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효율성 높이겠다"고 하지만 세계 추세에 역주행

[Cover Story] 매주 화요일마다 공무원 숫자 늘리고 있는데…
"매주 화요일은 공무원 숫자 늘리는 날."

정부가 지난 6월 이후 국무회의가 열리는 화요일마다 어김없이 공무원 정원을 늘리는 직제 개편안을 처리한 것을 두고 비판하는 소리다. 국무회의는 6월19일부터 8월14일까지 8주 연속 정부부처 공무원 증원안을 처리했다.

이달 초 정부는 또다시 국무회의를 열어 중앙부처 공무원 363명을 늘리는 내용의 직제 개편안을 통과시켰다. 지난달 증원에는 기자들의 행정부처 출입을 막기 위한 방호원(防護員·경비원) 14명을 늘리고 취재 통제를 주도하고 있는 국정홍보처 인력 35명 증원도 포함됐다. 언론 통제와 불필요한 인원 늘리기라는 두 가지 '악행'을 한 번에 해치운 셈이다.

◆참여정부 들어서만 공무원 7만명 늘어

이로써 정부가 올해 늘린 공무원을 다 합치면 1만4000명을 넘게 됐다. 또 다음 달 한 차례 더 충원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기실 정권 말기처럼 몸집 불리기 좋은 시기도 없다. 정부를 감시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다음 대통령을 뽑는 대선을 앞두고 다른 데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 얼렁뚱땅 직제 개편안을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기를 거의 끝마쳐가는 정부가 인원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증원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비대해진 정부조직은 가뿐하게 첫 발을 내디디려는 다음 대통령의 부담으로 고스란히 남기 때문이다. 이달곤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도 "다른 건 몰라도 각종 정책을 마무리해야 할 정권 말기에 정부가 특히 정책 조직을 많이 늘리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따지고 보면 노무현 정부의 '큰 정부 지향'은 비단 정권 말의 일시적인 현상은 아니다. 현 정부 들어 5년간 공무원 수는 계속 늘어나기만 했다. '행정부 국가공무원 정원 현황'에 따르면 최근 증원한 것을 포함해 늘어난 공무원 숫자는 2003년 2월 참여정부 출범 이후 현재까지 3만6000명에 달한다. 여기에 2005년 철도청이 공사로 바뀌면서 줄어든 공무원 숫자 3만명을 다시 채워 넣은 것까지 감안하면 새로 뽑은 공무원 수는 7만명에 육박한다. 그 결과 1997년 문민정부 말 91만명이던 공무원 수는 김대중 정부 시절 3만4000명가량 줄어 88만명대까지 떨어졌으나 현 정부 들어 다시 95만명을 넘어섰다. 지금처럼 매주 화요일마다 공무원 증원 행진을 펼친다면 임기 내 100만명을 넘길 가능성도 점쳐진다.

◆큰 정부 지향 무엇이 문제인가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단순히 양적으로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것만이 올바른 방향은 아니다"고 꾸준히 주장해왔다. 참여정부는 비록 몸집은 클지라도 좋은 정부 효율적인 정부를 목표로 한다는 설명이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사회가 급변하면서 복지부문에 대한 사회적 서비스 요구가 나오고 있다"며 "정부가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산술적 형평'보다는 '효율성'이,'정부 주도'보다는 '민간 이양'이 세계 여러 선진국 정부의 지향점으로 받아들여지고 되고 있는 상황에서 '큰 정부'를 마다 않는 노무현 정부의 태도는 시대를 역행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선진국 정부들이 '필요·최소한의 작은 정부'를 목표로 끊임없는 조직 감량에 나서고 있는 것은 큰 정부가 갖는 필연적인 부작용 때문이다. 우선 정부 조직이 비대해지는 것 그 자체의 문제라는 조직론적 접근이다. 정부 의사결정에 거치는 단계가 많고 사안마다 개입하는 관료가 많을수록 각종 현안에 기민한 대응이 어렵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수를 늘리는 가운데서도 특히 장·차관 등 고위급 늘리기에 혈안인 현 정부가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또 문제가 되는 것은 정부 규제의 확대다. 일례로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조직을 늘린 이유는 '시장분석본부'를 신설하기 위해서다. 기업 감시를 강화하겠다는 얘기다. '시어머니'가 하나 늘어난다는 얘기에 다름아니다. 가뜩이나 정부의 과도한 규제로 투자 의욕이 없는 기업들이다. 공무원 숫자만큼 늘어나는 규제는 민간의 자율과 창의를 짓누르게 돼 있다는 게 대다수의 학자가 동의하는 바다.

공무원 수를 늘려가면서까지 복지서비스를 확대한다며 분배정책을 강화하고 있는 것은 더 큰 문제다. 국제통화기금(IMF)도 한국 정부가 계층 간 소득 차이를 줄이기 위해 분배정책을 유지하는 게 경제적 불확실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의견을 낸 바 있다.

◆적정 수준의 정부 역할은?

사실 '정부의 역할이 어디까지인가'에 대해 시대적 상황을 뛰어넘어 불변의 원칙으로 정립된 규범은 없다. 즉 역사적으로 '그때그때 다르다'는 얘기다. 그 시대가 처한 경제적 사회적 상황에 따라서 정부의 기능이 규정돼 온 것이 사실이다. 경제학의 대부인 애덤 스미스는 1776년 출간된 '국부론'에서 정부의 역할은 치안 법률 국방 등 최소한에 머물러야 한다는 '값싼 정부' 원리를 주장했다. 이 같은 원칙이 적용된 게 바로 근대 야경국가요,경찰국가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이처럼 극단적인 작은 정부로는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대공황 같은 '시장 실패'와 극단적인 양극화를 수습하기 힘들어졌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복지국가론'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선진 각국에서 각종 사회보장제도를 실시하면서 '큰 정부'를 지향한 것이 그 결과다. 이 시기에는 공공부문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늘기도 했다.

하지만 1970년대 세계 경제에 극심한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물가 앙등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일어난 현상)이 몰아쳤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정부의 지나친 시장 개입과 그로 인해 비대해진 공공부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근까지 선진 각국은 긴축예산,정부조직 감축 등을 통해 '큰 정부'의 낭비와 비효율을 제거하고 내실화를 추구하는 '작은 정부'로 되돌아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젠 작은 정부와 공공부문이 아닌 민간이 주도하는 시장경제를 확립하지 않고서는 살아 남기 힘들다는 게 선진국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즉,'작은 정부와 큰 시장'이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만 이 같은 흐름에서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공공부문의 비대화는 결국 적자재정과 국가부채의 급증으로 나타나게 돼 있다. 참여정부 4년간 나라살림은 줄곧 적자를 기록했다. 재정이 중병을 앓다 보니 국가부채가 늘어나는 건 순식간이다. 부채는 같은 기간 2.2배로 증가해 지난해 말엔 282조8000억원(GDP의 33.4%)에 이르렀다. 경제학자들이 "작고 효율적인 정부만이 나라 경제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업자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공무원 숫자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정부라도 고용을 늘리라는 말이다. 그러나 공무원을 늘리면 실업자가 줄어들까? 얼핏 보면 공무원을 채용한 만큼 실업이 줄어든 것 같지만 공무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급여를 받는 사람이기 때문에 공무원을 늘릴수록 세금을 많이 거둬야 하고 세금이 늘어난 만큼 경제가 나빠져 민간 고용은 더 줄어드는 모순이 있다.

차기현 한국경제신문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