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여론조사와 통계 그 태생적 오류
미국의 원로 코미디언 할 로치가 자연사박물관 안내원을 소재로 웃긴 적이 있다.

어느날 한 방문객이 선사시대 공룡뼈를 구경하다 그 뼈가 얼마나 오래 전의 것인지 안내원에게 물었다. 안내원은 머뭇거리지 않고 "300만17년 됐다"고 답했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정확하냐니까 안내원 왈, "내가 여기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그 뼈가 300만년 됐다고 들었는데, 그 후로 나는 17년째 일하고 있다."(김진호, 통계상식 백가지)

우스갯소리로 넘기면 그만이지만 실상 우리 주변에는 숫자로 과장하거나 허세를 부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만큼 사람들이 숫자를 신뢰하며,숫자를 인용해 말하면 훨씬 그럴싸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종일 숫자와 씨름해야 하는 게 우리의 일상이기도 하다.

대선을 넉 달 앞둔 이맘 때면 유권자들의 표심을 읽기 위한 여론조사가 각광을 받는다. 대선 예비 후보들의 지지율이나 특정 공약에 대한 찬반 의견을 묻는 여론조사 내용이 수시로 발표된다. 그래서 선거를 치를 때마다 국민들은 여론조사와 통계 전문가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여론조사에서의 지지율 부침에 따라 후보와 지지자들은 울고 웃는데, 막상 실제 선거에서는 여론조사와 다른 결과가 나올 때도 종종 있다. 100% 신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것이 여론조사다.

통계는 사회 현상을 수치로 설명하는 현대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정부의 경제정책 수립이나 기업의 투자 판단, 개인의 주식·집 구입 결정의 기초가 되는 경제통계가 대표적이다. 통계를 중립적으로 작성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할 때도 있고 이용자에 따라 같은 통계를 놓고 정반대 해석을 내리기도 한다. 이를 테면 경기 전망에 대한 설문조사인 기업 경기실사지수(BSI)가 100이면 응답자의 절반(응답 내용의 가중치는 있음)이 경기 회복을 전망하고, 나머지 절반은 반대로 답변한 것이다. "50%나 된다"와 "50%밖에 안 된다"의 차이인 셈이다.

그래서 통계에 대한 독설이 많다. "숫자는 거짓말을 안 한다. 그러나 거짓말쟁이들은 숫자를 이용할 궁리를 한다" "통계는 법정에서의 증인과 같다. 원고나 피고 어느 쪽을 위해서도 증언하도록 부를 수 있다" 같은 식이다.

여론조사든, 통계든 범람하는 숫자에 파묻혀서는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현대인이라고 할 수 없다. 숫자 공포증을 극복하고 능동적으로 숫자를 활용하는 것은 21세기 필수조건이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