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하를 늘리고,

경쟁자를 원치 않으며,

서로를 위해 일거리를 만든다

[Cover Story] 50년 전 파킨슨의 혜안, 공무원은 일이 없어도 계속 늘어난다
영국의 역사학자 겸 경영연구가인 C 노스코트 파킨슨(1909~1993) 만큼 공무원 조직이 안고 있는 태생적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한 학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가 1955년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발표한 '파킨슨 법칙'은 실증적 통계를 토대로 관료사회의 작동원리와 조직문제의 본질을 냉소적인 문체로 꿰뚫었다.

왜 '작은 정부'가 필요한지,의회는 왜 생산성이 떨어지는지,예산 심의나 지출은 어떻게 결정되는지,조직을 망치는 것이 무엇인지 등에 대한 그의 설명은 50년이 지난 지금도 전혀 녹슬지 않았다. 그래서 파킨슨 법칙은 공무원들이 가장 껄끄러워하는 사회법칙이기도 하다. 파킨슨이 적나라하게 파헤친 공무원 조직의 피할 수 없는 함정을 들여다 보자.

◆공무원 숫자는 계속 늘어난다

파킨슨은 업무량과 공무원 숫자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입증했다. 파킨슨 제1법칙이다. 자신이 근무했던 영국 해군성에서 1914년 62척이던 주력 군함이 1928년 20척으로 67.7%나 감소했음에도 해군성 공무원 수(2000명→3569명)는 78.4%나 급증한 점을 들었다. 특히 전세계 식민지를 관장하던 영국 식민성은 1935년 직원 수가 372명에 불과했지만 2차대전 이후 식민지들이 대거 독립한 1954년에는 1661명으로 늘어났다. 업무는 대폭 줄었음에도 직원 수는 20년 새 4.4배로 늘어난 것이다. 파킨슨의 공식에 의하면 공무원 수는 업무량 변화와 상관없이 해마다 5.17~6.56% 범위에서 증가한다고 한다.

또한 파킨슨은 공무원 조직이 부하를 늘리고,경쟁자는 원치 않으며(부하배증),공무원은 서로를 위해 일거리를 만든다(업무배증)는 법칙도 발견했다. 늘어난 공무원 수 때문에 이들을 관리하기 위한 업무와 공무원 수가 또 늘어난다는 이야기다.

◆지출은 수입 만큼 증가한다

파킨슨의 신랄함은 몇 가지 추가되는 법칙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한 안건을 논의하는 시간은 그 안건에 포함된 예산액에 반비례한다." "회의에서 처음부터 7번째 안건까지는 열심히 논의하다가 그 다음부터는 쉽게 넘어간다." "위원회가 비능률에 빠지는 숫자는 위원 수가 19~22명 사이에 존재한다." "전장에서 죽는 적군 수는 아군 장군 수에 반비례한다." "개인의 효율성은 퇴직하기 3년 전부터 떨어진다." "핵심 인물은 파티 시작 45분 뒤에 나타난다."

이런 법칙들은 조직이 커질수록 왜 낭비가 심해지는지를 다각도로 설명한다. 특히 "지출은 수입만큼 증가한다"는 파킨슨 제2법칙도 국민 혈세가 귀한 줄 모르는 공무원들에겐 뜨끔한 이야기다. 이는 세금을 거둘 수 있는 한 공무원 숫자는 늘어난다는 법칙으로 이어진다. 또한 "일은 그것을 처리하는 데 쓸 수 있는 시간 만큼 늘어나게 마련이다"라는 것도 벼락치기 시험공부에 익숙한 학생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무능과 질시는 조직의 병균

파킨슨은 조직이 왜 병들어 마비되는지에 대해서도 연구했다. 둔하고 고집 센 고위 간부,경쟁상대에 대해 음모를 꾸미는 데 골몰한 중간관리자,체념적이거나 어리석은 하급직원들로 구성된 조직은 흔히 있다. 이들이 서로 반목하는 날에 그 조직은 끝장을 본다는 것이다.

이렇게 '무능과 질시'라는 병균에 감염된 조직은 뛰어난 사람이 승진·임용되는 것을 최대한 막고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만 고용해 자신의 무능을 감추려고 한다. 이 병균에 감염된 한 사람으로 인해 조직 전체에 병균이 퍼진다. 이 병균의 위력은 오늘날에도 사그라들지 않는다고 파킨슨은 경고한다.

◆위대한 건축물은 쇠퇴의 증거

파르테논 신전,타지마할,중국 자금성…. 파킨슨은 건축물의 위엄과 그 조직의 쇠퇴와 연결지어 흥미로운 분석을 제시한다. 파르테논 신전을 완공한 기원전 4세기 이후 그리스 문명은 쇠퇴하기 시작했고,무굴제국 황제 샤 자한이 1648년 완공한 타지마할은 국가 재정이 휘청거리게 했고,자금성은 명나라가 건축했지만 정작 나라가 망해 청나라 황궁으로 주로 이용했다.

한 시대의 영광을 상징하는 웅장한 건축물은 역설적으로 그 시대의 쇠퇴·소멸과 함께 한 반면,위대한 성과는 오히려 허름한 곳에서 나왔다. 태만하고 능력 없는 사람들이 건축물에 집착했고,처음부터 겉모습을 따지는 조직은 결코 오래가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지금도 우리는 웅장하고 위엄 있는 건축물을 짓는데 비용을 쓰고 있지는 않은지 반문해 볼 필요가 있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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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는 무능력이 증명될 때까지 승진…'피터의 원리'

관료조직의 역기능을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피터의 법칙'과 '훈련된 무능'이다. 다소 생소한 개념이지만 주변에서 자주 발견되는 것이어서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관료사회 같은 큰 조직에선 흔히 "저런 능력에 어떻게 저 자리까지 올라갔지?"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이 꽤 많다. 오래 전부터 그를 지켜봐온 사람들은 "저래 봬도 젊었을 땐 한 가락하던 사람인데…" 하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 요즘은 왜 저 모양이지?"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미국 컬럼비아대 로렌스 피터 교수와 작가 레이몬드 헐은 수백 건의 무능 사례와 원인을 분석해 1969년 '피터의 원리'(The Peter Principle)를 내놨다. 이들은 "공무원의 무능력이 개인보다는 위계조직의 메커니즘에서 발생한다"며 위계조직 안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은 더 이상 승진하지 못할 만큼 무능력한 수준까지 승진한다고 지적했다.

처음엔 열심히 일한 만큼 승진을 거듭하지만 결국엔 자신이 벅찬 일을 맡고서야 승진을 멈춘다. 하지만 본인은 무능을 인정하지 않고 감추려 노력하며,더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만회할 수 있다고 여긴다. 워커홀릭이 되거나,서류를 산처럼 쌓거나,도표·맞춤법에 집착하거나. 쓸데없이 말만 길게 하는 등의 행동으로 오히려 창의적인 사람들을 내몬다.

미국 사회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케네스 버크 등이 제시한 개념인 '훈련된 무능'(trained incapacity:전문가적 무능)은 "한 가지 지식이나 기술에 관해 훈련받고 기존 규칙을 준수하도록 길들여진 사람은 다른 대안을 생각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전문지식에 매몰돼 "네가 뭘 알아"식의 반응이 나오고, 그 분야를 벗어나면 문외한이 되는 것이다. 좁은 범위의 동일 업무를 반복하면서 권태에 빠져 결국 조직의 활력을 잃게 만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