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 7월11일자 A1면)

[뉴스로 읽는 경제학] 필수공익사업장 파업해도 되나요?
내년부터 병원과 항공운수,철도 등 필수공익사업장도 합법적으로 파업을 할 수 있지만 파업시라도 응급실이나 항공기 조종 등 필수 업무는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 또 필수공익사업장이 파업에 들어가면 파업 참가자의 50% 이내에서 대체근로가 허용된다.

노동부는 10일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내년 1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안에 대해 재계는 "정부가 노동계를 의식,필수 유지 업무를 지나치게 제한적으로 열거했다"고 주장하고,노동계는 "대체근로 허용 범위가 너무 넓다"며 반발하는 등 노사 모두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개정안에 따르면 필수공익사업장에 대한 직권중재를 폐지하는 대신 응급실이나 항공기 조종,철도 운전 등 공중의 생명·건강,신체 안전과 관련한 필수 업무는 유지해야 한다.15일 동안 파업을 금지할 수 있는 필수공익사업장에 대한 직권중재는 그동안 노조의 파업권을 사전에 제한한다는 국내외의 비판을 받아온 사안으로 노·사·정은 지난해 국제노동 기준에 맞게 노동 관련법을 개정한다는 취지에서 직권중재를 폐지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직권중재 폐지로 필수공익사업장 노조들도 쟁의조정 신청 등 일정한 절차를 거쳐 사전에 파업권을 제약받지 않지만 파업을 하더라도 필수 업무로 지정한 것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인원을 유지해야 한다. 필수 업무는 철도·도시철도 운전 항공운수 조종·보안검색 수도 취수·정수 전기 발전설비 운전·정비 석유 인수·제조·저장·공급 병원 응급의료·분만·수술 혈액공급 채혈·검사 등이다.

필수 유지 업무의 유지 수준과 대상 직무,인원 등 구체적 운영 방법은 노사가 자율적으로 정하되 노사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노동위원회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

윤기설 한국경제신문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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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항공운수,철도 같은 필수공익사업장의 파업권 규제 문제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필수공익사업장에 대해 합법적으로 파업할 수 있는 길을 터주는 대신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된 업무는 반드시 유지토록 한 '필수유지업무' 범위를 놓고 노사 모두가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민주노총은 필수유지업무 이외 분야에서 파업할 때도 사용자가 대체근로인력을 투입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은 단체행동권을 무력화하려는 기도라고 비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필수업무의 범위를 지나치게 넓게 규정했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한국경영자총협회 측은 노동계의 입장만 고려한 나머지 필수업무를 너무 제한적으로 제시했다고 주장한다. 필수업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포괄적인 규정 방식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논란을 빚고 있는 직권중재제도 폐지에 따른 후속 조처를 놓고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말하자면 주요 노동현안을 놓고 대립해 온 노사 단체들이 이번에도 불만부터 터뜨리고 있는 양상이다. 필수 공익사업장의 파업제한이 시대착오적인 것인지 아니면 당연한 것인지 살펴본다.

◆노동계 "공익사업장 쟁의권 봉쇄는 시대착오적 발상"

노동계에서는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악명 높은 직권중재 폐지에 따른 후속 조처의 내용을 보면 이전보다 별로 나아진 게 없다고 주장한다. 만약 직권중재를 폐지하기로 했다면 이로 인해 그동안 원천 봉쇄된 노조의 쟁의권을 보장하는 선에서 대체입법을 만들어야 하는 데도 이번 개정안은 파업이 금지되는 필수유지업무의 범위를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필수공익 사업장 노조에 '영향력 없는 파업'만 허용한 격이라는 얘기다.

더욱이 파업이 가능한 업무에서도 파업시 대체근로자를 50%까지 투입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어 노조는 아예 파업을 못하거나,해봤자 사용자에게 타격을 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사용자와 맞설 무기가 없는 노조는 존재의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 당국은 단체행동이라면 무조건 틀어막는 게 최선이라는 구시대적 발상부터 버려야 하며 이제라도 진정한 절충안 마련을 위해 노동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영계 "필수유지업무 더 포괄적으로 규정해야"

이에 대해 경영자총협회는 이번 개정안은 노동계의 입장만을 고려해 필수유지업무를 지나치게 제한적으로 열거하고 있어 필수유지업무 본래의 취지를 몰각시킬 우려가 크다고 지적한다. 때문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필수유지업무를 더욱 포괄적으로 규정하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향후 필수공익사업장에서의 노사불안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지 않도록 정부가 만전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일반적인 여론도 공익사업장의 경우 근로자의 파업권보다는 일반 국민의 생활과 생명·안전 보호 등 공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번 안은 타당성이 높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동안 철도,병원 등의 파업으로 시민 불편과 국가경제적 피해가 엄청났으며 그 때마다 '국민을 볼모로 한 파업은 안 된다'는 여론이 비등했던 점에 비춰보면 오히려 늦은 감마저 없지 않다고 강조한다.

◆필수유지업무 확대하고 대체근로 전면허용해야

언뜻 보면 이번 개정안은 노동자와 사용자 간 힘의 균형을 유지한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필수유지업무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등 파업으로 인한 국민들의 피해를 줄이는 데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지 여간 걱정스러운 게 아니다.

무엇보다 필수유지업무를 지정하고 부분적인 대체근로를 허용하는 정도로 노동계의 무분별한 파업을 억제시킬 수 있을지부터 의문이다. 직권중재 제도가 있어도 불법파업이 기승을 부려온 게 우리 노동계의 현실인데 그런 견제장치가 없어진 상황에서 막무가내식 강경투쟁이 얼마나 만연할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게다가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파업이 일어날 경우 긴급조정제로 해결하기가 쉽지 않을 뿐 더러 대체근로체제가 제대로 가동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실정이다. 따라서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된 필수공익사업장의 파업 요건은 더욱 강화하지 않으면 안된다. 필수유지업무를 좀 더 광범위하게 규정하는 것은 물론 대체근로도 전면 허용해 무분별한 파업을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 공공부문에 대해서는 아예 파업 자체를 불허하는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사례를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용어 풀이]

◆필수공익사업=공중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거나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사업으로서,그 업무의 정지 또는 폐지가 공중의 일상생활을 현저히 위태롭게 하거나 국민경제를 현저히 저해하고 그 업무의 대체가 용이하지 아니한 사업을 일컫는다.

철도(도시철도 포함)를 비롯 수도,전기,가스,석유정제 및 석유공급사업,병원사업,한국은행,통신사업 등을 꼽을 수 있다.

◆필수유지업무=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거나,국가긴급사태를 초래할 수 있는 업무,안전과 사고방지를 위해 꼭 필요한 업무 등을 말하며 이번 노동법 개정안에 반영된 핵심 내용의 하나다.

노동조합은 회사와 합의해 어느 정도 작업 수준을 유지할 지를 먼저 정한 뒤라야 파업에 들어갈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직권중재=필수공익사업장의 파업 장기화를 막고 국민 생활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노동쟁의 발생시 정부가 직접 개입하여 법적으로 파업을 중단시키고 노사합의를 도출해내는 것을 말한다.

노동조합의 파업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제도라는 비판을 받아들여 정부는 이를 폐지키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