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개도국의 살 길, 개방·자유무역인가 폐쇄·보호무역인가
두바이로 갈까,미얀마로 갈까

"인류 총합으로 볼 때 세계화는 모두에게 좋은 것이다."

프랑스의 경제·사회학자이자 세계적인 문명 비평가인 기 소르망(Guy Sorman·63) 전 파리대 교수의 말이다.

그는 최근 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아 "세계화 현상에서 세부적으로는 승자와 패자가 생길 수 있지만 개방과 자유무역이 결코 '뺏고 빼앗기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좋은 예로 1945년 해방 당시 최빈국(最貧國)에서 지금은 세계 12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한국을 꼽았다.

수출입국(輸出入國)의 기치를 들고 적극적으로 세계로 뻗어 나간 한국은 60년 동안 국내총생산(GDP) 600배 성장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은 개방형 통상국가를 목표로 열심히 세계 각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또한 세계화와 시장경제는 인종·종교·성별·국적을 차별하지 않는다.

누가 어느 나라에서 만들었건 값싸고 품질만 좋다면 사서 쓴다.

이런 형태의 경제구조는 인류 역사상 보기드믄 경제적·정치적 성취를 이뤄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 '폐기처분'된 제국주의론

세계화가 본격 진행된 지난 30년의 역사를 통해 이같은 논리는 경험적 근거를 쌓아가고 있다.

부국(富國)과 빈국(貧國)을 가르는 것은 더 이상 금 석유 등 돈되는 자원의 보유 여부가 아니다.

세계화와 개방화에 적극적으로 몸을 맡겼느냐 아니냐로 국가의 운명이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100년전 공산혁명가 레닌은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적 모순의 극치"라며 "지구상에 부국이 존재하는 것은 빈국이 있기 때문이며 부국의 착취가 빈국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고 상대적으로 부국은 더욱 부유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이같은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제국주의론'은 더 이상 실증적 근거를 찾기 힘들어졌다.

덩치 큰 선진국에 국부를 빼앗길 것이라던 개발도상국은 더 많은 이윤을 찾아 흘러 들어온 자본을 바탕으로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다.

오히려 선진국 국민들이 "세계화가 내 밥줄을 끊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 잡히게 됐다.

만약 개도국들이 레닌의 주장을 따라 폐쇄와 보호무역으로 일관했다면 있을 수 없었던 일이다.

여전히 이념의 벽에 갇혀 세계 무대로 나오지 않는 북한과 쿠바의 경제 현실이 이같은 논리를 뒷받침한다.

최근 시위와 유혈사태로 얼룩진 미얀마도 마찬가지다.

엄청난 천연가스를 보유한 자원 부국이지만 군사정권이 세계로 통하는 문을 닫아 걸고 폐쇄적인 시스템을 고수한 때문이다.

미얀마의 현실은 그런 점에서 넘쳐 나는 오일 달러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외자 유치에 나섰던 아랍에미리트(UAE)의 두바이와 비교된다.

선진 금융 시스템을 재빨리 도입한 덕분에 전 세계의 사람과 자본이 중동으로 가기 위해 두바이를 통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 지역의 발전 속도는 갈수록 빨라진다.

세계화에서 더 나아가 '세계화의 허브 효과'까지 톡톡히 누리고 있는 것이다.

◎ 세계 8억 인구 절대 빈곤에서 해방

세계화로 개도국에 찾아온 가장 큰 변화는 절대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을 들 수 있다.

지난 30년 동안 배고픔과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난 사람이 8억명에 달한다는 통계가 있다.

생존 그 자체를 위협하는 것들로부터 인간의 존엄을 지켜낸 것은 인권운동가들이 아니라 더 많은 이윤을 찾아 어디든 가고자 하는 자본이었고,국경을 넘으려는 돈의 흐름을 국적을 따지지 않고 적극적으로 수용한 덕분이었다.

개혁·개방 이후 5억명이 굶어 죽을 위험에서 벗어난 중국의 괄목성장(刮目成長)이 이를 웅변한다.

지난해 중국의 GDP는 2조5600억달러로 30년새 스물 다섯 배 늘었다.

이를 바탕으로 산업의 고도화까지 추구해 한국과의 기술 수준 격차가 1~2년 이내로 바짝 좁혀진 분야도 있고 부분적으론 앞지르기도 했다.

공산주의 체제만을 고집하며 세계화를 거부했다면 이루기 어려웠을 성과다.

많은 이들이 민주주의와 수준 높은 문화의 혜택을 볼 수 있게 된 것도 세계화가 안겨 준 선물이다.

인도에선 매주 1억명이 영화를 본다.

인도의 '영화 공장' 발리우드는 이같은 탄탄한 수요층을 기반으로 수작들을 쏟아내 이제 할리우드를 위협하고 있다.

이는 인도가 글로벌 아웃소싱 기지를 자임하면서 외국 사람과 자본에 대해 문을 활짝 연 덕분이다.

아울러 '불가촉 천민(달릿)' 출신의 대학 교수가 탄생하는 등 인도에 뿌리박힌 카스트 신분제도 서서히 해체돼 간다.

민주주의의 확산 역시 보편적 풍요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 세계화는 빈부격차의 원인 아닌 해법

물론 여전히 국가간·계층간 빈부격차는 인류가 풀어야 할 숙제이기는 하다.

기아(飢餓)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어린이와 큼직한 햄버거를 입에 넣고 있는 덩치 큰 서양인을 대비시킨 사진을 보면 착잡한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어떤 이들은 이를 '세계화가 몰고 온' 빈부격차의 상징처럼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빈곤의 종말(The end of poverty)'을 쓴 제프리 삭스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아프리카의 극심한 빈곤은 대개 물리적 환경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고 분석했다.

말라리아와 같은 질병(Disease) 농사를 망치는 가뭄(Drought) 그리고 교통망이 부족에 따른 물리적 거리(Distance) 등 '3D 요인'이 그것이다.

이같은 빈곤의 해법 또한 원인을 제거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게 삭스 교수의 주장이다.

즉 말라리아나 에이즈같은 질병 퇴치를 위한 방충망·약제 등의 보급,댐 등 관개시설의 건설,가뭄에 견디는 품종 개발,도로 교량 등 사회간접자본의 확충 등을 필요로 한다.

3D 환경 극복에는 물론 선진국들의 도움이 절실하다.

그러나 원조의 수혜국들 역시 개방 경제의 성장 전략을 택해야만 비로소 빈곤에서 완전히 탈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굶어죽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구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무조건 돕자는 열정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원인을 분석하는 냉정함이 이들을 살릴 수 있는 길이다.

빈곤 탈출의 해법이 될 수도 있는 '세계화'를 마치 그것의 원인인 양 말하는 사람이 있는 한,아프리카의 발전은 영영 꿈꿀 수 없다.

차기현 한국경제신문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