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서도 오랜 논쟁…80년대 이후 시장원리 중시하며 가격보다 진입장벽 감시

[Cover Story] 독점은 무조건 규제해야 하나
"독점금지법의 영역에 대해서는 지금도 학자들 간에 논란이 있다.

기업들이 가격을 고정시키는 행위는 명백히 경제적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것이고 당연히 불법으로 처벌되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기업 관행은 경쟁을 제한하는 것처럼 보여도 나름대로 정당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정부가 독점금지법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여 기업 활동에 제약을 가할 때는 매우 조심해야 한다."(맨큐의 경제학 420쪽)

독점금지법(우리나라는 공정거래법)은 기업이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정한 규칙이다.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당연히 엄한 규칙이 있어야 하고 그 규칙을 지키지 않은 선수는 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규칙이 경기 진행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선수들의 기량 발휘에 방해가 된다면 문제가 될 것이다.

시장의 규칙인 독점금지법의 적용 범위를 둘러싸고 학자들도 오랫동안 논쟁을 벌여 왔다.

독점금지법을 둘러싼 대표적인 논쟁은 구조주의(Structuralism)와 자유주의(Liberalism)의 대립이다.

미국 하버드대를 중심으로 한 구조주의는 독점의 폐해가 시장 집중 자체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집중된 시장 구조가 기업 간 단합을 용이하게 만들어 높은 이윤을 얻게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구조주의는 집중된 시장 구조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면서 회사 분할 등 강력한 규제를 주장했다.

1890년 제정된 미국 셔먼법에 따라 대형 석유회사 스탠더드오일과 통신회사 AT&T가 여러 개의 자회사로 분할된 것은 구조주의 이론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이에 반해 자유주의는 독점기업 자체보다 독점기업의 행위를 문제삼는다.

대부분의 독점 기업은 다른 기업보다 우월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며 독점기업 자체를 문제삼을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슘페터 같은 학자는 자본주의의 발전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장기적 관점에서 본 기술 혁신이라며 기술 혁신을 위해 독점적 산업 구조를 받아들여야 한다고까지 주장한다.

자유주의자들은 독점적 지위를 이용한 시장 질서 파괴 '행위'만 규제하고,정부 실패 가능성을 들어 그것도 가급적 최소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구조주의와 자유주의 간 대립은 1980년대 탈(脫)규제를 주장하는 준경쟁시장 이론이 등장하면서 자유주의 쪽으로 판세가 기울어지게 된다.

준경쟁시장 이론은 시장 지배력이 높은 기업이라고 해도 해당 산업에 다른 기업이 자유롭게 들어올 수 있다면 독점금지법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

많은 신기술 신제품의 독점 지위(시장점유율)를 일일이 계산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무엇보다 기업의 기술 개발 의욕을 꺾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에 힘입어 이 이론은 1990년대 탈규제 정책을 몰고 왔다.

결국 독점금지법은 엄격한 규제로부터 기업의 자율을 강조하며 기술 개발 의욕을 부추기는 쪽으로 적용되고 있는 셈이다.

비록 독점기업이 일시적으로 초과 이윤을 얻고 있다고 하더라도 장기적 관점에서 정부가 바로 개입하지 말고 기술 개발 촉진,정부 실패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법원도 기술 개발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는 추세이다.

1998년 미국 반독점 당국이 요구한 마이크로소프트(MS)사의 분할을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도 그러한 사례의 하나이다.

당시 미국 법무부는 MS가 자사의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윈도 프로그램과 함께 판매하는 것을 두고 독점적 지위를 이용한 끼워 팔기라며 법원에 제소했다.

윈도 시장 지배권을 이용해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끼워 팔고 있는 MS를 그냥 두면 다른 인터넷 브라우저(넷스케이프 등) 업체들이 설 자리를 잃게 된다는 것이었다.

세계의 주목을 끈 이 소송에서 미국 대법원은 MS의 끼워 팔기는 회사를 분할할 정도의 불공정거래 행위가 아니라며 정부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MS가 윈도와 함께 익스플로러를 판매하는 것은 제품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는 것으로 소비자 편익을 해치는 행위가 아니라고 판정했다.

미국 대법원은 독점기업의 가격을 직접 규제하는 방법에도 부정적이다.

독점기업의 초과 이윤은 정부가 규제하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경쟁자가 시장에 뛰어들어 자연히 사라지게 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대신 '독점적 지위를 얻기 위한' 가격 남용(경쟁회사가 이윤을 남길 수 없어 시장 진입을 포기하게 만들기 위해 일시적으로 원가 이하로 판매하는 약탈적 가격 설정)은 엄격히 규제한다.

경쟁사가 들어올 수 없도록 장벽을 설치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세계 각국은 독점적 지위를 남용하는 행위보다는 독점적 지위를 얻기 위한 행위를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한때 가격을 직접 규제하던 유럽 국가들도 독점 시장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고 있다.

박주병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bpar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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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이 발생하는 세 가지 이유

시장에서 독점이 발생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이다.

우선 생산 원료를 독점하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 금강산 물을 독점 수입해서 국내에 판매하게 된다면 이는 원료 독점에 의한 시장 독점이 된다.

그러나 원료 독점은 그렇게 흔하지 않다.

두 번째로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독점권을 인정하는 경우이다.

특허권 저작권이 이에 해당한다.

특허권자나 저작권자는 기술개발 창작의 대가로 20년 혹은 30년 동안 특허료 저작료를 받으며 배타적인 권한을 사용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생산량을 늘리면 늘릴수록 평균 비용이 낮아지는 자연독점 시장이 있다.

예를 들어 상수도,전기처럼 대규모 설비 투자가 필요한 경우에는 여러 기업이 참여하는 것보다 한 개의 기업이 생산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자연독점 시장은 대부분 정부가 공기업을 설립해 운영한다.

물론 공기업들이 가격을 마음대로 정하지 못하도록 규제한다.

그냥 두면 공기업들이 최대의 이윤을 올리기 위해 생산량을 줄이면서 가격이나 요금을 올리기 때문이다.

자연독점 시장은 최근 수요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경쟁 시장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다.

국내 이동통신 시장은 원래 한국이동통신이라는 공기업이 독점하고 있었으나 이동통신 이용자들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경쟁 시장으로 바뀌었다.

정부가 한국이동통신을 민영화(현재 SK텔레콤)하고 민간 업체에 신규로 이동통신 사업권을 내 준 것이다.

정부가 지난 몇 년 동안 다른 이동통신회사에 비해 SK텔레콤에 더 많은 규제를 한 것은 자연독점 시장에서 전환된 이동통신 시장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독점규제법의 적용을 받는 시장은 꼭 독점 시장만이 아니다.

과점·독점적 경쟁 시장도 독점규제법의 적용 대상이다.

실제 시장에서 독점 규제를 받는 기업은 오히려 순수 독점보다 과점 기업이 훨씬 많다.

우리나라 공정거래법에서 규정하는 시장지배적 사업자는 과점·독점적 경쟁 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이 일정 기준(1개 기업이 50% 이상,3개 이하 기업이 75% 이상)에 해당하는 기업을 말한다.

이들 시장지배적 사업자는 다른 업체들에 비해 여러 가지 규제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