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넘치는 돈과 위기불감증이 금융위기 확산 시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촉발된 신용 경색 여파가 마치 쓰나미처럼 전 세계 금융시장을 동시다발적으로 강타하자 각국 금융시장 관계자들이 경악하고 있다. 애초에 미국 부동산 시장 내 문제로만 치부됐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문제가 어떻게 글로벌 금융시장에 일파만파 영향을 미쳐 한국 주식시장까지 급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을까.

◆글로벌 초저금리와 넘치는 돈

우선 지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게 된 원인(遠因)부터 따져볼 필요가 있다. 1990년대 들어 한번도 기준금리를 3% 아래로 내린 적이 없던 미국은 2001년 9·11테러가 터지자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그 해에 금리를 1.75%까지 내렸고 2003년 6월에는 다시 1%로 낮췄다. 1%대의 초저금리는 2004년 11월까지 지속됐다. 이후 지속적인 금리 인상으로 기준금리를 5.25%까지 끌어올렸지만 지금의 금리도 역사적으로 보면 결코 높은 수준이 아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1990년대 '잃어버린 10년'을 겪은 일본은 2001년 3월부터 소위 '제로금리'체제를 유지했고 지난해 이를 해제했지만 여전히 기준금리는 0.5%에 머물고 있다. 유로존의 기준금리 역시 4%로 상대적인 저금리가 지속되고 있다.

1990년대 말 2000년 초 IT 버블 붕괴와 9·11테러 이후부터 본격화된 이 같은 글로벌 저금리는 전 세계를 돈으로 넘쳐나게 만들었다. 돈을 빌리는 데 드는 비용이 싸니(저금리) 너도 나도 돈을 빌려 대출이자보다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곳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대출이 늘어나니 유동성이라고 불리는 돈의 양이 많아지고 흘러 넘치는 돈은 장소를 불문하고 국경을 넘어 수익을 좇아 온 세계를 누비게 됐다. 2003년 3월부터 시작된 글로벌 증시 활황과 각국 부동산 시장의 호황,원유 금속 농산물을 비롯한 원자재 가격 동반 상승의 이면에는 바로 저금리가 낳은 유동성이 있었다.

◆그린스펀 풋…위기를 키워왔다

돈을 빌리는 비용이 싸다 보니 투자에 따른 위험(리스크)을 대하는 태도도 느긋해졌다. 헤지펀드 사모펀드 등 투기자본들은 더 많은 차입(레버리지)을 이용해 자기 돈은 조금만 들이고도 엄청난 규모의 자산을 매매하면서 자기 돈의 몇 배에 달하는 막대한 수익을 챙길 수 있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 제공자는 미국 중앙은행인 FRB를 비롯한 각국의 중앙은행이었다. 특히 지난해 2월 벤 버냉키에게 바통을 물려줄 때까지 18년간 FRB 의장을 지낸 앨런 그린스펀은 큰 무리 없이 미국 경제를 이끌어 '경제 대통령'이라는 칭송을 들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금융시장에 '위기 불감증'을 심어 놓은 장본인이라는 비난도 듣고 있다.

그는 1987년 블랙먼데이,1990년대 말 아시아 금융위기와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파산 위기,그리고 2001년 9·11테러 등 금융위기가 닥칠 때마다 시장에 유동성을 퍼부어댔다. 덕분에 미국을 비롯,글로벌 금융시장에 닥쳤을지도 모를 큰 혼란은 막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위험한 투자를 일삼는 욕심쟁이 투자자들까지도 구제해주는 결과를 낳았다. 국제 금융시장에는 그래서 '그린스펀의 풋(put)'이라는 용어도 등장했다. '풋'은 어떤 상품의 가격이 내려가도 하락하기 전 가격으로 팔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투자자들은 금융시장에 위기가 닥치면 그린스펀에게 이를 해결해 달라고 요구하기만 하면 그린스펀이 알아서 처리해줬다는 의미에서 생긴 말이다.

결국 그린스펀은 금융시장에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가속화시켜 중앙은행이 금융위기의 해결사가 아닌 오히려 원인 제공자라는 비난까지 듣게 되는 데 일조한 셈이다. 최근 국제적인 신용 경색 움직임에 대해 미국 유럽 영국 일본 캐나다 호주 등 각국 중앙은행이 거의 동시에 개입하며 단기 유동성 공급에 나선 것도 단기적으로는 시장 안정을 가져오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큰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

모건스탠리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앤디 시에가 "중앙은행들의 시장 구체조치는 인플레이션만 가중시킨다"며 "중앙은행은 버블 붕괴로 경제시스템 전체가 위협받는 경우에만 유동성 공급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세계 금융위기,어떻게 전파되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금융위기는 이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위기다. 특정 지역에서 발생한 신용 경색이 모든 나라 중앙은행과 금융회사에 영향을 미치는 글로벌 위기로 도미노처럼 즉시에 퍼져 나갔다. 최근 각국 증시의 동반 폭락 사태는 바로 '전염적·동시적·폭발적'이라는 새로운 위기가 가진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금융위기가 이처럼 커다란 위력으로 즉시에 전 세계로 전파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은 글로벌 금융시장 간 장벽이 거의 없어진 데다 통신수단 및 파생금융상품의 발전으로 급속히 통합됐기 때문이다. 한국 금융시장만 해도 외환위기 이후 세계 금융시장을 향해 활짝 문을 열어놓은 상태며 각국 금융시장은 이제 단일 글로벌시장으로 신속하게 편입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이익을 추구하는 자금은 거의 제한 없이 실시간으로 수익을 좇아 수시로 이동할 수 있게 됐다.

파생금융상품의 발전도 금융시장 통합에 도관 역할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자산담보부증권(CDO)으로 모기지채권을 비롯한 다양한 신용등급을 가진 채권을 모아 새로운 성격의 증권을 만들어 유통시키는 과정에서 완전히 새로운 상품이 탄생된다. 이 과정에서 단계별로 다양한 투자자들이 개입되며 여러 국가에 걸쳐 활동하는 투자은행 헤지펀드 사모펀드는 물론 다양한 개인들도 이해관계자로 관여하게 된다. 이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호주 등 다양한 국가의 금융회사가 모두 관여됐던 것은 바로 파생금융상품이라는 고리를 통해서였다.

위에서 설명한 저금리가 낳은 풍부한 유동성도 금융위기의 확산에 빼놓을 수 없는 조건이다. 세계 금융시장의 이슈가 되고 있는 엔 캐리 트레이드도 결국은 저금리,특히 일본의 저금리와 글로벌 금융시장 통합이라는 여건이 낳은 합작품이다. 최근 반짝 강세를 보이고는 있지만 장기간 지속된 달러 약세 역시 금융위기 확산에 일조하고 있다.

미국 달러화는 금 본위제가 끝난 이후 국제적으로 가장 안전한 투자자산으로 꼽혀왔다. 그러나 미국의 막대한 무역수지 적자가 해소되지 않으면서 달러화 약세가 지속되자 달러 이외의 자산으로 투자 수요가 분산되기 시작했고 이것이 풍부한 유동성과 맞물리면서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투자수단을 찾아 퍼져나가게 됐다.

이와 같은 다양한 이유로 이제 어느 나라 중앙은행 금융회사,그리고 심지어 개인 투자자들까지 세계 각 지역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금융위기로부터도 자유로울 수만은 없는 세상에 살게 됐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