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심의 진화…그 비밀을 벗기다

경북대 최정규 교수 사이언스에 논문…모의실험 결과 이타적 구성원 많은 집단이 전쟁 이겨

경제학은 인간을 이기적이라고 가정한다.

경제학의 할아버지 애덤 스미스는 '우리가 매일 아침 맛있는 쇠고기국을 먹을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이 우리를 돕기 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 열심히 일하기 때문이라며 사회는 이기심으로 인해 발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자기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할 때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최선의 결과를 가져다 준다.

사회는 이기심을 기반으로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주위를 한 번 더 둘러보면 이기적이지 않은 인간의 행동도 종종 볼 수 있다.

헌혈을 하거나 자원봉사를 하거나 언제 볼지 모를 낯선 식당의 종업원에게 팁을 주거나….

이런 행동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자신보다 남을 위한다는 이타심이라야만 설명이 가능하다.

그런데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이타심은 이기심에 비해 열성이다.

이타심은 이기심보다 적은 보수를 갖게 해 주므로 서로 경쟁하면 이타심을 가진 사람이 점차 사라진다.

말하자면 적자 생존의 법칙에 의해 도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위에 흔히 보이는 이타적 인간과 그들의 행동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많은 학자들은 이에 의문을 품고 연구를 거듭해 왔다.

자신과 피를 나눈 가까운 혈연관계이기 때문에 이타성을 보인다는 혈연가설이나 게임이론에 따라 자신에게 혜택을 주기를 기대하고 혜택을 베푼다는 호혜성 가설 등 여러 가지 가설을 주장하며 이타심의 진화 과정을 증명하려고 해왔다.

하지만 진화 과정을 완벽하게 설명해 주는 학설은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국내 한 경제학 교수가 게임이론을 바탕으로 '집단을 위한 자기 희생'이 이타심 진화의 비밀이라고 주장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Cover Story] 집단의 이기심이 곧 집단내 이타심
최정규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40)는 지난달 26일 이타심이 집단 중심주의와 결합해 오늘날까지 진화해 왔다는 내용의 논문을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실었다.

경제학자가 과학저널에 논문을 실은 것도 화제이지만 이타심의 배경을 경제이론의 하나인 게임이론으로 설명했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자기집단 중심적 이타성과 전쟁의 공동 진화(The Coevolution of parochial Altruism and War)'라는 제목의 논문은 '인간은 자신이 속한 집단 구성원에게는 이타적이지만 외부인에게는 적대적 모습을 띠는 속성이 있고 이 두 가지 속성이 결합할 경우 전쟁에서 경쟁자를 이길 확률이 높아진다'고 밝혔다.

쉽게 말하면 이타심이 집단 중심주의와 만날 때 생존 경쟁에서 살아 남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미국 산타페연구소의 새뮤얼 보울스 교수와 공동으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실시했다.

수천~수만년 전 각각 26명으로 구성된 가상의 부족 20개(이타,이기,적대,관용의 4가지 속성이 서로 결합된 부족들)가 있었다고 가정하고 이 부족들이 5만세대 동안 서로 교류하면서 어떤 행동 속성을 진화시켜 왔는지 분석했다.

실험에서 이타성과 함께 외부와의 교류를 차단하고 전쟁을 유발하는 자기집단 중심성(적대성)이 승패의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논문은 두 속성이 결합된 자기집단 중심적 이타성(Parochial Altruism)을 가진 부족이 다른 부족에 비해 가장 많은 자손을 퍼뜨리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최 교수의 자기집단 중심적 이타성 이론은 이타적 구성원이 많은 집단이 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말해 주지만 전쟁을 국가 간 전쟁이 아니라 기업 간,조직 간 경쟁으로 바꾼다면 우리 주변의 여러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경쟁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기업은 이타적(회사 동료를 위해 헌신하는) 구성원이 많은 기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직 구성원들이 소속감 애사심을 가질 수 있도록 조직의 리더는 관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셈이다.

민족주의나 종교적 갈등,전쟁 역시 자기집단 중심적 이타성의 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최 교수는 "높은 소득을 올리는 사람이 자기 나라에는 세금을 내며 공공 혜택을 다른 사람과 나누면서도,빈곤 상태에 처한 다른 나라 국민들은 돕기를 꺼리는 것도 자기집단 중심적 이타성의 예"라고 밝혔다.

문제는 이타심이 나타나는 집단의 범주다.

혈연에서 종족으로,민족으로,세계로 확대되는 시야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보다 높은 단위의 집단으로 확산되어 가는 과정이라야지 열위의 좁은 범주로 밀려 내려가는 것은 결코 발전이라고 할 수 없다.

협소한 가족주의나 과도한 민족주의에서 해방되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주병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bpar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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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경제학 생물학 넘나들며 진화생물학 한우물 파고 있어요"

세계적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논문을 실은 최정규 교수는 경제학을 연구하면서 생물학을 함께 연구하고 있다.

우리 속담에 한 우물을 파라는 말이 있는데 무슨 소리냐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최근 학자들은 연관 학문을 함께 연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경제학자나 정치학자들이 생물학을 연구하고 경영학자들이 심리학을 함께 연구하는 경우이다.

이를 학제 간 연구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다른 분야 학자들도 같은 주제로 연구하는 경우가 많아 교류하다 보면 해법을 쉽게 찾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학자들끼리 서로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그렇지 만나 보면 똑같은 고민을 같이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경제학자들은 사람들의 상호작용을 고민하고 있는데,영장류 학자들은 원숭이들의 상호작용을 고민하고 있고,또 누구는 물고기들의 상호작용을 고민하고 있기도 하지요.그러다 보니 같은 주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할 수 있어요."

최 교수는 2005년 2월 경북대 교수로 오기 전 학제 간 연구의 산실로 주목받는 미국 산타페연구소에서 1년6개월간 박사후 연구원으로 지냈다.

당시 경제학과 생물학을 연구한 게 이번 논문을 쓰는 데 밑거름이 됐다고 한다.

최 교수는 전공이 게임이론이다.

게임이론과 생물학을 연계시켜 진화생물학을 꾸준히 연구하고 있다.

"인간의 행동 속성에는 자신에게는 손해이지만 타인,특히 자기 집단에 이익을 주는 이타성과 타민족 타종교 등 외부 집단에 적대적 태도를 보이는 자기집단 중심 사고가 있습니다.

이 두 상반되는 속성을 놓고 학자들이 진화적 관점에서 오랫동안 연구해 왔으나 명백하게 '진화'를 입증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게임이론을 통해 이를 밝혀 낸 것이지요."

최 교수는 산타페연구원에 근무할 당시 지도교수와 함께 진화 생물에 대한 연구논문을 세계적 생물저널에 싣기도 했다.

인접 학문으로 연구 범위를 넓혔지만 사실은 진화생물학 한 우물을 계속 파고 있는 셈이다.

최 교수는 이번에 연구 논문이 사이언스지에 실린 공적을 인정받아 경북대가 우수 연구 논문을 저술하는 교수에게 주는 학술장려금을 처음으로 받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