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에게 집 살 돈을 빌려주었던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대출)' 부실 문제가 세계 금융위기의 '핵'이 되고 있다. 지난 3월부터 세계 금융가를 긴장시키기 시작한 '비우량 주택대출 부실 문제'가 8월 들어서는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주택대출을 빌려준 모기지 회사들이 파산하는 것은 물론 투자은행과 헤지펀드들까지 말려들면서 세계 증시가 동반 폭락하는 양상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미국 전체 금융자산의 1%에 불과하다며 파급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던 전망이 무색해진 이유는 무얼까. 눈덩이처럼 불어난 위기의 전말을 살펴보자.
◆고수익 증권으로 탈바꿈한 주택대출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서브프라임은 프라임보다 낮은 단계라는 뜻)는 신용도가 낮아 집을 살 때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사회정책의 산물이다. 1990년 미국 클린턴 행정부 당시 저소득층에 대한 금융지원 확대를 위해 융자관련 규정을 완화하면서 생겨났다. 신용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사람들이다 보니 아무래도 빌린 돈을 갚지 못할 가능성이 높고 그 위험 만큼 이자도 비쌌다. 집 값이 오르면 집을 되팔아 빚을 갚으면 그만이지만 최근 미국 집값이 크게 떨어지면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하는 사례가 급증하면서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이자가 높다보니 많은 금융기관들이 이자를 벌기 위해 경쟁적으로 서브프라임 시장에 돈을 투자했고,이에 따라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들이 연쇄적으로 자금 위기에 봉착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도미노가 무너지듯이 주택가격 하락→모기지 회사 부실→투자은행 자금 회수 불능→헤지펀드 자금난 파동을 일으키며 확산되는 상황이다. 모기지 회사들은 돈을 빌려 준 금융기관이니까 돈을 못받으면 직격탄을 맞는 것이 당연하지만 투자은행이나 헤지펀드가 파문에 휩싸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제공하는 금융회사들은 대출해줄 돈을 마련하기 위해 대출자산을 담보로 채권을 발행했다. 그러면 대형 투자은행이 이들 채권을 사들였고 투자은행은 이를 다시 자산담보부증권(CDO)이나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이라는 상품으로 만들어 헤지펀드에 팔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기본적으로 신용도가 낮은 사람에게 빌려주는 돈이기 때문에 이자가 높았고 이 높은 이자를 보고 여러 금융기관이 달려들었던 것이다. 금융기관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만으로 증권을 만든 것도 아니다. 신용도가 낮은 서브프라임 외에 신용도가 좋은 채권도 '양념'으로 첨가했다. 여기에 무디스나 S&P사 등이 투자 등급을 부여해 식욕을 당기게 했다.
서브프라임에 입질한 것이 미국 금융회사만이 아니었다. 호주와 유럽의 금융회사는 물론 대학펀드 연기금 등도 이 채권을 사들였다. 부실 가능성을 애초부터 갖고 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하이에나들처럼 한바탕 잔치를 벌였던 것이다.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을 돕는다는 취지의 사업이었지만 역시 경제에는 공짜가 없었던 셈이다.
◆신용위기의 전파 과정
위기의 근원을 따지고 올라가면 모기지 회사들에서 먼저 찾을 수 있다. 이들이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마케팅하면서 무분별하게 모기지 대출을 늘렸었다. 주택 수요자들 역시 앞다퉈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이용해 집을 사들였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2000년 이후 세계적인 저금리 현상이 이어지면서 너도나도 집사는 데 정신이 팔렸고 저금리가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는 착각 속에 점차 위험에 둔감해졌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금리가 뛰고 주택가격은 떨어지면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집을 내놓아도 더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수요자들 때문에 집도 팔지 못하고 빚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결국 지난 4월 서브프라임 모기지 회사인 뉴센추리파이낸셜이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파산을 선언했다.
잠시 진정되는 듯하던 부실 파문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그럴듯한 투자상품으로 변모시킨 투자은행들에서 다시금 터져나왔다. 지난 6월 미국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는 자신들이 운영하던 2개 펀드가 큰 손실을 입고 문을 닫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7월 말에는 독일 IKB은행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 투자로 수익이 타격을 입었다고 발표하고 최고경영자(CEO)가 사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불길은 순식간에 세계 금융회사와 금융시장으로 옮겨붙었다. 급기야 골드만삭스마저 자신의 대표 펀드에서 8월 들어서만 28%의 손실을 봤다고 '고해성사'를 했다.
불안감이 확산되자 일반 투자자들도 허둥지둥댔다. 큰 문제 없어보이던 펀드에 달려가 자신들의 투자원금을 돌려달라고 환매를 요구하는 이른바 '펀드런(fund run)'현상도 나타났다. 결국 프랑스 대표 은행인 BNP파리바는 지난 9일 3개 펀드의 환매를 중단한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신용위기'(Credit Crisis)란 그리 어려운 용어는 아니다. 언제 자신들의 돈이 떼일 지 모른다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돈의 흐름이 곳곳에서 막히는 그런 상황이다. 문제는 모든 사람이 시장을 불신하고 일거에 투자자금을 회수하면 우량 금융기관들은 물론 실적 좋은 일반 기업도 경영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우리나라의 기아자동차를 포함,세계적 기업들의 채권 발행이 불가능해지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돈이 있는 금융기관들도 몸을 사리면서 자금을 움켜쥐고만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난 6일에는 중간 정도 신용도를 가진 사람들에게 주택담보대출을 해주는 '알트 에이' 모기지 회사인 아메리칸 홈 모기지 인베스트먼트(AHMI)도 미국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더 높은 신용도를 요구하는 프라임 모기지 회사인 소른버그도 긴급 자금 마련을 위해 250억달러의 우량채권을 헐값 매각한다고 최근 밝혔다.
◆두려움에 떠는 세계 금융시장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의 여진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6개월에서 길게는 1년까지 이런저런 악재들을 계속 만들어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두려움을 걷어치우기엔 여기저기 지뢰들이 널려 있는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세계 금융시장이 동조화되면서 위기가 실시간으로 전파된다는 점이다. 금융상품 구조가 복잡해지고 정교해지면서 한 군데서 위기가 발생하면 다른 투자자산으로 급격히 불길이 옮겨붙는 것이다. 세계 각지로 뻗은 초고속 금융 네트워크도 모기지 위기가 전파되는 단초를 제공했다. 이번 모기지 사태도 워낙 전염성이 강해 '모기지 플루'(모기지 바이러스)라는 신조어가 생겨났을 정도다. 미국에서,그것도 주택대출시장에서 터진 부실이 영국 독일 등 유럽은 물론 아시아와 호주에까지 파급된 이유다.
장규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danielc@hankyung.com
◆고수익 증권으로 탈바꿈한 주택대출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서브프라임은 프라임보다 낮은 단계라는 뜻)는 신용도가 낮아 집을 살 때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사회정책의 산물이다. 1990년 미국 클린턴 행정부 당시 저소득층에 대한 금융지원 확대를 위해 융자관련 규정을 완화하면서 생겨났다. 신용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사람들이다 보니 아무래도 빌린 돈을 갚지 못할 가능성이 높고 그 위험 만큼 이자도 비쌌다. 집 값이 오르면 집을 되팔아 빚을 갚으면 그만이지만 최근 미국 집값이 크게 떨어지면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하는 사례가 급증하면서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이자가 높다보니 많은 금융기관들이 이자를 벌기 위해 경쟁적으로 서브프라임 시장에 돈을 투자했고,이에 따라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들이 연쇄적으로 자금 위기에 봉착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도미노가 무너지듯이 주택가격 하락→모기지 회사 부실→투자은행 자금 회수 불능→헤지펀드 자금난 파동을 일으키며 확산되는 상황이다. 모기지 회사들은 돈을 빌려 준 금융기관이니까 돈을 못받으면 직격탄을 맞는 것이 당연하지만 투자은행이나 헤지펀드가 파문에 휩싸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제공하는 금융회사들은 대출해줄 돈을 마련하기 위해 대출자산을 담보로 채권을 발행했다. 그러면 대형 투자은행이 이들 채권을 사들였고 투자은행은 이를 다시 자산담보부증권(CDO)이나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이라는 상품으로 만들어 헤지펀드에 팔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기본적으로 신용도가 낮은 사람에게 빌려주는 돈이기 때문에 이자가 높았고 이 높은 이자를 보고 여러 금융기관이 달려들었던 것이다. 금융기관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만으로 증권을 만든 것도 아니다. 신용도가 낮은 서브프라임 외에 신용도가 좋은 채권도 '양념'으로 첨가했다. 여기에 무디스나 S&P사 등이 투자 등급을 부여해 식욕을 당기게 했다.
서브프라임에 입질한 것이 미국 금융회사만이 아니었다. 호주와 유럽의 금융회사는 물론 대학펀드 연기금 등도 이 채권을 사들였다. 부실 가능성을 애초부터 갖고 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하이에나들처럼 한바탕 잔치를 벌였던 것이다.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을 돕는다는 취지의 사업이었지만 역시 경제에는 공짜가 없었던 셈이다.
◆신용위기의 전파 과정
위기의 근원을 따지고 올라가면 모기지 회사들에서 먼저 찾을 수 있다. 이들이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마케팅하면서 무분별하게 모기지 대출을 늘렸었다. 주택 수요자들 역시 앞다퉈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이용해 집을 사들였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2000년 이후 세계적인 저금리 현상이 이어지면서 너도나도 집사는 데 정신이 팔렸고 저금리가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는 착각 속에 점차 위험에 둔감해졌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금리가 뛰고 주택가격은 떨어지면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집을 내놓아도 더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수요자들 때문에 집도 팔지 못하고 빚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결국 지난 4월 서브프라임 모기지 회사인 뉴센추리파이낸셜이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파산을 선언했다.
잠시 진정되는 듯하던 부실 파문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그럴듯한 투자상품으로 변모시킨 투자은행들에서 다시금 터져나왔다. 지난 6월 미국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는 자신들이 운영하던 2개 펀드가 큰 손실을 입고 문을 닫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7월 말에는 독일 IKB은행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 투자로 수익이 타격을 입었다고 발표하고 최고경영자(CEO)가 사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불길은 순식간에 세계 금융회사와 금융시장으로 옮겨붙었다. 급기야 골드만삭스마저 자신의 대표 펀드에서 8월 들어서만 28%의 손실을 봤다고 '고해성사'를 했다.
불안감이 확산되자 일반 투자자들도 허둥지둥댔다. 큰 문제 없어보이던 펀드에 달려가 자신들의 투자원금을 돌려달라고 환매를 요구하는 이른바 '펀드런(fund run)'현상도 나타났다. 결국 프랑스 대표 은행인 BNP파리바는 지난 9일 3개 펀드의 환매를 중단한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신용위기'(Credit Crisis)란 그리 어려운 용어는 아니다. 언제 자신들의 돈이 떼일 지 모른다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돈의 흐름이 곳곳에서 막히는 그런 상황이다. 문제는 모든 사람이 시장을 불신하고 일거에 투자자금을 회수하면 우량 금융기관들은 물론 실적 좋은 일반 기업도 경영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우리나라의 기아자동차를 포함,세계적 기업들의 채권 발행이 불가능해지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돈이 있는 금융기관들도 몸을 사리면서 자금을 움켜쥐고만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난 6일에는 중간 정도 신용도를 가진 사람들에게 주택담보대출을 해주는 '알트 에이' 모기지 회사인 아메리칸 홈 모기지 인베스트먼트(AHMI)도 미국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더 높은 신용도를 요구하는 프라임 모기지 회사인 소른버그도 긴급 자금 마련을 위해 250억달러의 우량채권을 헐값 매각한다고 최근 밝혔다.
◆두려움에 떠는 세계 금융시장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의 여진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6개월에서 길게는 1년까지 이런저런 악재들을 계속 만들어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두려움을 걷어치우기엔 여기저기 지뢰들이 널려 있는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세계 금융시장이 동조화되면서 위기가 실시간으로 전파된다는 점이다. 금융상품 구조가 복잡해지고 정교해지면서 한 군데서 위기가 발생하면 다른 투자자산으로 급격히 불길이 옮겨붙는 것이다. 세계 각지로 뻗은 초고속 금융 네트워크도 모기지 위기가 전파되는 단초를 제공했다. 이번 모기지 사태도 워낙 전염성이 강해 '모기지 플루'(모기지 바이러스)라는 신조어가 생겨났을 정도다. 미국에서,그것도 주택대출시장에서 터진 부실이 영국 독일 등 유럽은 물론 아시아와 호주에까지 파급된 이유다.
장규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