에서 거의 쓰레기나 다름없는 것들이 거래되는 이유는 한마디로 생산되는 게 없기 때문이다.

물자를 만드는 기업이 없으니 모든 게 부족해 녹슨 쇠막대기조차 귀한 물건이 되는 것이다.

시장경제에서 기업은 마치 미인대회에 나온 후보들과 같다.

다수의 소비자에 의해 최고로 인정받기 위해 더 싸게, 더 좋게, 더 편리하게 등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그래서 기업활동이 왕성한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들을 서로 뚜렷이 구분하는 특징이 있다.

전자는 한결같이 선진국, 민주주의, 시장경제인 반면 후자는 후진국, 독재정권, 중앙통제경제이다.

기업활동을 옥죄는 나라치고 잘 사는 나라를 볼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