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북한경제실상 도대체 어떻기에…


기자동지, 나무껍질 먹어본적 있소?

"기자 선생,나무껍질 먹어본 적 있소."

지난 2일부터 4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2차 남북 정상회담을 취재하러 갔던 남측의 한 기자가 북한 안내원으로부터 받은 충격적인 질문이다.

안내원은 1990년대 중후반 대홍수로 인해 적게는 수십만,많게는 수백만명이 굶어죽은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고난의 행군' 당시를 회상하면서 이렇게 언급했다고 한다.

비록 10년 전쯤의 일이나 참담한 북한의 경제 실상을 대변해주는 단초다.

최근이라고 크게 나아진 것은 없다.

북한은 해마다 식량 부족에 시달리며 남측을 비롯한 외부로부터 지원을 받는 형편이고,굶주림에서 벗어나려는 탈북자 수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올여름 사상 최악의 폭우 여파로 '제2의 고난의 행군'을 겪을 수 있다는 관측이 없지 않다.

북한은 그러면서도 민생 경제보다 군 중심의 '선군(先軍)정치'를 고수하고 있다.

◎ 통계도 발표하지 않는 통제경제

북한은 국내총생산(GDP),1인당 국민소득 등 자국의 경제사정을 알리는 지표(통계)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는다. 외부에 심각한 경제난이 들통날까봐 꼭꼭 숨기고 있다는 게 더 정확한 얘기일까.

최근 미국 경제전문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오죽하면 북한의 옥수수 수확량 통계를 낼 때 옥수수밭을 촬영한 위성사진으로 예상치를 추정하는 식이라고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북한 경제에 대한 윤곽은 '거울통계(Mirror Statistics)'를 통해 추정하기도 한다.

중국이나 한국 등이 북한과 교역하는 물량으로 어림잡아 통계를 내는 방식이다.

아니면 탈북자의 입에 의존하는 게 고작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과 한국은행 등은 이 같은 데이터를 토대로 북한이 1990년대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다 2000년대 들어 다소 회복돼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섰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올해는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지난해 북한의 국민총소득(명목 GNI)과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각각 256억달러와 1108달러로 남한의 35분의 1 수준과,17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고 추정했다.

◎ 만성적 '부족경제(Shortage Economy)'

북한은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가장 큰 특징인 만성적 '부족경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공급이 모자라 인민들은 식량난,물자난,에너지난 등에 허덕이는 경제구조다.

<부족의 경제학>을 쓴 헝가리 경제학자 J 코르나이(Kornai)는 사회주의 국가의 국유기업 행태를 분석,공급 부족이 사회주의 경제의 필연적 결과라고 논증했다.

국가가 제시하는 목표를 쉽게 달성하려고 국유기업들이 국가의 투입물을 최대한 확보하는 반면,목표 산출량은 최소로 보고하려는 행태를 보이게 돼 공급 부족이 초래한다는 것.

더욱이 북한은 주요 외부 공급처이던 소련과 동구권 공산주의 정권이 1990년대 무너진 이후 큰 타격을 받았다.

KAL기 폭파사건을 일으킨 주범으로 밝혀진 뒤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받으면서부터는 국제 금융기구에서 원조나 차관을 받아 경제 생산량을 늘리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대신 중국 의존도는 더욱 높아졌다. 1990년 11.5%였던 북한의 대(對)중국 교역 비중은 2005년 38.9%에 달했다.

이영훈 한국은행 동북아경제연구실 과장은 "북한은 낮은 수출 경쟁력과 자금 부족으로 기계나 설비 등의 생산재를 수입해 생필품,에너지 등의 공급을 확대하는 데 제약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자연재해 등 내부 요인 외에 무역 상대국의 경제상황 변화와 같은 외부 요인에도 공급이 크게 변동되는 취약한 경제구조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 공평하지 못한 분배 시스템

대북 지원 단체인 '좋은 벗'과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등은 북한 인구를 대략 2000만명 정도로 잡았을 때 한 해 640만t가량의 식량이 필요하나 북한의 식량 생산량은 약 430만t 선인 것으로 추정했다.

이런 점을 감안해 북한 정부의 배급 순위를 따져 보면 배곯는 인구 수가 얼추 드러난다.

'좋은 벗'에 따르면 1순위인 중앙당 간부와 평양 중심구역 주민들(약 100만명,4%),2순위인 인민무력부,국가안전보위부,인민보안성 등의 군사 인원(약 150만명,6%)까지는 적당한 양을 배급받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3순위인 특급기업소,군수공장 노동자와 그 가족(약 400만명,20%),4순위인 일반 노동자,교원,의사 등(약 600만명,30%)은 영양실조를 겪고 배급체계에 제대로 끼지 못하는 농민계층(약 800만명,40%)은 6개월분 식량을 보장받기도 힘들다는 계산이다.

한국으로 온 탈북자 수가 1996년 56명에서 2002년 1139명으로 1000명 선을 넘어섰으며 지난해 2023명으로 2000명 선을 다시 웃돈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비료 부족 등에서 비롯된 낮은 농업 생산성은 북한 식량난의 한 원인으로 꼽힌다. 북한의 연간 비료 수요량은 155만t이나 공급량은 45만t 정도여서 100만t 이상 부족한 실정이다.

남측이 2006년 35만t,올해 30만t에 이어 내년에 40만t의 비료를 북한에 지원하기로 계획한 것은 북한의 농업 생산성을 끌어올려 식량난을 덜어주려는 일환이다.

◎ 그래도 '선군정치?'

한계상황에 내몰린 북한 경제는 선군정치가 가져다준 결과이기도 하다.

선군정치는 군을 앞세워 사회주의 건설을 영도한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치철학이다.

바실리 미헤예프 러시아 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IMEMO) 동북아시아연구센터 소장은 2차 남북 정상회담 직후 국내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경제는 개방과 시장이 아닌 군수 분야의 우위를 지향한다.

한마디로 병영 사회주의 체제이며 군수품이 동원 1순위다"고 전했다.

그는 평양 주재 구소련 대사관에서 8년간이나 근무했던 인물이다.

물론 북한은 격심한 경제난을 탈출하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2002년부터 시장경제 요소를 가미한 '7·1 경제개선관리조치'를 취해 일부 공장에서는 일한 만큼 버는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는 등 사회주의적 평균주의가 사라지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렇지만 올초 국가적 목표로 삼은 경제강국 건설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

경제 기반이 턱없이 열악한 탓이다.

일례로 북한은 비금속광물인 마그네사이트 등을 포함,세계적인 광물 자원량을 자랑하나 이를 개발할 전력,유류,장비 등이 부족해 외화벌이에 애를 먹고 있다.

현재 북한의 광물자원 개발 수준은 1980년대 최대 생산량의 30∼50%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홍열 한국경제신문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