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병은 죽은자에겐 재앙이었지만

살아남은 자에게는 축복이었다." (맨큐)

[Cover Story] 기후와 환경이 세계사를 바꾼다
인간은 역사를 만들어 간다. 역사는 사람들의 의식 변화나 정치 체제 또는 경제적 토대의 변화에 의해 변화의 동력을 얻는다.

하지만 이런 의식·정치·경제의 변화를 결정짓는 기본적이고 중요한 변수가 있다.

바로 삶의 조건이 되는 기후와 환경이다.

중세가 종말을 고한 것은 표면적으론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14세기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넘는 엄청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간 페스트를 빼놓을 수 없다.

잉카,마야 등 아메리카 대륙의 문명이 멸망에 이르는데도 스페인 정복자의 칼보다 구대륙(유럽)에서 옮겨진 병원균이 몇십 배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유목민들의 대이동도 기후 변화가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기후와 환경이 세계사를 어떻게 바꿨는지 살펴보자.

⊙인간의 정주 생활이 전염병을 낳았다

인간의 정주(定住) 생활은 농업 혁명과 도시,문명을 탄생시켰지만 아울러 인류를 위협하는 전염병의 터전이 됐다.

수렵채집 생활은 집단의 숫자가 적어 그 속에서 질병이 발생해도 구성원이 모두 죽으면 질병의 유행도 끝난다.

정주 생활을 위해선 우선 관개 시설이 필요하다.

물을 사용하면서 기생충에 의한 질병도 빠르게 확산되고,상·하수가 제대로 구분되지 않아 소화기 질환이 생기며,가축을 기르면서 가축으로부터 전염병이 옮겨지기도 한다.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전염병은 천연두인데,이 역시 정주 생활 속에 가축을 키우면서 생긴 질병이다.

실제로 인간은 가축의 질병에 대해 적응하면서 개와 65종,소와 55종,돼지와 42종의 질병을 공유하고 있다고 한다.

정주 생활은 도시화를 가져오고,이는 대량의 배설물 처리 문제를 낳는다.

문명이 앞선 고대 도시(인더스 문명의 모헨조다로,하라파,로마제국의 폼페이) 유적을 보면 제법 발달한 수세식 화장실이 발견되는 점도 이채롭다.

영국 프랑스 등 유럽에서 인도(人道)가 생겨난 것은 마찻길이 워낙 오물로 더럽혀졌기 때문이며,심지어 행인을 안아서 오물로 가득찬 길을 건네주는 직업도 있었다고 한다.

⊙전염병이 바꾼 역사

세계사에서 전염병에 의해 역사가 바뀐 대표적인 사례는 14세기 페스트에 의한 중세의 종말이다.

페스트는 11~12세기 유럽의 온난기와, 페스트 균의 거대한 배양기 역할을 한 도시의 급속한 발전이 가져온 대재앙이었다.

유럽 인구가 3분의 2로 급감하면서 농노를 잃은 봉건 영주들이 장원을 유지할 힘을 상실한 것이다.

잉카,마야,아즈텍 등 신대륙 문명이 정복자들의 수백 명에 불과한 군대에 의해 일거에 멸망한 것도 실상은 유럽인들이 가져온 천연두,홍역 등 전염병 때문이었다.

홍역균의 경우 50만명의 인구 집단이 있어야 생존하는 바이러스다.

⊙한랭·온난화에 따른 민족 대이동

유목민의 대이동은 세계 역사 흐름을 바꾼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예컨대 훈족의 서진(西進),몽골족의 남하가 대표적이다.

이 같은 이동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변수가 기후였다고 한다.

북방 초원에서 온난한 기후 속에 인구가 불어난 몽골족은 1200년께부터 한파가 밀려오자 살 길을 찾아 남하하기 시작했다.

몽골족이 1229년 카라코룸에서 호라즘의 수도 사마르칸트를 치기 위해 이동한 거리는 위도로 약 10도(800km)에 이른다.

BC 3세기 중국 진시황 시절 흉노 등 북방 이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축조했다.

이민족들은 결국 북방 고원지대로 이동했는데,이는 만리장성도 원인이지만 기후가 점차 온난해져 북쪽에서도 새로운 터전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의 비극,감자 대기근

영국 식민지였던 아일랜드는 17세기 신대륙에서 감자가 유입돼 식량과 가축 사료를 해결했다.

하지만 1845년 한파와 함께 급작스레 닥친 '감자 대기근(Potato Famine)'은 아일랜드의 역사를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그 해 여름은 낮은 기온,잦은 안개,3주 동안의 비 등으로 감자 농사엔 최악의 환경이었고 설상가상 감자 페스트(마름병)까지 돌아 초토화됐다.

이후 10년간 줄잡아 200만명이 기아와 전염병으로 죽고,200만명 이상이 미국 등으로 이민을 떠났다.

19세기 중엽 850만명에 달했던 아일랜드 인구는 그 후 절반으로 줄었다.

영국은 크림 전쟁에 몰두하느라 이런 식민지의 대기근에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아일랜드인의 영국에 대한 반감은 한국인의 반일 감정보다도 훨씬 거세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k@hankyung.com


▶참고 서적=김준민,'들풀에서 줍는 과학'(2006,지성사)/ 이시 히로유키 등, '환경은 세계사를 어떻게 바꾸었는가'(2003,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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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에 대한 오해

"인류가 사용하는 석유,석탄,가스 등 화석 연료로 인해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에 방출되고 있으며 이것이 온실 효과를 일으켜 매년 지구의 평균 기온이 높아지고 있다."

환경 문제에 관한 한 '진리'로 인식되는 지구 온난화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이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기후변화 협약이 발효됐고 누구도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과연 그럴까? 환경 단체들의 주장과 달리 최근 연구 결과들은 화석 연료에 의한 지구온난화 우려가 지나치게 과장됐다는 근거들을 제시한다.

산업혁명 이후 대기권의 이산화가스 농도는 30% 정도 높아졌다.

하지만 화석 연료와 무관한 질소산화물,메탄가스 등도 온실 효과를 내므로 이산화탄소로 인한 온실 효과는 전체의 20%에 불과하다고 한다.

따라서 화석연료 사용에 의한 지구온난화 기여도는 전체의 6%(0.3×0.2=0.06)에 불과한데,화석 연료가 온실 효과의 주범인 양 비난하는 것은 비약이란 것이다.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높아지고 있다는 주장은 어떻게 봐야 하나? 지구온난화 문제가 본격 제기된 것은 지구 온도가 상승하기 시작한 1980년대 후반부터다.

하지만 1940~70년대 평균 기온은 오히려 이전보다 내려갔다.

화석연료 원인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정작 지난 100년간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줄곧 높아졌는데 왜 이전 30~40년간 평균 기온이 내려갔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과학자들은 지구의 주기적인 온도 변화를 원인으로 꼽는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정확한 궤도와 일정한 속도로 공전하는 것이 아니라 가볍게 요동치면서 돈다.

이런 요동은 수천 년 주기로 반복되는데,그 과정에서 지표면에 닿는 태양빛의 양이 달라져 한랭기와 온난기가 반복된다.

이 때문에 빙하가 커지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지구 온난화는 농업생산 저하,기상이변 빈발 등 해롭기만 한 것인가? 평균 기온이 올라가면 기존 채소,과일류 재배지가 북쪽으로 올라가고 이모작이 확대돼 농업 생산성이 오히려 높아질 수 있다.

또 태풍,엘니뇨 등의 자연 재해도 산업혁명 이전에 비해 요즘 더 심각해졌다고 단언할 수 없다.

자연 재해로 인한 피해액이 커진 것은 경제 수준이 높아져 해변에 도시나 저지대 휴양지가 많이 생겨난 때문이다.

이런 내용들을 살펴보면 미래 환경 변화에 적절히 대처해야 하겠지만 과도한 우려도 결코 바람직한 게 아님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