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 9월19일자 A12면
[뉴스로 읽는 경제학] 양심적 거부자 대체복무 허용, 서두를 필요 있나요?
정부는 종교적 또는 양심적인 이유로 군 입대를 기피하는 사람들에게 이르면 2009년부터 대체복무를 허용하기로 했다.

권두환 국방부 인사기획관은 18일 공식 브리핑을 통해 "종교적 사유 등으로 집총(입영)을 기피하는 사람들에게 다른 방법으로 병역을 이행할 수 있도록 대체복무를 허용키로 했다"며 "내년 말까지 병역법과 사회복지 관련 법령,향토예비군설치법 등을 개정,이르면 2009년 1월부터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병역이행이라는 국민의 의무와 소수 인권보호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병역 거부 분위기의 확산 방지를 위한 안전장치를 강구한다는 차원에서 종교적 병역 거부자들의 대체복무 분야를 가장 난이도가 높은 부문으로 선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전남 소록도의 한센병원,경남 마산의 결핵병원,서울과 나주 춘천 공주 등의 정신병원 등 9개 국립 특수병원과 전국 200여개 노인 전문 요양 시설 등이 종교적 병역 거부자들의 대체복무 대상지로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종교적 병역 거부자들의 대체복무 기간은 현역병보다 12개월 많은 36개월로 확정됐다.

이는 공익근무요원 등 일반 사회복무요원의 복무 기간보다 14개월 길다.

정부는 대체복무를 희망하는 종교적 병역 거부자들에 대해서는 법조계와 학계,사회단체 관계자 등으로 별도의 자격판정위원회를 구성해 해당 종교단체 증빙서류와 당사자 면담 등을 통해 대상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종교적 병역 거부자는 2002년 826명,2003년 565명,2004년 756명,2005년 831명,2006년 783명 등 3761명으로 지난 5년간 연평균 752명에 이른다.

이 중 특정 종교 신자는 3729명이다.

김수찬 한국경제신문 기자 ksc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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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을 지킬 권리" 對 "가치혼란 초래할 것"

종교적 사유 등으로 인한 병역거부자에게 내후년부터 대체복무를 허용하겠다는 정부 방침을 놓고 찬반논란이 뜨겁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는 종교뿐만 아니라 비폭력 평화,인간 존엄에 대한 강한 신념에 따른 병역 거부자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 당국이 종교 등의 사유로 인한 병역 거부자에게 대체복무를 인정한 것은 인권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반기고 있다.

이에 대해 재향군인회는 정부의 대체복무 허용 결정은 국민개병제의 근간을 훼손하는 중대사안으로,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수많은 국군장병과 불평등을 초래하는 졸속 결정이라며 종교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 추진 결정을 철회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인터넷에서도 찬반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종교적 신념 등에 따른 병역거부를 둘러싼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대체복무제 도입을 정부에 권고했으며,헌법재판소 또한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을 합헌으로 규정하면서도 입법적 해결을 촉구한 바 있다.

지난해 말에는 유엔 인권기구가 "종교적 병역거부자 처벌은 양심과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 유엔 규약에 어긋난다"며 우리 정부에 개선을 권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병역의무의 형평성,분단국가의 특수성,국민정서를 이유로 시기상조라고 청와대에 보고하는 등 대체복무제에 줄곧 반대 또는 유보 입장을 취해왔다.

문제는 국방부가 이러한 입장을 선회하고,그것도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대체복무허용 방안을 내놓은 게 과연 설득력이 있느냐는 점이다.

◎찬성측,"양심적 병역거부는 보편적 권리며 기본적 인권"

대체복무제 도입을 찬성하는 측은 "병역거부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대체 수단을 마련하라"는 각계의 요구를 정부가 수용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사법부의 전향적 판결과 국가인권위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시기상조란 입장을 고수해 온 국방부가 태도를 바꿔 이를 공식 추진키로 한 것은 획기적 진전이라고 평가한다.

이들은 '양심적 병역거부'는 한 개인의 신앙적 결단이나 내면의 신념에 따른 것으로,민주주의 국가라면 마땅히 존중해야 할 보편적 권리이자 기본적 인권이라고 강조한다.

게다가 매년 700∼800명대에 이르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형사처벌을 받을지언정 입대하지 않겠다는 입장인 만큼 이들을 굳이 전과자로 만들어 사회활동을 제약하는 게 과연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반문한다.

다만 양심의 자유를 핑계로 군복무를 기피하는 젊은이가 늘어나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대체복무제를 엄격하게 운영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반대측,"종교적 병역거부 인정은 가치혼란 부작용 초래"

이에 대해 반대측은 대체복무 허용은 사회 전반에 심각한 가치 혼란과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으며,특히 국방의무와 국가안보에 대한 국민의식을 왜곡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비록 소수라고 하더라도 입영을 거부하는 이들이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을 예외적으로 마련하는 것은 국민개병제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어떤 사람들을 종교적 병역 거부자로 볼 것인지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꼬집는다.

법조계와 학계,시민단체 관계자들로 위원회를 만들어 엄정하게 자격을 판정하겠다고는 하지만 이 과정에서 형평성과 공정성에 관한 논란이 빚어질 게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체 복무자들을 관리하고 비리를 막기 위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를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사법부 또한 개인 권리인 양심의 자유가 국민 전체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기 위한 국가의 안전보장보다 우월한 가치라고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정부가 대체복무제를 무리하게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대체복무제 도입,사회적 합의 바탕으로 신중히 추진해야

대체복무제는 병역의무의 형평성,분단국가의 특수성 등에 비춰볼 때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한마디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때문에 정부가 불과 3개월 전까지만 해도 '시기상조'라던 입장에서 '허용' 쪽으로 급선회한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묵은 난제 해결에 도움을 주기는커녕,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정치사회적 논란만 부추기지 않을까 걱정이다.

정부는 국방의무의 신성함이 지켜질 수 있도록 대체복무 허용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여유를 갖고 이를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체복무 허용이 국민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이 제도가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

대체복무가 종교적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들에 대한 특혜가 되지 않도록 엄격한 판정 기준을 적용하고,복무 실태에 관한 철저한 관리가 뒤따라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용어풀이]

◎대체복무제=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에서 군복무를 하는 대신 이에 해당하는 기간 또는 그 이상을 사회복지 분야나 사회공익요원,재난구호요원 등으로 일하게 함으로써 군복무를 대체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사회복무제=사회활동이 가능한 사람 가운데 현역복무를 하지 않는 병역 의무자가 중증 장애우 수발 등 각종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복무하는 것을 말한다.

◎양심적 병역거부=병역·집총을 자신의 양심에 반하는 절대악이라며 거부하는 행위.이를 권리로 주장할 때 양심적 병역거부권,양심적 집총거부권,양심적 반전권이라고 한다.

미국 영국 프랑스 스웨덴 이스라엘 등은 양심에 반하여 집총병역을 강제받지 아니하는 권리를 헌법 또는 법률로 인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특정종교를 중심으로 매년 700~800명 정도의 병역기피자가 발생하고 있다.

◎국민개병제=원칙적으로 국민 모두에게 병역의무를 부여하는 제도.하지만 여성들은 병역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신체나 정신이 군복무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은 예외를 인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