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 샘물교회 소속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두 민간인이 탈레반 무장세력의 만행으로 목숨을 잃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고 글을 쓰는 이 시점에도 남은 한국인 인질 21명이 억류돼 있다.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탈레반 자신들과 일부 추종·지지자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세계인들이 이처럼 민간인을 납치·살해하는 행위를 테러로 규정하고 탈레반 무장세력을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탈레반과 같은 종교를 신봉하는 57개 이슬람권 국가가 모인 이슬람회의기구(OIC)나 아랍연맹까지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범죄 행위"라며 규탄하고 나선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테러라는 수단을 사용하는 일까지도 서슴지 않는 것을 테러리즘이라고 한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은 테러 세력을 발본색원한다며 아프간,이라크 등지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대대적으로 벌였지만 테러리즘은 오히려 더욱 확산되는 양상이다.
사람의 목숨이 함부로 다뤄지는 현실에 대한 슬픔과 분노 속에서도 우리는 테러에 대해 냉정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무엇이 테러인지,어떤 집단이 무슨 이유에서 그같은 극단적인 수단을 쓰게 되는지를 말이다. 그래야만 인류가 쌓아온 민주주의와 평화적 국제 질서의 성과를 깡그리 짓밟는 테러와 그에 따른 전쟁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 테러인가
이번 아프간 납치 사건처럼 명백하게 테러로 규정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테러리즘과 저항권의 경계가 보는 입장과 관점에 따라 희미해지기도 한다. 서방을 겨냥한 일부 극렬 이슬람 근본주의자의 테러를 놓고 국내 좌파들 가운데선 이를 '불가피한 저항권 행사'라고 주장하는 시각이 분명히 존재했다.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납치극이 벌어진 뒤부터는 내놓고 말하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사실 어떤 국가나 집단이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폭력이라는 수단을 동원한 경우 이 중 어떤 것을 범죄로 규정할 수 있을지 딱 잘라 말하기는 쉽지 않다. 정당한 목적이 있다 할지라도 폭력을 사용해선 안된다는 비폭력 원칙을 고수하는 입장에서부터,당사자 간 힘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는 가운데 정당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행사하는 '게릴라식' 저항은 가장 효과적인 정치적 수단의 하나라는 생각에 이르기까지 테러를 보는 시각이 다양하기 때문이다.이런 가운데서도 캐나다의 정치학자인 조너선 바커가 '테러리즘 폭력인가 저항인가'라는 저서에서 제시한 테러의 개념이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어 주목된다. 바커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민간인을 목표물로 삼아 폭력을 행사하겠다고 위협하거나 실제로 실행하는 행위"를 테러라고 정의했다.
국내 대표적인 테러리즘 전문가인 여영무씨도 '국제 테러리즘 연구'라는 책에서 테러리즘과 저항권을 가르는 기준으로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행사하는 폭력의 대상이 무고한 제3자나 민간인인지,대항하는 정부 또는 권력집단이 정당성과 합법성이 있는 집단인지,폭력 이외의 방법으로는 정당한 뜻을 표출할 수 없는 상황인지" 등을 제시했다.
이 같은 기준으로 보면 탈레반 무장세력의 한국인 납치·사례는 '테러'임이 더더욱 명백해진다. 인질들은 의료 봉사활동을 주로 수행한 민간인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이라크 저항세력이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군사시설에 대해 자살폭탄 공격을 감행하는 것은 테러로 보기 힘들어진다. 비정규군이긴 하지만 이들 저항세력 역시 명령 체계를 가지고 있는 군사조직인 데다 비록 종전선언을 했더라도 이라크에 주둔 중인 미군을 민간인으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또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정당했는지 여부는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기도 하다.
◆테러는 왜 발생 하는가
으로 테러를 근절해야 한다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테러 집단이 어떤 동기에서 그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지를 따져 봐야 할 것이다. 테러라는 비인도적인 행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들을 두둔하는 목소리가 존재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미국 내 대표적인 좌파 사회학자인 노엄 촘스키는 알 카에다 같은 테러 집단이 발생하게 된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바로 미국의 국가 테러라고 주장했다. 테러가 늘어나는 원인으로 미국의 일방주의를 지목한 것이다. 아랍권에서 벌어지는 테러는 서방 세계가 자초한 일이라는 시각은 국내에도 생각보다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미국이 명분이 부족한 전쟁을 치르면서 무고한 민간인도 많이 희생되었기 때문에 아프간전과 이라크전은 전쟁을 가장한 국가 테러라는 것이 이 같은 주장의 핵심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종종 테러리스트들이 터뜨린 폭발물에 희생된 사람들의 숫자와 전쟁에서 희생된 무고한 민간인의 숫자를 비교해 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독재자 후세인을 이해하고 용서할 수도 없다. 후세인 치하에서 박해받았던 일반 민중이나 다른 정치집단,혹은 소수민족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어떻든 외국인을 무차별적으로 납치해 인질로 삼고 공개 처형하기까지 하는 일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행위는 이미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 못한다'는 명제가 이를 뒷받침한다. 물론 테러리스트들은 자신들의 폭력이 테러가 아니라 전쟁이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하지도 않은 짓을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거나 테러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마약을 재배하고 인질 협상 과정에서 돈을 요구하는 등의 행위는 그같은 주장의 설득력을 점점 떨어뜨리고 있다.
차기현 한국경제신문 기자 khcha@hankyung.com
▶도움말 주신분 = 양윤덕 선생님(경기 덕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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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는 테러리스트인가
만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사살한 안중근 의사는 테러리스트인가 아닌가? 일본 국왕의 생일 축하행사가 벌어지고 있는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 수류탄을 투척한 윤봉길 의사는 어떤가?
한국인들이야 당연히 일본 제국주의의 불법적인 병탄에 맞선 의거이며 정당한 저항권의 행사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일본 극우파를 비롯한 수많은 일본인들이,영웅 대접을 받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들 입장에선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다.
나아가 한국인과 일본인이라는 국적을 완전히 초월해 인류 보편의 가치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테러와 저항의 차이는 바로 이런 데서 극명하게 갈릴 수도 있다. 한반도를 강점한 일본과 식민지라는 억압구조에서 본다면 누가 뭐래도 안중근·윤봉길 의사는 우리가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테러리스트는 아니다. 식민지 해방,독립 쟁취라는 보편성을 갖고 있었을 뿐더러,테러의 상대도 불법적으로 한반도를 지배하고 있던 일본의 정치인 혹은 군인들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안중근 의사는 일본 법정에서 자신이 '대한국 의군 참모 중장'이고 전쟁 중인 국가 사이의 교전 행위로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즉 자신이 전쟁 포로는 될 수 있을지언정 테러리스트는 아니라는 점을 명백히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최근 일부에선 안중근 의사를 '안중근 장군'으로 바꿔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생글생글은 33만명의 고등학생 독자들과 함께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된 한국인 인질 21명의 조속한 귀환을 간절히 기원합니다.
탈레반 자신들과 일부 추종·지지자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세계인들이 이처럼 민간인을 납치·살해하는 행위를 테러로 규정하고 탈레반 무장세력을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탈레반과 같은 종교를 신봉하는 57개 이슬람권 국가가 모인 이슬람회의기구(OIC)나 아랍연맹까지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범죄 행위"라며 규탄하고 나선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테러라는 수단을 사용하는 일까지도 서슴지 않는 것을 테러리즘이라고 한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은 테러 세력을 발본색원한다며 아프간,이라크 등지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대대적으로 벌였지만 테러리즘은 오히려 더욱 확산되는 양상이다.
사람의 목숨이 함부로 다뤄지는 현실에 대한 슬픔과 분노 속에서도 우리는 테러에 대해 냉정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무엇이 테러인지,어떤 집단이 무슨 이유에서 그같은 극단적인 수단을 쓰게 되는지를 말이다. 그래야만 인류가 쌓아온 민주주의와 평화적 국제 질서의 성과를 깡그리 짓밟는 테러와 그에 따른 전쟁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 테러인가
이번 아프간 납치 사건처럼 명백하게 테러로 규정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테러리즘과 저항권의 경계가 보는 입장과 관점에 따라 희미해지기도 한다. 서방을 겨냥한 일부 극렬 이슬람 근본주의자의 테러를 놓고 국내 좌파들 가운데선 이를 '불가피한 저항권 행사'라고 주장하는 시각이 분명히 존재했다.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납치극이 벌어진 뒤부터는 내놓고 말하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사실 어떤 국가나 집단이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폭력이라는 수단을 동원한 경우 이 중 어떤 것을 범죄로 규정할 수 있을지 딱 잘라 말하기는 쉽지 않다. 정당한 목적이 있다 할지라도 폭력을 사용해선 안된다는 비폭력 원칙을 고수하는 입장에서부터,당사자 간 힘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는 가운데 정당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행사하는 '게릴라식' 저항은 가장 효과적인 정치적 수단의 하나라는 생각에 이르기까지 테러를 보는 시각이 다양하기 때문이다.이런 가운데서도 캐나다의 정치학자인 조너선 바커가 '테러리즘 폭력인가 저항인가'라는 저서에서 제시한 테러의 개념이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어 주목된다. 바커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민간인을 목표물로 삼아 폭력을 행사하겠다고 위협하거나 실제로 실행하는 행위"를 테러라고 정의했다.
국내 대표적인 테러리즘 전문가인 여영무씨도 '국제 테러리즘 연구'라는 책에서 테러리즘과 저항권을 가르는 기준으로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행사하는 폭력의 대상이 무고한 제3자나 민간인인지,대항하는 정부 또는 권력집단이 정당성과 합법성이 있는 집단인지,폭력 이외의 방법으로는 정당한 뜻을 표출할 수 없는 상황인지" 등을 제시했다.
이 같은 기준으로 보면 탈레반 무장세력의 한국인 납치·사례는 '테러'임이 더더욱 명백해진다. 인질들은 의료 봉사활동을 주로 수행한 민간인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이라크 저항세력이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군사시설에 대해 자살폭탄 공격을 감행하는 것은 테러로 보기 힘들어진다. 비정규군이긴 하지만 이들 저항세력 역시 명령 체계를 가지고 있는 군사조직인 데다 비록 종전선언을 했더라도 이라크에 주둔 중인 미군을 민간인으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또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정당했는지 여부는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기도 하다.
◆테러는 왜 발생 하는가
으로 테러를 근절해야 한다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테러 집단이 어떤 동기에서 그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지를 따져 봐야 할 것이다. 테러라는 비인도적인 행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들을 두둔하는 목소리가 존재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미국 내 대표적인 좌파 사회학자인 노엄 촘스키는 알 카에다 같은 테러 집단이 발생하게 된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바로 미국의 국가 테러라고 주장했다. 테러가 늘어나는 원인으로 미국의 일방주의를 지목한 것이다. 아랍권에서 벌어지는 테러는 서방 세계가 자초한 일이라는 시각은 국내에도 생각보다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미국이 명분이 부족한 전쟁을 치르면서 무고한 민간인도 많이 희생되었기 때문에 아프간전과 이라크전은 전쟁을 가장한 국가 테러라는 것이 이 같은 주장의 핵심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종종 테러리스트들이 터뜨린 폭발물에 희생된 사람들의 숫자와 전쟁에서 희생된 무고한 민간인의 숫자를 비교해 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독재자 후세인을 이해하고 용서할 수도 없다. 후세인 치하에서 박해받았던 일반 민중이나 다른 정치집단,혹은 소수민족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어떻든 외국인을 무차별적으로 납치해 인질로 삼고 공개 처형하기까지 하는 일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행위는 이미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 못한다'는 명제가 이를 뒷받침한다. 물론 테러리스트들은 자신들의 폭력이 테러가 아니라 전쟁이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하지도 않은 짓을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거나 테러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마약을 재배하고 인질 협상 과정에서 돈을 요구하는 등의 행위는 그같은 주장의 설득력을 점점 떨어뜨리고 있다.
차기현 한국경제신문 기자 khcha@hankyung.com
▶도움말 주신분 = 양윤덕 선생님(경기 덕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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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는 테러리스트인가
만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사살한 안중근 의사는 테러리스트인가 아닌가? 일본 국왕의 생일 축하행사가 벌어지고 있는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 수류탄을 투척한 윤봉길 의사는 어떤가?
한국인들이야 당연히 일본 제국주의의 불법적인 병탄에 맞선 의거이며 정당한 저항권의 행사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일본 극우파를 비롯한 수많은 일본인들이,영웅 대접을 받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들 입장에선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다.
나아가 한국인과 일본인이라는 국적을 완전히 초월해 인류 보편의 가치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테러와 저항의 차이는 바로 이런 데서 극명하게 갈릴 수도 있다. 한반도를 강점한 일본과 식민지라는 억압구조에서 본다면 누가 뭐래도 안중근·윤봉길 의사는 우리가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테러리스트는 아니다. 식민지 해방,독립 쟁취라는 보편성을 갖고 있었을 뿐더러,테러의 상대도 불법적으로 한반도를 지배하고 있던 일본의 정치인 혹은 군인들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안중근 의사는 일본 법정에서 자신이 '대한국 의군 참모 중장'이고 전쟁 중인 국가 사이의 교전 행위로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즉 자신이 전쟁 포로는 될 수 있을지언정 테러리스트는 아니라는 점을 명백히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최근 일부에선 안중근 의사를 '안중근 장군'으로 바꿔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생글생글은 33만명의 고등학생 독자들과 함께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된 한국인 인질 21명의 조속한 귀환을 간절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