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끊임없이 비판ㆍ감시하는게 언론의 의무

민주주의는 완전하다고 우길 때 독선 생겨나

[Cover Story] "신문 없는 정부보다는 차라리 정부 없는 신문 택하겠다"
"국민이 통제하지 않으면 어떤 정부도 계속 좋은 일을 할 수 없다.""신문 없는 정부보다는 차라리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

미국 헌법을 기초한 토머스 제퍼슨이 남긴 명언이다.

국민이 위임한 정부 권력의 남용을 경계했고 정부의 감시자로서 언론의 자유를 강조한 것이다.

제퍼슨은 나중에 제3대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고 나선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명언'을 후회했다.

"대통령에 관한 기사는 다 거짓말이야.그런 기사 쓴 놈들을 손 좀 봐줘야겠어."

민주사회를 구성하는 정부와 언론은 태생적으로 긴장 관계일 수밖에 없다.

긴장이 아닌 밀월관계라면? 독재정권과 부패한 언론일 것이다.

민주주의는 상호 건전한 긴장과 견제 속에 발전한다.

민주주의와 제4부로 일컬어지는 언론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자.

◆민주주의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중국 공산당 지도자 마오쩌둥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대통령의 거부권,국회의원의 면책권,검찰의 기소권 등은 민주주의 대리인들에게 부여된 국민의 권한이다.

하지만 권력을 위임 받은 대리인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권력을 특권화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민주주의 이전의 사상들(맹자 플라톤 등)은 선한 자가 다스리면 세상이 선해지고 악한이 권력을 잡으면 악해진다고 봤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선 선한 자도 절대 권력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다고 본다.

그래서 끊임없는 자기반성과 견제와 비판이 필요하다.

이는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가장 순수했던 프로도가 마지막 순간 절대반지를 용광로 속에 집어던지지 못한 것과도 같다.

프로도가 유혹에 빠질 때마다 샘이라는 견제자가 있었다.

◆언론 좋아하는 권력자는 없다

역사상 어느 나라에서도 언론을 좋아한 권력자를 찾아보기 어렵다.

제퍼슨 뿐아니라 링컨,케네디까지도 재임 중에는 신랄한 비판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빌 클린턴 대통령은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을 할 때 회담 의제가 아닌 르윈스키와의 추문에 대해 기자들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또 절대 왕정이었던 조선시대에도 사간원·사헌부의 간관(諫官)들은 "전하 아니되옵니다"를 외쳐대며 오늘날의 언론 기능을 했다.

언론은 끊임없이 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것이 존재의 이유다.

스스로 세상에 빛을 밝히진 못해도 세상의 부패를 막는 소금 역할을 한다.

언론의 비판을 견디지 못하는 권력자는 독재자이거나 실패자 중 하나가 된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최근 자신을 비판하던 방송사(RCTV)를 폐쇄해버렸다.

◆언론 감시는 '건강한 정부'의 필수조건

공기업 감사들이 이과수 폭포 관광을 포함한 남미 출장을 떠났나가 여론의 호된 질타를 받았다.

소속 기관의 예산으로 외유성 출장을 갔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구청에선 공무원들이 밤 11,12시에 나타나 지문인식기에 퇴근기록을 남기는 장면이 TV 카메라에 잡혔다.

이들은 일도 안 하고 야간근무 수당만 챙기려고 집에 갔다가,또는 회식하다 되돌아온 것이다.

지방 도청에서는 보육비 지원금과 청소년 해외연수 대상이 도민이 아닌 공무원 자녀들에게만 돌아간 사실이 드러났다.

최근 몇 주 사이에 언론에 의해 적발된 공직자의 비위 사실들이다.

공직자들이 혹은 정부 스스로 이런 문제를 브리핑할 리 만무하다.

일상에 바쁜 시민들이 공직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란 불가능하다.

이를 대신하는 것이 언론이다.

따라서 언론의 감시는 민주주의와 국민들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공무원과 정치인 자신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민주사회에서 완전한 것은 없다

민주사회에서도 영웅은 있다.

링컨,루스벨트,처칠,대처 등이 인기투표나 여론조사로 민주사회의 영웅이 된 것은 아니다.

시대의 소명을 위해 국민을 설득하고,기다리며 때론 국민의 여론에 역행하기도 했다.

이런 민주적 영웅들 치고 언론을 좋아한 사람은 한 명도 없지만 언론을 파트너로 삼지 않은 사람은 누구도 민주적 영웅이 되기 힘들다.

대중(국민)은 사실 잘 속고,변덕스럽고,요구한 대로 했어도 자신의 이익이 훼손되면 자신보다 정치인을 탓한다.

언론은 순기능 못지 않게 역기능도 있다.

특정 정파와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거나,금권에 휘둘리거나,인기영합주의로 흐르거나,오보로 억울한 사람을 만들 수 있다.

"자본이 지배하는 언론"을 비판한 하버마스 같은 사람도 대안이있는 것은 아니다.

권력자도,국민도,언론도 완전한 존재는 없다.

민주주의는 완전하다고 우길 때 독선이 생긴다.

권력을 가진 자라면 자기도 모르게 권력이 남용되지 않도록,어떤 비판이든 스스로 참아야 한다.

그래서 제퍼슨은 자신에게 말하듯 이런 명언도 남겼다.

"화가 나거든 무엇인가를 말하기 전에 열까지 세어라.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는다면 100까지 세어라.그래도 안 되거든 1000까지 세어라."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ohk@hankyung.com

▶참고서적=오태민 『마중물논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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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 나오는 '알 권리'

교과서에서도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해 비교적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고등학교 정치ㆍ교과서(법문사,103쪽)를 보면 언론의 자유란 "정치 권력과 특정한 집단으로부터의 자유.정치 권력과 정책에 대한 비판과 감시의 자유.편집이나 편성의 자유를 의미한다"고 기술했다.

또 "언론은 대중을 대변하고 그 의견을 정부에 전달하며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비판자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

그리고 정부 정책을 지원하는 지원자로서의 기능과 전문가의 의견이나 대중의 의견을 통해 정책을 제시하는 기능을 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 교과서 236~237쪽에선 '알 권리(Right to Know)'에 대해 "국민이 정치적·사회적 문제에 관한 정보를 자유롭게 알 수 있는 권리"라고 정의하며,1949년 서독의 '본(Bonn) 기본법'(현재는 독일연방기본법)에 최초로 규정됐다고 나와 있다.

본기본법은 "누구나 일반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정보원으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정보를 얻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해 알 권리를 헌법적 기본권으로 분명히 해 놓았다.

때문에 미국 유럽 등에선 1970년대부터 정보공개법을 제정·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공공기관의 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이 1998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공개요청에 대한 실제 정보 공개율이 10% 남짓에 불과한 실정이다.

또한 다른 사회,정치 교과서에는 이런 부분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

게다가 이 같은 교과서를 채택해 가르치는 학교가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도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도움말 주신분=김미선 선생님(대전 유성고),김기정 선생님(울산미래정보고),박재조 선생님(대전 둔산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