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대개 이기적이다.

자기 자신,자기 것,자기 몸 등 자기 영역과 타인의 영역 간에 명백한 경계를 긋는다.

인류 탄생 이래 그렇게 진화해왔고,오늘날 인간의 행동도 그렇다.

가령 자살하는 방법이 다양하겠지만 스스로 숨을 참아 자살한 사람은 없다.

인간 의지로 순교,순국을 할 수는 있어도 이에 앞서 본능이 숨참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이기심은 인간의 생물학적인 본성인 동시에 인간 행태를 탐구하는 철학,윤리학,경제학,사회학 등의 기본 전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기적 인간들 사이에서 이타적 인간이 '멸종'되지 않고 살아남아 면면히 맥을 이어왔다는 점 또한 사실이다.

상반된 이기심과 이타심의 공존하는 세상은 흥미로운 관찰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기적인 인간이,아무 대가 없이 남을 도울 수 있을까.

아니면 무엇을 바라고 돕는 것일까? 그 기이한 질문에 대해 살펴보자.

⊙동물들의 희생과 이타적 행동

[Cover Story] 인간은 이기적인데 뭘 바라고 남을 도우려 할까?
디즈니 만화영화 '라이언 킹'에는 다람쥐 비슷한 티몬,즉 미어캣(meerkat)이 등장한다.

이들은 땅굴에서 집단서식을 하고 돌아가며 보초를 선다.

서식지에 포식자가 나타나면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큰 소리로 경계신호를 보내 집단이 위험에 대처할 수 있게 돕는다.

이기적이었다면 자신이 먼저 조용히 숨었을 것이다.

중남미 일대에 서식하는 흡혈박쥐는 포유류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데,간혹 사냥에 실패해 굶어죽을 지경인 박쥐들이 나온다.

그러면 피를 많이 먹은 동료 박쥐들이 위 속의 피를 토해내 굶주린 박쥐를 먹인다.

집단 생활을 하는 꿀벌의 삶은 희생 자체다.

암컷인 일벌들은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할 능력이 없음에도 평생 여왕벌이 낳은 알을 돌보고 외부의 침입이 있으면 침을 쏜 뒤 죽음을 맞는다.

침을 쏘는 순간 침과 함께 내장이 모두 쏟아져 나온다.

이 밖에 아프리카의 영양인 임팔라는 서로 목을 긁어주고,침팬지 사회에선 서로 털을 다듬어주거나 먹이를 공유하고 권력다툼 때 동맹을 맺어 돕는 등의 이타적 협조행위를 한다.

⊙혈연선택 가설 vs 반복-호혜성 가설

수많은 학자들이 이타적 행위의 원인을 규명하는 데 매달렸다.

대표적인 이론이 혈연선택 가설과 반복-호혜성 가설이다.

혈연선택 가설은 생물학자인 윌리엄 해밀턴이 1963년 제기한 이론으로,혈연을 돕는 것이 내 유전자의 번성을 돕는다는 관점으로 이타적 행위를 설명한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우리 속담과 같은 맥락이다.

또한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를 통해 이타적 행위를 그 '행위자'가 아니라 그렇게 하도록 명령하는 '유전자' 입장에서 보자는 파격적인 주장을 내놨다.

즉,인간은 유전자를 담는 그릇에 불과하며,유전자는 자신을 최대한 복제해내는 것이 목표여서,인간의 이타적 행위가 실제론 유전자의 이기적 행위라고 설명한다.

반면 반복-호혜성 가설은 내가 어떤 상대와 다시 만날 가능성이 없다면 내가 어떤 행동을 하든 보복 당하지 않으므로 상대방에게 호의를 베풀 이유가 없어진다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만남이 지속되고,내가 베풀면 상대도 베푼다는 전제가 있다면 이타적 행위가 자연스레 설명된다는 것이다.

이타적 행동이 실은 치밀한 거래라는 분석이다.

⊙완벽한 가설은 없다

혈연선택가설은 부모-자식 간의 헌신적 행동을 설명하는데 가장 적절하다.

하지만,생전 본 적 없는 사람에게도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사례를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휴가철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다 죽는 사람들이나 일본 전철역에서 취객을 구하고 숨진 이수현 씨가 그렇다.

헌혈도 내 피가 누구에게 수혈될 지 모르는 상태에서 이뤄진다.

반복-호혜성가설은 있을 때 돕고,없을 때 도움을 받는 상호부조(보험)로 더 큰 효용을 낸다는 점에서 훨씬 설득력이 있다.

상황의 반복성과 호혜성은 강한 구속력을 갖는다.

특히 '반복적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가장 유효한 전략은 '눈에는 눈,이에는 이'식의 'Tit for Tat'(맞대응 전략:상대가 협조하면 협조,배신하면 배신으로 대응)이었다.

하지만 두 번 다시 볼 이유가 없는 사람에게도 이타적 행위가 일어나는 점을 설명하지 못해 2% 부족한 가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타적 행동에도 대가가 있다

종교는 이타적 행위에 대한 보상으로 천국,극락 같은 내세(來世)를 내세운다.

아무런 보상없이 이타적 행위를 하는 사람의 경우엔 '성인'(聖人)으로 추앙받는다.

시장경제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이기심에서 출발하지만 이를 유지하는 것은 이타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밤잠 설쳐가며 신기술을 개발하고 불평 없이 헌신적으로 서비스하는 등의 이타적 행위는 곧바로 가격을 통해 보상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교나 경제 영역이 아닌 분야에서의 인간의 이타적 행위는 어떤 보상이 있을까?

여러 가설들은 인간이 자신의 유전자 확대라는 '이기적 목적'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다고 본다.

인간과 동물에겐 자손 번성이 보상이 된다.

또한 남을 도움으로써 암묵적으로 남도 나를 도울 것이란 예측이 가능하다.

이타적 행위를 저축하는 셈이다.

이 밖에도 이타적 행위에 수반되는 명예,자족감,우월감 등의 감정적 효용도 빼놓을 수 없다.

국내외에서 확산되는 기부문화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기심이 충만한 세상에서 면면히 이어지는 이타심으로 인해 좀 더 살만해지는 기분이 드는 것도 이타적 행위가 사회에 주는 크나큰 보상이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k@hankyung.com

◈참고도서

△최정규 '이타적 인간의 출현'(뿌리와 이파리)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을유문화사)

△매트 리들리 '이타적 유전자'(사이언스북스)


----------------------------------------------------------

학문의 대통합시대: 전통적인 영역·경계가 사라진다

경제학자인 최정규 경북대 교수가 세계적인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논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학문의 대통합이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그의 연구가 경제학적 토대의 논문에 사회생물학의 다양한 연구성과들을 접목해왔기 때문이다.

이렇듯 요즘 학문은 영역과 경계의 구분이 무너지면서 종횡무진 획기적 성과물들을 내고 있다.

그 중심에 사회학,경제학 등과 만난 생물학,즉 사회생물학과 진화생물학이 있다.

대입 논술에서 자주 다뤄졌던 에드워드 윌슨('통섭''인간본성에 관하여'),재레드 다이아몬드('총·균·쇠'),리처드 도킨스('이기적 유전자'),스티븐 제이 굴드('풀 하우스') 등은 한결 같이 이 분야의 석학들이다.

일찍이 생물학자인 개럿 하딘은 최 교수와는 반대로 종종 경제학자로 오인됐다.

그가 1968년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 '공유지의 비극'이 과학자보다 오히려 경제학자들에게 수십년간 화두가 됐기 때문이다.

1970년대 로버트 액설로드는 정치학자이면서도 경제학의 중요 개념인 반복적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최상의 전략이 'Tit for Tat'이었음을 입증했다.

애덤 스미스나 칼 마르크스도 출발은 철학이었지만 인간 본성을 연구하다 보니 결국 경제학적 주제를 탐닉하게 된 것이다.

수학자들도 다양한 응용을 통해 학문 통합을 시도한다.

쿠르트 괴델은 불완전성 정리를 통해 완벽한 수학체계나 논리체계는 존재할 수 없음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는데,이는 인간 이성의 한계를 증명한 것으로 평가된다.

인공지능의 실현 가능성에 부정적인 암시를 준것으로 평가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쓴 루이스 캐럴은 본업이 수학자인데 논리적·철학적 동화 작가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