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총기사건 범인이 만일 흑인이었다면
한국인들 대부분 "흑인들은 원래 그래"라고 했을 것이다
낙태에 대해 물었다.
"생명을 가진 태아에 대한 살인 행위인 낙태에 찬성합니까?" 낙태 찬성 비율이 40%였다.
다시 물었다.
"여성의 자유선택권을 보장하는 낙태에 찬성합니까?" 낙태 찬성 비율은 60%로 높아졌다.
-제3회 생글 논술경시대회 인문계 고3 유형 제시문 [나]의 C
왜 그럴까? 인간의 사고는 우리 생각보다 쉽게 이리저리 휩쓸린다.
다중의 생각, 즉 여론도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변덕스럽다.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에 포획된 개인과 사회가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인간은 미리 경험한(선행적) 인식에 의해 관성적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강하다.
쉽게 말해 보고 싶은 것이 보이고 듣고 싶은 것이 들리며 아는 만큼 보인다는 이야기다.
정치, 사회 현상 속에서 진실을 왜곡하고 진실에 접근하는 데 훼방을 놓는 선입견, 고정관념의 문제를 살펴보자.
◆의도되지 않은 설문 조사는 없다
여론 조사 전문가들은 세상의 어떤 설문 조사든 기획한 사람의 의도가 담겨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첫머리에 소개된 제시문에서 보이듯 단지 낙태에 대한 의견을 물었는데 그 앞에 어떤 수식어를 붙이느냐에 따라 찬성 비율은 20%포인트나 차이가 났다.
낙태 반대론자는 설문 문항을 만들 때 '태아에 대한 살인 행위'란 수식어를 붙였을 것이고, 찬성론자가 기획한 설문에선 '여성의 자유선택권'이 강조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설문 조사 자체가 갖는 '정파성'이다.
국민들의 이념 성향을 묻는 설문조사 결과가 한겨레 5월21일자와 중앙일보 5월22일자에 나란히 보도됐다.
한겨레 신문의 해설기사 타이틀은 '대선 앞두고 변화와 개혁 욕구 다시 기지개'인 반면 중앙일보는 '국민은 5년 새 우향우'였다.
똑같이 '국민'을 조사했는데 내용은 논조에 따라 판이했다.
결과를 의도하지 않은 설문은 사실상 없다는 이야기다.
◆정치적 '낙인' 찍기
정치인들이야말로 국민들의 선입견, 고정관념을 잘 이용하는 사람들이다.
특히 공산국가 지도자들은 낙인 찍기를 통해 정적을 제거하는 데 탁월했다.
옛 소련의 스탈린은 정적인 트로츠키를 '분열주의자, 극좌모험주의자'로, 중국의 마오쩌둥은 임표를 '배신자, 반사회주의자'로, 북한 김일성은 6·25전쟁 이후 월북한 남로당 총책인 박헌영을 '미국의 스파이'로 몰아 숙청했다.
'분열, 배신, 스파이' 등 부정적 단어들로 일단 덮어씌웠을 때 그런 단어들이 주는 고정관념까지 더해져 여론몰이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사에서도 정치 이데올로기에 따른 비수와 같은 낙인 찍기가 적지 않았다.
해방 이후 지속돼 온 진보·보수 논쟁에서 진보는 보수를 '수구, 반동, 친일'로, 보수는 진보를 '빨갱이, 좌파, 친북'으로 서로 공격해 왔다.
또 정파적 이익을 위해 지역 감정을 부추기는 것도 국민들의 선입견을 이용한 정략이다.
이렇게 되면 본질은 사라지고, 국민들에겐 뿌리 깊은 부정적 각인만 남는다.
정치의 후진성은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지푸라기 인형 전략
지난해 10월 북한이 핵 실험을 강행하자 국내에선 햇볕 정책과 대북 지원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됐다.
이에 대한 정부의 반응은 "그럼 전쟁하자는 거냐"였다.
제기된 문제는 대북 지원금이 북한 주민에게 제대로 가는지, 핵 개발 자금으로 유용되진 않는지 따져보자는 것이었는데 이를 의도적인 논리 비약을 통해 전쟁과 결부 지어 논쟁을 회피하는 것이다.
전쟁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는 점에서 논점은 '전쟁 찬성이냐, 반대냐'는 이상한 쪽으로 흘러갔다.
이런 논법을 '지푸라기 인형 전략(strawman strategy)'이라고 부른다.
수세에 몰릴 때 버려도 되는 쟁점(지푸라기 인형)을 내세우고 그것을 공격함으로써, 본래 논점을 피해 가는 것을 의미한다.
전쟁에 대한 사람들의 선입견을 이용해 허점을 공략하는 전략이다.
◆선입견·편견이란 색안경
한국에서 오래 산 외국인들은 한국인들이야말로 인종 차별주의자라고 비판한다.
한국인들이 흑백 인종에 대해 가진 선입견을 생각하면 그런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만약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이 흑인이었다면 한국인의 반응은 어땠을까? "흑인들은 원래 그래"가 아니었을까?
이런 사례는 무수히 많다.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해" "전과자는 잠재적 범죄자야" "동성 연애자는 에이즈에 걸려" "그 학교 학생들은 문제가 많아"….부분적으로 그런 경향이 있더라도 그것이 전체를 포괄하는 명제가 될 수는 없다.
우리 사고 방식 속에 선입견이란 색안경으로 인해 '조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빠질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ohk@hankyung.com
▶양윤덕 선생님(경기 덕계고) 의견
"고1 공통사회 교과서에선 고정관념을 편견 아집 흑백논리 등과 함께 합리적 사고를 저해하는 사고 방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세상을 보는 눈을 편협하게 만들 뿐 아니라 자신을 그 틀 안에 가두고 속박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넓게 보는 지혜와 안목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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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새까만 대나무는 보았느냐"
지난 19,20일 치러진 제3회 생글 논술경시대회의 인문계 고3 유형 제시문들의 키워드는 바로 '고정관념' 또는 '선입견'이라 할 수 있다.
이들 제시문을 통해 사람의 사고가 이미 경험하거나 기억하고 있는 사고 틀에 의해 관성적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음을 파악했다면 출제 의도를 정확히 간파한 것이다.
우선 제시문 [가]의 (A)는 중국 송나라 때 소동파가 붉은 먹물로 대나무를 그린 데 대한 예화이다.
다른 이들은 "세상에 붉은 대나무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지만 소동파는 "그럼 새까만 대나무는 보았느냐"고 응수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붉은 대나무가 낯설었지만 그렇다고 먹물로 그린 검은 대나무만이 진실일 수도 없다.
(B)예화에서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물체가 떨어지는 게 당연했지만, 뉴턴은 공중에 떠 있는 게 당연했기에 물체가 땅에 떨어진 현상을 설명하는 데 고민했다.
(C)는 컵의 물이 반 정도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아직 반이나 남았다'와 '이제 반밖에 없다'를 대비한다.
'반 컵의 물'은 변함이 없지만 선행적 경험 혹은 인식의 차이에 기인한 것이다.
제시문 [나]에서 소개된 도표 (A)는 장기 기증 의사를 표시해야 기증자로 간주할지, 기증 않겠다는 의사 표시가 없으면 기증자로 간주할지에 따라 통계상 엄청난 차이가 났다.
(B)는 고교생 두 집단에 1부터 8까지 곱하기 문제를 주고 5초 안에 근사치를 답하도록 한 실험 결과다.
큰 수부터 곱한 문제(8×7…×1)의 답은 평균 2453이었지만, 작은 수부터 곱한 문제(1×2…×8)의 답은 평균 534에 불과했다.
사람의 생각이 환경에 따라 무려 5배가량 차이가 날 수 있는 셈이다.
사람은 이토록 고정관념의 지배를 받는 존재인가.
한국인들 대부분 "흑인들은 원래 그래"라고 했을 것이다
낙태에 대해 물었다.
"생명을 가진 태아에 대한 살인 행위인 낙태에 찬성합니까?" 낙태 찬성 비율이 40%였다.
다시 물었다.
"여성의 자유선택권을 보장하는 낙태에 찬성합니까?" 낙태 찬성 비율은 60%로 높아졌다.
-제3회 생글 논술경시대회 인문계 고3 유형 제시문 [나]의 C
왜 그럴까? 인간의 사고는 우리 생각보다 쉽게 이리저리 휩쓸린다.
다중의 생각, 즉 여론도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변덕스럽다.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에 포획된 개인과 사회가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인간은 미리 경험한(선행적) 인식에 의해 관성적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강하다.
쉽게 말해 보고 싶은 것이 보이고 듣고 싶은 것이 들리며 아는 만큼 보인다는 이야기다.
정치, 사회 현상 속에서 진실을 왜곡하고 진실에 접근하는 데 훼방을 놓는 선입견, 고정관념의 문제를 살펴보자.
◆의도되지 않은 설문 조사는 없다
여론 조사 전문가들은 세상의 어떤 설문 조사든 기획한 사람의 의도가 담겨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첫머리에 소개된 제시문에서 보이듯 단지 낙태에 대한 의견을 물었는데 그 앞에 어떤 수식어를 붙이느냐에 따라 찬성 비율은 20%포인트나 차이가 났다.
낙태 반대론자는 설문 문항을 만들 때 '태아에 대한 살인 행위'란 수식어를 붙였을 것이고, 찬성론자가 기획한 설문에선 '여성의 자유선택권'이 강조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설문 조사 자체가 갖는 '정파성'이다.
국민들의 이념 성향을 묻는 설문조사 결과가 한겨레 5월21일자와 중앙일보 5월22일자에 나란히 보도됐다.
한겨레 신문의 해설기사 타이틀은 '대선 앞두고 변화와 개혁 욕구 다시 기지개'인 반면 중앙일보는 '국민은 5년 새 우향우'였다.
똑같이 '국민'을 조사했는데 내용은 논조에 따라 판이했다.
결과를 의도하지 않은 설문은 사실상 없다는 이야기다.
◆정치적 '낙인' 찍기
정치인들이야말로 국민들의 선입견, 고정관념을 잘 이용하는 사람들이다.
특히 공산국가 지도자들은 낙인 찍기를 통해 정적을 제거하는 데 탁월했다.
옛 소련의 스탈린은 정적인 트로츠키를 '분열주의자, 극좌모험주의자'로, 중국의 마오쩌둥은 임표를 '배신자, 반사회주의자'로, 북한 김일성은 6·25전쟁 이후 월북한 남로당 총책인 박헌영을 '미국의 스파이'로 몰아 숙청했다.
'분열, 배신, 스파이' 등 부정적 단어들로 일단 덮어씌웠을 때 그런 단어들이 주는 고정관념까지 더해져 여론몰이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사에서도 정치 이데올로기에 따른 비수와 같은 낙인 찍기가 적지 않았다.
해방 이후 지속돼 온 진보·보수 논쟁에서 진보는 보수를 '수구, 반동, 친일'로, 보수는 진보를 '빨갱이, 좌파, 친북'으로 서로 공격해 왔다.
또 정파적 이익을 위해 지역 감정을 부추기는 것도 국민들의 선입견을 이용한 정략이다.
이렇게 되면 본질은 사라지고, 국민들에겐 뿌리 깊은 부정적 각인만 남는다.
정치의 후진성은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지푸라기 인형 전략
지난해 10월 북한이 핵 실험을 강행하자 국내에선 햇볕 정책과 대북 지원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됐다.
이에 대한 정부의 반응은 "그럼 전쟁하자는 거냐"였다.
제기된 문제는 대북 지원금이 북한 주민에게 제대로 가는지, 핵 개발 자금으로 유용되진 않는지 따져보자는 것이었는데 이를 의도적인 논리 비약을 통해 전쟁과 결부 지어 논쟁을 회피하는 것이다.
전쟁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는 점에서 논점은 '전쟁 찬성이냐, 반대냐'는 이상한 쪽으로 흘러갔다.
이런 논법을 '지푸라기 인형 전략(strawman strategy)'이라고 부른다.
수세에 몰릴 때 버려도 되는 쟁점(지푸라기 인형)을 내세우고 그것을 공격함으로써, 본래 논점을 피해 가는 것을 의미한다.
전쟁에 대한 사람들의 선입견을 이용해 허점을 공략하는 전략이다.
◆선입견·편견이란 색안경
한국에서 오래 산 외국인들은 한국인들이야말로 인종 차별주의자라고 비판한다.
한국인들이 흑백 인종에 대해 가진 선입견을 생각하면 그런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만약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이 흑인이었다면 한국인의 반응은 어땠을까? "흑인들은 원래 그래"가 아니었을까?
이런 사례는 무수히 많다.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해" "전과자는 잠재적 범죄자야" "동성 연애자는 에이즈에 걸려" "그 학교 학생들은 문제가 많아"….부분적으로 그런 경향이 있더라도 그것이 전체를 포괄하는 명제가 될 수는 없다.
우리 사고 방식 속에 선입견이란 색안경으로 인해 '조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빠질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ohk@hankyung.com
▶양윤덕 선생님(경기 덕계고) 의견
"고1 공통사회 교과서에선 고정관념을 편견 아집 흑백논리 등과 함께 합리적 사고를 저해하는 사고 방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세상을 보는 눈을 편협하게 만들 뿐 아니라 자신을 그 틀 안에 가두고 속박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넓게 보는 지혜와 안목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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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새까만 대나무는 보았느냐"
지난 19,20일 치러진 제3회 생글 논술경시대회의 인문계 고3 유형 제시문들의 키워드는 바로 '고정관념' 또는 '선입견'이라 할 수 있다.
이들 제시문을 통해 사람의 사고가 이미 경험하거나 기억하고 있는 사고 틀에 의해 관성적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음을 파악했다면 출제 의도를 정확히 간파한 것이다.
우선 제시문 [가]의 (A)는 중국 송나라 때 소동파가 붉은 먹물로 대나무를 그린 데 대한 예화이다.
다른 이들은 "세상에 붉은 대나무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지만 소동파는 "그럼 새까만 대나무는 보았느냐"고 응수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붉은 대나무가 낯설었지만 그렇다고 먹물로 그린 검은 대나무만이 진실일 수도 없다.
(B)예화에서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물체가 떨어지는 게 당연했지만, 뉴턴은 공중에 떠 있는 게 당연했기에 물체가 땅에 떨어진 현상을 설명하는 데 고민했다.
(C)는 컵의 물이 반 정도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아직 반이나 남았다'와 '이제 반밖에 없다'를 대비한다.
'반 컵의 물'은 변함이 없지만 선행적 경험 혹은 인식의 차이에 기인한 것이다.
제시문 [나]에서 소개된 도표 (A)는 장기 기증 의사를 표시해야 기증자로 간주할지, 기증 않겠다는 의사 표시가 없으면 기증자로 간주할지에 따라 통계상 엄청난 차이가 났다.
(B)는 고교생 두 집단에 1부터 8까지 곱하기 문제를 주고 5초 안에 근사치를 답하도록 한 실험 결과다.
큰 수부터 곱한 문제(8×7…×1)의 답은 평균 2453이었지만, 작은 수부터 곱한 문제(1×2…×8)의 답은 평균 534에 불과했다.
사람의 생각이 환경에 따라 무려 5배가량 차이가 날 수 있는 셈이다.
사람은 이토록 고정관념의 지배를 받는 존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