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에 수반되는 불가피한 물가상승 현상
수요 없어 물가 떨어지는 디플레이션도 큰 문제
물가가 꾸준히 그리고 현저하게 상승하는 현상을 '인플레이션(inflation)이라고 한다.
경제학에서는 인플레가 발생하는 원인을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보고 있다.
총수요가 공급 여력을 넘어서면서 발생하는 인플레를 '수요 견인(demand-pull) 인플레이션'이라고 한다.
반대로 원자재값 상승으로 기업의 생산비가 늘어나면서 생기는 전반적인 가격 상승을 '비용 인상(cost-push) 인플레이션'이라고 부른다.
수요가 늘어 생기는 인플레는 경제 성장 과정에서 어느 정도는 불가피한 현상이다.
경기가 좋다 보니 늘어나는 가계 소비,기업 투자,정부 지출 등은 모두 총수요를 끌어올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투자로 나타나는 생산력 확충은 항상 총수요 증가보다 조금씩 더딜 수밖에 없기에 물가는 오르게 된다.
⊙인플레이션은 언제나 나쁜 것인가
보통 물가가 오르는 것은 좋지 않은 일로 여겨진다.
가족들을 위해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주부가 시장에 갔더니 한 달 전까지 1000원 하던 배추 한 포기가 4000원으로 올랐다면 구입을 망설일 수밖에 없다.
외식을 하려 해도 등심 1인분에 4만~5만원 하는 가격표를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 같은 물가 상승(인플레)이 가장 나쁜 경우는 월급이나 기타 소득은 그대로인데 내가 사려는 물건값만 올랐을 때다.
쓸 돈은 그대로인데 물건값만 오른다면 필요한 물건을 예전만큼 살 수 없다.
하지만 소득이 함께 올라간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만약 소득이 물건값보다 더 많이 오른다면 오히려 기분 좋은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경기 상승기에 나타나는 초과 수요는 기업의 투자를 자극하고 이 때문에 노동에 대한 수요도 늘어 임금이 오르는 게 보통이다.
따라서 물가가 오르는 만큼 임금도 올라 개인이나 가계에 미치는 영향은 최소화된다.
이처럼 화폐의 실질가치 하락이 모든 상품과 임금에 동시다발적으로 반영되기만 한다면 개별 경제 주체의 유·불리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경제 현상을 화폐 측면과 실물 측면으로 나눠서 보는 신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은 이런 논리로 인플레가 경제에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 바 있다.
⊙디플레이션과 '오즈의 마법사'
초과 수요로 생기는 인플레이션보다 거꾸로 수요가 너무 없어 물가가 떨어지는 디플레이션(deflation)이 더 위험할 수 있다.
인플레와는 반대로 디플레가 발생하면 화폐의 실질가치가 올라가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소비를 하지 않고 장롱 속에 돈을 넣어두기만 해 경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르는 1990년대 일본의 장기 불황도 이 같은 디플레이션 때문이었다.
1896년 프랭크 바움의 소설 '오즈의 마법사' 역시 디플레이션이 민생을 파탄내는 현실을 우화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당시 미국은 중앙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금의 양만큼만 돈을 찍어내는 '금본위제'를 시행했다.
금이 모자라다 보니 화폐량이 경제 규모를 따라가지 못해 물가가 계속 떨어지는(화폐가치가 올라가는) 디플레이션을 겪었다.
농작물 가격이 폭락해 피폐해진 농민과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가 각각 허수아비와 나무꾼으로 소설 속에 등장한다.
바움은 이 소설을 통해 이 같은 현실을 비판하고 금과 함께 화폐 발행의 근거에 은(銀)을 추가해 화폐 유통량을 늘릴 것을 촉구했다.
에메랄드 성을 찾아가는 주인공 도로시가 마지막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한 마법의 은구두가 바움이 주장한 '금·은 본위제'를 상징하는 장치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걱정스러운 이유
그러나 현실에서는 같은 인플레이션 압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상품과 그렇지 않은 상품이 있게 마련이다.
어떤 실물자산을 보유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때문에 인플레가 생기면 부동산,귀금속 등 상대적으로 값이 많이 오르는 자산에 대한 투기심리가 확산된다.
이 같은 투기 수요는 또다시 가격 상승의 원인이 돼 인플레를 더욱 심화시키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인플레가 돈을 빌린 사람에게 이익을 안겨주기도 한다.
100만원을 대출해 1년 후에 10만원의 이자를 붙여 갚는다고 했을 때 그 기간 동안 물가가 100% 올랐다면 똑같은 화폐의 실질가치는 절반으로 줄어 상환 부담이 줄어든다.
반대로 빌려준 사람이 그만큼 손해를 입게 된다.
따라서 인플레이션을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돈을 빌려주는 쪽에선 손해를 막으려고 이자를 물가상승분만큼 더 많이 받으려 할 것이다.
즉 명목상의 이자율(10%)에다 물가상승률(100%)을 반영해 연간 110%로 이자율을 매길 것이란 얘기다.
경제학에서는 이 같은 현상을 '피셔 효과'라고 부른다.
인플레가 이처럼 이자율을 끌어올리기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또한 원자재 등의 가격이 외부 요인에 의해 오르면서 생기는 비용 인상 인플레는 경제에 안 좋은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이는 총수요의 증가와 관계없이 생산비 자체가 올라 물가를 밀어올리기 때문이다.
치솟은 생산비가 국내 물가에 반영되면 수요는 더욱 줄어 경제를 점점 침체 국면으로 빠뜨릴 수 있다.
이렇게 경기가 좋지 않은데도 물가만 오르는 현상을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즉 악성 인플레로 설명하기도 한다.
우리가 글로벌 인플레 현상을 우려 섞인 눈으로 바라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국 등 신흥 개도국의 호황에 따라 국제 유가와 원자재값이 올라 국내의 수요 증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비용 인상 인플레가 찾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웃 나라 잔치로 인해 우리 경제가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라는 이중고로 고통을 받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차기현 한국경제신문 기자 kh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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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에 돈 싣고 다닌 超인플레이션
인플레이션이 지나치면 경제 주체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다.
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이나 1993년 내전을 겪은 유고슬라비아에서 나타난 '초(超)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이 그 사례다.
이들 국가는 전쟁비용,복구비용 등을 조달하기 위해 밤낮으로 돈을 찍어내는 방법을 택했다.
때문에 물가상승률이 몇 달 새 수천만 %씩 치솟으며 경제가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
사람들이 지폐를 수레에 싣고 다니며 물건을 산다거나 값이 폭등한 장작 대신 휴지조각으로 변해버린 돈을 땔감으로 사용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같은 초 인플레이션 상황에서는 가급적 돈을 덜 보유할수록 유리하기 때문에 이에 따른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들어간다.
우선 '구두창 비용(shoeleather costs)'을 들 수 있다.
수중에 돈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사람들이 실물자산을 찾아 떠돌아 다니거나 은행을 자주 들락거리느라 들어가는 시간과 불편함을 구두창이 닳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메뉴 비용(menu costs)'이란 말도 나왔다.
이는 각 경제 주체들이 팔려는 물건의 가격을 치솟는 물가에 맞춰 자주 조정하고 국가는 초고액권 화폐를 새로 발행하는 등 제도를 정비하는 데 들이는 비용을 식당 주인이 메뉴판의 가격표를 수시로 교체해야 하는 수고로움에 빗댄 것이다.
수요 없어 물가 떨어지는 디플레이션도 큰 문제
물가가 꾸준히 그리고 현저하게 상승하는 현상을 '인플레이션(inflation)이라고 한다.
경제학에서는 인플레가 발생하는 원인을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보고 있다.
총수요가 공급 여력을 넘어서면서 발생하는 인플레를 '수요 견인(demand-pull) 인플레이션'이라고 한다.
반대로 원자재값 상승으로 기업의 생산비가 늘어나면서 생기는 전반적인 가격 상승을 '비용 인상(cost-push) 인플레이션'이라고 부른다.
수요가 늘어 생기는 인플레는 경제 성장 과정에서 어느 정도는 불가피한 현상이다.
경기가 좋다 보니 늘어나는 가계 소비,기업 투자,정부 지출 등은 모두 총수요를 끌어올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투자로 나타나는 생산력 확충은 항상 총수요 증가보다 조금씩 더딜 수밖에 없기에 물가는 오르게 된다.
⊙인플레이션은 언제나 나쁜 것인가
보통 물가가 오르는 것은 좋지 않은 일로 여겨진다.
가족들을 위해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주부가 시장에 갔더니 한 달 전까지 1000원 하던 배추 한 포기가 4000원으로 올랐다면 구입을 망설일 수밖에 없다.
외식을 하려 해도 등심 1인분에 4만~5만원 하는 가격표를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 같은 물가 상승(인플레)이 가장 나쁜 경우는 월급이나 기타 소득은 그대로인데 내가 사려는 물건값만 올랐을 때다.
쓸 돈은 그대로인데 물건값만 오른다면 필요한 물건을 예전만큼 살 수 없다.
하지만 소득이 함께 올라간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만약 소득이 물건값보다 더 많이 오른다면 오히려 기분 좋은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경기 상승기에 나타나는 초과 수요는 기업의 투자를 자극하고 이 때문에 노동에 대한 수요도 늘어 임금이 오르는 게 보통이다.
따라서 물가가 오르는 만큼 임금도 올라 개인이나 가계에 미치는 영향은 최소화된다.
이처럼 화폐의 실질가치 하락이 모든 상품과 임금에 동시다발적으로 반영되기만 한다면 개별 경제 주체의 유·불리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경제 현상을 화폐 측면과 실물 측면으로 나눠서 보는 신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은 이런 논리로 인플레가 경제에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 바 있다.
⊙디플레이션과 '오즈의 마법사'
초과 수요로 생기는 인플레이션보다 거꾸로 수요가 너무 없어 물가가 떨어지는 디플레이션(deflation)이 더 위험할 수 있다.
인플레와는 반대로 디플레가 발생하면 화폐의 실질가치가 올라가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소비를 하지 않고 장롱 속에 돈을 넣어두기만 해 경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르는 1990년대 일본의 장기 불황도 이 같은 디플레이션 때문이었다.
1896년 프랭크 바움의 소설 '오즈의 마법사' 역시 디플레이션이 민생을 파탄내는 현실을 우화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당시 미국은 중앙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금의 양만큼만 돈을 찍어내는 '금본위제'를 시행했다.
금이 모자라다 보니 화폐량이 경제 규모를 따라가지 못해 물가가 계속 떨어지는(화폐가치가 올라가는) 디플레이션을 겪었다.
농작물 가격이 폭락해 피폐해진 농민과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가 각각 허수아비와 나무꾼으로 소설 속에 등장한다.
바움은 이 소설을 통해 이 같은 현실을 비판하고 금과 함께 화폐 발행의 근거에 은(銀)을 추가해 화폐 유통량을 늘릴 것을 촉구했다.
에메랄드 성을 찾아가는 주인공 도로시가 마지막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한 마법의 은구두가 바움이 주장한 '금·은 본위제'를 상징하는 장치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걱정스러운 이유
그러나 현실에서는 같은 인플레이션 압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상품과 그렇지 않은 상품이 있게 마련이다.
어떤 실물자산을 보유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때문에 인플레가 생기면 부동산,귀금속 등 상대적으로 값이 많이 오르는 자산에 대한 투기심리가 확산된다.
이 같은 투기 수요는 또다시 가격 상승의 원인이 돼 인플레를 더욱 심화시키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인플레가 돈을 빌린 사람에게 이익을 안겨주기도 한다.
100만원을 대출해 1년 후에 10만원의 이자를 붙여 갚는다고 했을 때 그 기간 동안 물가가 100% 올랐다면 똑같은 화폐의 실질가치는 절반으로 줄어 상환 부담이 줄어든다.
반대로 빌려준 사람이 그만큼 손해를 입게 된다.
따라서 인플레이션을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돈을 빌려주는 쪽에선 손해를 막으려고 이자를 물가상승분만큼 더 많이 받으려 할 것이다.
즉 명목상의 이자율(10%)에다 물가상승률(100%)을 반영해 연간 110%로 이자율을 매길 것이란 얘기다.
경제학에서는 이 같은 현상을 '피셔 효과'라고 부른다.
인플레가 이처럼 이자율을 끌어올리기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또한 원자재 등의 가격이 외부 요인에 의해 오르면서 생기는 비용 인상 인플레는 경제에 안 좋은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이는 총수요의 증가와 관계없이 생산비 자체가 올라 물가를 밀어올리기 때문이다.
치솟은 생산비가 국내 물가에 반영되면 수요는 더욱 줄어 경제를 점점 침체 국면으로 빠뜨릴 수 있다.
이렇게 경기가 좋지 않은데도 물가만 오르는 현상을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즉 악성 인플레로 설명하기도 한다.
우리가 글로벌 인플레 현상을 우려 섞인 눈으로 바라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국 등 신흥 개도국의 호황에 따라 국제 유가와 원자재값이 올라 국내의 수요 증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비용 인상 인플레가 찾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웃 나라 잔치로 인해 우리 경제가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라는 이중고로 고통을 받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차기현 한국경제신문 기자 kh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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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에 돈 싣고 다닌 超인플레이션
인플레이션이 지나치면 경제 주체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다.
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이나 1993년 내전을 겪은 유고슬라비아에서 나타난 '초(超)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이 그 사례다.
이들 국가는 전쟁비용,복구비용 등을 조달하기 위해 밤낮으로 돈을 찍어내는 방법을 택했다.
때문에 물가상승률이 몇 달 새 수천만 %씩 치솟으며 경제가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
사람들이 지폐를 수레에 싣고 다니며 물건을 산다거나 값이 폭등한 장작 대신 휴지조각으로 변해버린 돈을 땔감으로 사용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같은 초 인플레이션 상황에서는 가급적 돈을 덜 보유할수록 유리하기 때문에 이에 따른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들어간다.
우선 '구두창 비용(shoeleather costs)'을 들 수 있다.
수중에 돈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사람들이 실물자산을 찾아 떠돌아 다니거나 은행을 자주 들락거리느라 들어가는 시간과 불편함을 구두창이 닳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메뉴 비용(menu costs)'이란 말도 나왔다.
이는 각 경제 주체들이 팔려는 물건의 가격을 치솟는 물가에 맞춰 자주 조정하고 국가는 초고액권 화폐를 새로 발행하는 등 제도를 정비하는 데 들이는 비용을 식당 주인이 메뉴판의 가격표를 수시로 교체해야 하는 수고로움에 빗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