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짝퉁이라도 만들어본 나라가 잘 산다
지구본을 돌리다 보면 위 아래로 길게 펼쳐진 아메리카 대륙을 찾을 수 있다.

대륙의 잘록한 허리를 기준선 삼아 이를 남·북 아메리카로 나눈다.

남아메리카는 부존자원이 풍부하고 식물도 잘 자라는 지리적 특징을 갖고 있다.

반대로 북아메리카 지역은 산지와 사막이 많고 상대적으로 척박한 토양이다.

그런데 지금의 현실을 보면 이상하게도 미국 캐나다 등 북아메리카 지역 국가들은 살림살이도 넉넉하고 정치적으로도 성숙한 선진국인 반면,남아메리카 지역엔 여전히 빈국이거나 정치와 경제가 불안한 나라들 투성이다.

아시아 지역을 둘러봐도 마찬가지다.

인도네시아 레바논 방글라데시 미얀마 등은 대표적인 자원 부국이거나 씨만 뿌려 놓으면 곡식이 저절로 자라는 여건을 가진 나라들이지만 국민의 생활 수준은 아직 형편없다.

하지만 자원도 별로 없고 농사에 많은 수고를 들여야 하는 한국 일본 싱가포르 대만 등의 국가는 그들보다 훨씬 부유하다.

이런 차이를 가른 것은 무엇이었을까.

경제적 번영을 이룩한 국가의 공통점을 찾아보면 답을 얻을 수 있다.

가장 먼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은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나라들이다.

개인의 재산권을 보장하면서 경제 활동의 자유를 줬더니 국민들이 스스로 땀 흘려 일해 재산을 불리더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시스템이 전부는 아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물질적 풍요를 이룩하겠다는 구성원들의 강한 의지가 뒷받침돼야 한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경제하려는 의지(the will to economize)'라고 말한다.

경제하려는 의지를 북돋우는 데 시장경제만큼 좋은 제도가 없다는 게 인류가 쌓아온 경험적 진실이다.

과거 소련을 비롯한 공산국가들은 국민경제를 정부의 손아귀에 넣고 제어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을 바탕으로 구성원 모두가 '능력껏 일한 뒤에 필요한 만큼만 나눠 갖는' 이상(理想) 사회를 꿈꿨다.

하지만 이게 유토피아적 환상이었음은 동구권 국가들의 몰락과 북한의 비참한 현실이 잘 보여준다.

경제 활동의 위험과 그에 따른 과실을 개인에게 맡겨두지 않고서 국가가 직접 주체가 돼 끌고 가는 시스템으로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각 경제주체의 '경제하려는 의지'를 꺾기 때문이다.

옛 중국이 과학·기술 분야에서 중세 유럽에 비해 뛰어난 성취를 거뒀음에도 정작 근대화에선 뒤처진 이유를 학자들은 관료를 떠받들고 상업과 공업은 천시하는 '사농공상'의 신분제와 개인의 경제적 자유가 제한된 데서 찾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 벌어지는 공공부문에 대한 과도한 쏠림현상 역시 경제성장의 원동력을 뿌리부터 갉아 먹는다는 지적이다.

차기현 한국경제신문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