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는 양면성이 있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탐욕스런 골룸은 인간에게 내재한 어두운 단면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읽힌다.
마치 스파이더맨이 외계생물체에 지배돼 블랙 스파이더가 되었듯이.골룸이 탐낸 절대반지는 그것을 끼는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
심지어 주인공 프로도마저 절대반지를 파괴해야 할 순간에 끝내 행동에 옮기지 못했다.
다행히 프로도에겐 샘이라는 친구이자 견제자가 있었다.
샘이 없었다면 프로도 역시 골룸과 다를 게 없었다.
타락하고 말았을 것이다.
여기서 모두가 탐낸 절대반지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권력,탐욕,아집,독선,맹목,광기와도 일맥상통한다.
현대 민주사회는 복잡다단한 의견과 이해관계를 가진 개인과 집단의 집합체이다.
각자의 이해관계는 언제나 모순되고 충돌한다.
권력,돈,힘,영향력이 타인의 의사 표현을 가로막는 무기가 될 위험은 상존한다.
그래서 헌법 21조에는 스스로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고 소신있게 표현할 수 있도록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한다.
제도화된 언론을 '데블즈 애드버킷(devil's advocate)'이라고도 한다.
악마를 위해 일하는 검사라는 말도 된다.
왜 악마를 위한 증언자라는 별명을 하필 언론에 붙였을까.
누구나 죽어서 지옥에 가면 그 사람이 살아생전에 했던 일 중 착한 일만 조사하는 검사가 있고 잘못한 일만 조사하는 검사가 있다고 한다.
이때 악행만 조사하는 역할을 맡은 저승사자가 바로 데블즈 애드버킷이다.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바로 그 직업의 소명 때문에 결코 누구에게도 환영받지는 못하는 인물이다.
언론에 대해 비아냥대는 목소리는 어느 시대나 어느 국가에서나 적지 않았다.
하버마스 같은 철학자들은 언론을 비판하는데 평생을 보냈다고 할 정도다.
비판자,즉 언론의 소리는 언제든 듣기 싫다.
왕조시대의 사관들도 그런 역할을 했다.
그래서 사초는 임금도 마음대로 보지 못했다.
대부분 독재국가는 언론을 아예 정부기구로 만들어 버린다.
히틀러도 그렇지만 인민의 이름으로 독재를 하는 공산주의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조지 오웰의 1984년에 나오는 '진리성(ministry of truth)'처럼 정부가 장악한 언론은 언제나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북한 로동신문이 바로 그렇다.
옛 러시아 공산당이 망하기 전 프라우다라는 유명한 신문이 있었다.
프라우다는 러시아 말로 진리라는 뜻인데,당시 러시아 사람들은 "프라우다에는 프라우다가 없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만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은 없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ohk@hankyung.com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탐욕스런 골룸은 인간에게 내재한 어두운 단면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읽힌다.
마치 스파이더맨이 외계생물체에 지배돼 블랙 스파이더가 되었듯이.골룸이 탐낸 절대반지는 그것을 끼는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
심지어 주인공 프로도마저 절대반지를 파괴해야 할 순간에 끝내 행동에 옮기지 못했다.
다행히 프로도에겐 샘이라는 친구이자 견제자가 있었다.
샘이 없었다면 프로도 역시 골룸과 다를 게 없었다.
타락하고 말았을 것이다.
여기서 모두가 탐낸 절대반지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권력,탐욕,아집,독선,맹목,광기와도 일맥상통한다.
현대 민주사회는 복잡다단한 의견과 이해관계를 가진 개인과 집단의 집합체이다.
각자의 이해관계는 언제나 모순되고 충돌한다.
권력,돈,힘,영향력이 타인의 의사 표현을 가로막는 무기가 될 위험은 상존한다.
그래서 헌법 21조에는 스스로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고 소신있게 표현할 수 있도록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한다.
제도화된 언론을 '데블즈 애드버킷(devil's advocate)'이라고도 한다.
악마를 위해 일하는 검사라는 말도 된다.
왜 악마를 위한 증언자라는 별명을 하필 언론에 붙였을까.
누구나 죽어서 지옥에 가면 그 사람이 살아생전에 했던 일 중 착한 일만 조사하는 검사가 있고 잘못한 일만 조사하는 검사가 있다고 한다.
이때 악행만 조사하는 역할을 맡은 저승사자가 바로 데블즈 애드버킷이다.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바로 그 직업의 소명 때문에 결코 누구에게도 환영받지는 못하는 인물이다.
언론에 대해 비아냥대는 목소리는 어느 시대나 어느 국가에서나 적지 않았다.
하버마스 같은 철학자들은 언론을 비판하는데 평생을 보냈다고 할 정도다.
비판자,즉 언론의 소리는 언제든 듣기 싫다.
왕조시대의 사관들도 그런 역할을 했다.
그래서 사초는 임금도 마음대로 보지 못했다.
대부분 독재국가는 언론을 아예 정부기구로 만들어 버린다.
히틀러도 그렇지만 인민의 이름으로 독재를 하는 공산주의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조지 오웰의 1984년에 나오는 '진리성(ministry of truth)'처럼 정부가 장악한 언론은 언제나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북한 로동신문이 바로 그렇다.
옛 러시아 공산당이 망하기 전 프라우다라는 유명한 신문이 있었다.
프라우다는 러시아 말로 진리라는 뜻인데,당시 러시아 사람들은 "프라우다에는 프라우다가 없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만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은 없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