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이기심의 역설 "장사꾼 다 죽이자 城도 무너져"
"스페인 군대가 벨기에의 안트베르펜성을 함락시키기 위해 대규모로 침공하였다.

수적으로 부족한 안트베르펜 주민들은 모두 성 안으로 들어가 항전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성 안의 식량이 떨어지고 말았다.

이에 성 안의 상인들이 성 밖으로 몰래 빠져나가 성을 포위하고 있던 스페인 군사에게 뇌물을 주고 인근 농촌마을에서 식량을 구입하여 성 안의 주민들에게 판매하였다.

이러한 소문이 성을 관리하던 가톨릭 사제의 귀에 들어가자 식량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은 고리대금업자나 다름없다면서 장사꾼들을 모두 잡아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이 일이 있은 후 견고한 안트베르펜 성은 1주일도 견디지 못하고 스페인 군대에 무참히 점령당하였다."

교육인적자원부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만든 새 경제교과서 48쪽('시장의 종말은 도성(都城)의 종말')에 나오는 읽기 자료 내용이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상인의 행동이 잠시나마 도성을 적으로부터 방어하는 역할을 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무엇이 상인들로 하여금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전선을 뚫고 나가 식량을 구입해 오게 만들었을까?

성 안의 주민을 돕기 위한 것도 아니요 조국 벨기에를 구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상인들의 이기심이다.

이기심을 기반으로 한 상인들의 식량 판매가 성 안 주민들을 살리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기심은 시장을 통해 공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경제활동을 하지만 시장의 가격기구는 이를 모든 사람들에게 이로운 조화로운 상태로 만들어 낸다.

애덤 스미스는 이를 보이지 않은 손의 역할이라고 했다.

이기심을 이타적 결과로 만들어내는 시장의 이러한 기능을 우리는 주위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동대문시장 상인,인터넷 쇼핑몰 사장,동네 문방구점 주인,신문배달 아르바이트 학생 등등. 이들은 한결 같이 돈을 벌기 위해 물건을 팔거나 신문을 배달하지만 소비자들은 그 덕분에 자기가 원하는 물건을 손쉽게 사용하는 혜택을 입게 된다.

말하자면 이기적 목적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이타적 행동-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행동-을 해야 하다.또 그렇게 하도록 유인책을 주는 것이 시장경제다.

흔히 무엇을 어떻게 만들고 이를 누구에게 나눠줄 것인가 하는 문제를 3대 경제문제라고 한다.

시장은 3대 경제문제를 간단히 해결한다.

수많은 시장 참가자들이 원하는 수요 공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면 이를 바탕으로 생산할 물건과 생산 방법,그리고 사람들에게 나누는 방법이 정해진다.

시장 참여자들이 자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점에서 국가가 무엇을 어떻게 생산해 국민들에게 나눠 줄 것인지를 결정하는 계획경제(명령경제)와 다르다.

계획경제는 소련을 비롯한 옛 동구권 국가의 멸망 이후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시장경제와 계획경제의 중간 성격을 띠고 있는 사회적 시장경제도 유럽 일부 국가에서 시행됐으나 문제해결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점차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시장은 지금까지 경제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체제로 입증되고 있다.

하지만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시장이 경쟁적이어야 하고 다른 사람에게 예기치 않은 영향을 주는 외부효과가 없어야 한다.

또 군대 경찰 같은 공공재는 시장이 공급할 수 없다.

미국 스탠퍼드대 경제학 교수인 존 맥밀런은 이러한 경우를 포함해 시장이 제역할을 하기 위한 다섯 가지 요건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시장이 제기능을 하려면 정보가 원활하게 소통되어야 한다.

상품 가격 품질 등에 대한 정보를 빨리 알 수 있어야 사람들이 낮은 가격에 좋은 품질의 제품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활한 정보 유통은 최근 들어 중요성이 점점 더 부각되고 있다.

네덜란드의 알스메르 꽃시장은 1980년대 이후 수천명의 상인들이 동시에 경매에 참여할 수 있는 독자적인 경매 시스템을 개발, 세계 최대의 꽃시장으로 부상했다.

남미의 콜롬비아와 케냐 등 아프리카 지역에서 공수돼 오는 수천만 송이의 꽃을 상인들이 24시간 이내에 유럽 아시아국가로 실어 나를 수 있도록 알스메르는 디지털 경매 시계로 실시간 경매를 실시하고 있다.

둘째, 재산권이 보호돼야 시장이 제대로 작동한다.

거래는 곧 소유권 이전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재산에 대한 소유권이 명확하지 않으면 거래가 이뤄질 수 없다.

특히 기업들 간 치열한 신기술 개발경쟁으로 특허 재산권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음악 소트프웨어를 불법으로 다운로드해서 사용하는 행위가 방치된다면 기술 개발 의욕은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셋째 제3자에 대한 영향을 감안해야 한다.

공해를 일으키면서 물건을 만들지 못하도록 해야 하고 기술개발처럼 다른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행동은 장려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약속을 서로 믿을 수 있어야 하고 경쟁이 장려되는 시장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세계 각국은 시장이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꾸준히 개선하고 있다.

특히 정보기술 발전으로 시장의 취약점은 급속히 보완되고 있다.

인터넷 가격비교사이트에 들어가면 판매자 가격을 즉시 비교할 수 있다.

판매 경쟁이 심하면 심해질 수록 소비자들은 많은 혜택을 누리게 된다.

시장경제가 성숙해지면서 소비자 주권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는 것이다.

박주병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bpar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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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는 약점도 있다…호·불황 쏠림현상, 투기도

시장은 본질적 취약점을 갖고 있다.

시장 참여자들이 가격을 보고 의사 결정을 하기 때문에 수시로 쏠림 현상이 나타난다.

경기 사이클상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고 일시적으로 공급이 모자라면 가수요가 겹쳐 투기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취약점은 시장의 제도를 고치거나 새로 제정함으로써 보완되고 있다.

시장 참여자들의 소득은 경제활동에 기여한 만큼 지급된다.

노력한 만큼 보수를 받으므로 사실상 형평에 맞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소득 차이가 누적될수록 재산 격차가 커지고 이는 사회적 갈등을 야기시킬 수 있으므로 소득 재분배 정책이 불가피하게 된다.

학자들은 이를 두고 시장은 공평한 분배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물론 '로버트 노직'같은 학자는 소득은 생산에 기여한 결과물이므로 별도의 소득 분배 정책이 필요없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공리주의자나 존 롤스를 지지하는 학자(롤시안)들은 소득격차를 줄이기 위해 재분배정책을 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소득이 커질수록 효용이 체감하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을 근거로 고소득자에게서 세금을 거둬 가난한 사람에게 넘길 경우 사회 전체적으로 총효용은 증가한다는게 이들의 논리다.

물론 소득재분배 정책이 과도하게 시행될 경우 시장 참여자들의 일할 의욕이 낮아져 총생산량이 줄어드는 역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사람들은 시장경제를 치열한 경쟁,약육강식의 법칙과 연결지어 비도덕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최근 몇몇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에이즈 치료약을 개발한 후 높은 가격에 판매하려 하자 이를 구매할 수 없는 가난한 아프리카 국가와 국제 구호단체들이 크게 반발했다.

이에 따라 일부 제약회사들은 에이즈치료약이 다른 나라로 흘러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는 조건 아래 아프리카 국가에는 저렴한 가격으로 에이즈치료약을 공급했다.

한때 제약회사와 시장경제를 비도적적이라고 비난했던 비판 여론도 잠잠해졌다.

시장경제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처럼 문제점을 고쳐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