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종교에 대한 주술적 신념이 악마의 사주를 받아들이게 한다
"그들 사이에 평화가 깃들게 하라. 그렇지만 만약 그 둘 가운데 하나가 나머지에 대해 끝까지 침략하고자 고집한다면, 그 침략에 대항해 싸우라. 그 침략자가 하나님의 계명 안으로 되돌아올 때까지."

이는 이슬람교 경전인 코란의 가르침이다. 테러를 일삼는 이슬람 무장세력들은 악을 벌하라는 코란의 정신을 근거로 내세워 자신들의 행위를 '지하드(성전)'로 부르면서 합리화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의 이면에는 '평화가 깃들게 하라'는 가르침을 지키기 위해 무자비한 테러를 불사한다는 모순이 존재한다.

폭력의 대상이 이교도로 간주되는 서방 국가나 국민이라면 테러 행위는 더욱 극단적인 방법으로까지 이르게 된다. 비행기 두 대를 연이어 고층빌딩에 충돌시켜 무려 3000명 가까운 민간인을 희생시킨 9ㆍ11 테러가 대표적이다. 탈레반이 납치한 한국인을 두고 "이교도이기 때문에 여자라도 살해할 수 있다"며 위협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뿌리 깊은 기독교-이슬람 간 갈등

최근 발생하는 테러 사건들은 대부분 서방 세계와 이슬람권의 갈등에서 비롯됐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파키스탄 등지에서 활동하는 저항세력들은 자신들의 자치권을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명분 없이 짓밟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기독교권과 이슬람권이 사사건건 대립했던 역사에서 기인한 뿌리 깊은 증오심이 더해져서 대립은 더욱 격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이들 간의 대립의 뿌리는 7세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무슬림 지도자 칼리프 우마르가 비잔틴 제국의 관할 아래 있던 기독교 성지 예루살렘을 정복했었다. 유럽의 기독교 국가들은 즉각 성지 회복을 위해 십자군 전쟁을 벌였고 이는 무려 300년 가까이나 지속됐다. 16세기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전성기 때에는 반대로 유럽인들이 벌벌 떨었다. '한손에는 칼, 다른 한 손에는 코란'을 들었다는 무슬림들이 자기 마을에 쳐들어 올까봐 밤을 지새웠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유럽 기독교 문화권과 아랍 이슬람권의 반목은 치유할 수 없는 정도로까지 진행됐다. 뿌리 깊은 종교 간의 다툼이 중동 지역의 최근 정치 상황과 결합되면서 갈등의 폭은 더욱 넓어지는 한편, 상처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 서방 세계와 중동 일부 국가들이 벌이는 테러와 반테러의 악순환을 쉽게 풀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문명의 충돌'을 쓴 사무엘 헌팅턴은 1996년 발간된 책에서 "서구의 거만함과 이슬람의 편협함이 위험천만한 충돌을 예고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테러와 전쟁의 악순환

이런 가운데 양 세력이 갖고 있는 현실적인 힘의 무게 추가 한쪽으로 쏠리면서 21세기 들어 갈등의 양상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외세에 좌지우지되는 몇몇 중동 국가들을 보면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무슬림들이 속속 알 카에다 등 목숨을 내건 테러를 마다 않는 집단에 가담했다.

이들은 미국 군사력의 상징인 국방부 건물(펜타곤)과 세계 경제의 상징이었던 쌍둥이 빌딩을 공격하는 9ㆍ11 테러를 저질렀다. 미국은 군사 작전을 통해 테러리스트들을 뿌리 뽑겠다고 다짐했고 이 전쟁의 와중에 이슬람권의 무고한 민간인들이 죽어나가자 저항세력에 가담하는 이들은 더욱 늘어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눈 앞에서 가족 친구 등의 죽음을 목격한 충격에다 '이교도에 의한 학살'이라는 의식까지 더해지면서 '전사'들은 물불 안가리는 자살테러의 행렬에 나서게 된 것이다.

◆종교적 신념이 극단주의 낳아

과거 제국주의 시대나 냉전 시기에도 테러는 있었다. 당시엔 주로 민족주의나 이념이 테러를 감행하는 명분이 됐다. 하지만 서방 세계를 향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테러 공세는 이와는 조금 다른 양상을 띄고 있다. 과거에는 주로 '요인 암살'이나 전투력이 우위에 있는 상대편 군대를 향한 '게릴라전' 수준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이 난무하고 있다.

이는 이슬람 저항 세력들이 종교적 신념에서 비롯된 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그들은 사악한 종교를 믿고 있고 포괄적인 의미에서 범죄자이며 완전한 인권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상태에 빠지게 된다. '심판의 대상'으로 보게 된다는 얘기다.

이러한 극단주의는 비단 이슬람교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 한때 맹위를 떨친 '쿠 클럭스 클랜(이른바 KKK단)'이라는 기독교 근본주의 단체는 백인 기독교도가 아니면 모두 '들판의 짐승'과 같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마음껏 폭력을 행사해도 좋다는 사상을 갖고 있었다. 가톨릭교도로 이뤄진 아일랜드공화군(IRA) 역시 테러를 주요 저항 수단으로 활용한 기독교 계열의 극단주의자라 할 수 있다.

차기현 한국경제신문 기자 kh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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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와 암살, 뭐가 다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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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란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가해지는 모든 형태의 폭력을 지칭한다. 테러는 테러를 당하는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주어 (테러범들이) 의도한 방향으로 몰고가는 것이 주목적이다. 따라서 테러범들은 테러를 가한 뒤 스스로의 행위를 공개하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대량 살상 무기의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오늘날 테러는 '무고한 불특정 다수'를 겨낭한 살상으로 치달아 큰 문제다.이에 반해 암살은 특정 인물을 제거함으로써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인 목적은 추후 다양한 수단으로 미화된다. 정치적 목적으로 저질러진 대표적인 암살은 고대 로마 시대 집권자였던 카이사르를 부르투스 등 반대파가 칼로 찔러 죽이고 정권을 빼앗은 사건이다. 부르투스 등은 암살 뒤 연설을 통해 "카이사르가 영구집권을 획책하고 있어 시민들의 숭고한 권리를 지키기 위해 그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정당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불가피한 수단으로서 폭력을 사용했다는 주장인 것이다.

사마천이 쓴 중국 역사서 '사기'에는 '자객열전'이라는 부속서가 포함돼 있다. 자객 역시 요즘 말로 풀면 테러리스트다. 사마천은 연나라의 자객 형가(荊軻)가 왕의 복수를 위해 진시황을 암살하러 떠나면서 부른 노래와 주군의 복수를 위해 칼을 빼어든 예양(豫讓)과 그의 의리에 감동해 눈물을 흘린 조양자(趙襄子)의 이야기 등 용감한 자객들의 일생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 역시 목적의 숭고함을 근거로 한 살인 행위의 합리화에 해당된다.

이처럼 암살의 역사는 인류가 살아온 시간만큼이나 길다. 그럴듯한 대의명분을 내세우는 경우도 있지만 아예 누가 암살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세월이 흘러 잊혀지는 경우도 많다. 테러와 암살은 분명 다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