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 사실로 받아들여선 곤란… 조사과정에 오차도 많아

[Cover Story] 여론조사 어디까지 믿을 수 있나?
세계적 여론조사 기관인 갤럽은 1948년 미국 대통령 선거 여론조사에서 크게 낭패를 봤다. 당시 대통령 트루먼을 제치고 듀이가 당선될 것이라고 예측했으나 선거 결과는 빗나가고 말았다. 예측이 빗나간 가장 큰 이유는 조사 대상으로 선정한 투표자 표본이 전체 국민을 대표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꾸준히 진행된 도시 집중화 현상을 고려하지 않은 채 농촌 인구를 과다하게 표본으로 삼았던 것.

여론 조사는 일반 대중의 의견을 통계적 방법으로 수집하는 것으로 그 결과는 흔히 진실한 여론으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선거철이 되면 언론들은 객관적 통계를 기반으로 정밀보도(precision journalism)를 한다며 여론 조사 결과를 대대적으로 인용 보도한다. 그러나 갤럽이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를 잘못 예측한 것처럼 여론조사 결과는 언제든지 틀릴 수 있다. 통계적,비통계적 오류로 인해 '진실한 여론'과 거리가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선거처럼 당선 결과가 바로 나올 경우 그나마 잘못된 조사라는 게 밝혀지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정치인 지지도 조사이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아 실시한 국정운영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조선일보는 국민의 25%가 노 대통령에게 지지를 보내고 있다고 한 반면 한겨레신문은 노 대통령의 지지도가 35%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같은 주제를 놓고 무려 10%포인트의 차이를 보인 것이다. 어느 신문의 조사가 정확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하나가 틀렸거나 둘 다 과장됐음은 분명하다. 최근 대통령 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후보별 지지율이 여론조사기관에 따라 다르게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여론조사가 틀리는 원인

여론 조사 결과가 틀리는 가장 큰 원인은 조사 비용과 조사 시간의 제약으로 통계 원칙이 정확히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론 조사는 표본으로 모집단을 추정하기 때문에 통계적 오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 오랜 여론 조사 경험을 가진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오류를 줄이기 위해 통계적 기준을 철저하게 지킨다. 하지만 국내 여론조사 기관들은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 전화 조사를 할 때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몇 시간 후 다시 연락해야 하는데 대상자를 다른 사람으로 임의 교체한다. 원하는 숫자의 응답자를 제한된 시간 안에 채우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할 경우 낮시간에 전화를 받을 수 있는 가정주부나 노인들이 조사에 응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선진국에서는 전화 연락이 되지 않으면 시차를 두고 계속 접촉을 시도하고 샘플 교체 인원도 최대 3배로 제한한다. 예를 들어 1000명을 조사 대상자로 정했으면 3000명까지 전화해 원하는 통화를 하지 못할 경우 조사 계획을 아예 파기한다는 것이다. 국내 여론 조사기관들은 조사 시간에 쫓기다보니 조사 대상자를 최대 10배까지 교체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표본이 많이 바뀌면 바뀔수록 대표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론 조사에 사용되는 질문 내용도 오류 발생 원인이 될 수 있다. 조사자는 응답자의 응답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중립적인 입장에서 질문서를 만들어야 하고 결과를 해석할 때도 중립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여론 조사 기관이 의도된 결과가 나오도록 설문지를 만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 활용될 여론 조사의 질문서를 놓고 이명박 전 서울시장 측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측은 서로 자기측에 유리한 내용의 질문을 내세우고 있다. 대중적 지지도가 높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 측은 '누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좋은가'(선호도)를 요구하는 반면 지지층의 충성도가 높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측은 '당신은 누구를 대통령 후보로 지지합니까'(지지도)를 주장하고 있다. 견제 상대가 있는 설문 조사에서조차 질문 내용을 놓고 이처럼 논란을 빚고 있으니 견제 상대가 없는 여당 정부부처의 정책홍보 설문조사는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여론 조사 남용 우려

이처럼 여론 조사 결과는 항상 틀릴 수 있다. 자료 수집의 제약이나 조사자의 의도에 따라 잘못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정당들은 여론조사를 마치 마법의 해결사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 2002년 노무현 당시 민주당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 21 후보가 후보단일화에 합의하고 여론조사를 처음 이용한 후 각 정당들은 총선과 지방선거 후보를 선정할 때 여론조사 결과를 대거 활용했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 한나라당도 대통령 후보 선정에 여론조사를 20% 반영할 예정이다. 하지만 잡음은 끊이지 않는다. 여론 조사 방식을 둘러싼 이명박·박근혜 양 캠프 간의 지루한 논쟁이 계속되자 한나라당의 여론 조사 반영 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과거 '3김 시대'의 보스정치 밀실정치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여론조사 활용이 마치 상향식 정당 운영 방법으로 비춰지는 경향이 있으나 이는 오해라고 정치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박주병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bpar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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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 결과는 다시 여론에 영향을 미친다

여론조사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일반 대중의 의견을 수집하는 것이지만 그 결과가 다시 여론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선거와 관련된 여론 조사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여론 조사 결과가 다시 일반 대중에 미치는 영향으로는 우세자 상승효과(Bandwagon effect)와 열세자 동정효과(Under dog effect) 두 가지가 있다.

밴드웨건 효과란 서커스 광고를 위해 악대 마차가 음악을 울리면서 군중을 몰고 다니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여론 조사에서 지지도가 앞선 후보자의 지지도가 더욱 상승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효과를 주장하는 측은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승자 쪽에 서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다고 가정한다. 자신의 의사를 미처 결정하지 못한 유권자들이 여론 조사에서 우세한 후보를 선택하게 되고 그 결과 우세 후보의 지지도가 더욱 올라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언더 독 효과론자들은 인간의 심리에는 지는 쪽을 동정하는 심리가 있다고 본다. 또 최소한 몇몇 사람들의 투표행동은 선거결과에 대한 그들의 기대와 함수 관계를 갖기 때문에 여론 조사 결과 열세 후보자에게 동정표를 던진다는 것이다. 밴드웨건과 언더 독 두 가지 효과 중에서 정치인들은 밴드웨건 효과를 더 믿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후보자가 다수인 경우 밴드웨건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당선 가능권에서 멀어지면 선거자금을 모으는 것은 물론 미디어의 관심에서도 멀어지기 때문이다. 1990년 미국 미네소타 상원의원 선거에서 도전자인 웰스턴은 선거 유세 초반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1위 후보와 지지도 차이가 크지 않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이후 선거 자금이 쏟아져 들어왔다고 한다. 이러한 밴드웨건 효과 때문에 선거철만 되면 각 선거 후보 캠프는 실제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지지도보다 더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고 홍보할 뿐 아니라 지지도 통계를 높이기 위해 여러 수단을 동원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