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돈이 거품 만들어

[Cover Story] 부동산에서 미술품까지 전세계가 투기열풍
전 세계가 투기 열풍에 빠져 들고 있다.

주식은 물론 부동산 원자재 미술품, 기업, 그리고 정크본드(신용도가 낮은 채권)에 이르기까지 돈이 되는 것이면 대상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 사재기가 지구촌을 흔들고 있다.

이에 따라 거의 모든 자산 가격이 동반 급등세를 보이고 있으며 버블(거품) 붕괴에 대한 우려도 동시에 높아지고 있다.

◆돈되는 것이면 뭐든지 사들인다

투기 대상 중 최근 급등세가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단연 주식이다.

주요국 증시 중 30개국 증시가 올 들어 사상 최고치를 돌파했다.

주가지수 통계치가 잡히는 국가가 모두 44개국인 점을 감안하면 4곳 중 3곳 정도가 역사적 최고점을 돌파한 셈이다.

미국의 다우존스 주가지수, 중국의 상하이 종합지수를 비롯 한국 싱가포르 호주 인도네시아 벨기에 네덜란드 브라질 멕시코 등 거의 모든 대륙에서 주가 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갈아 치우고 있다.

특히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 증시의 상승세는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지난해 130%나 급등한 중국 상하이 종합지수는 올 들어서도 또 다시 50%나 올라 과열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고 있다.

산 속에서 도를 닦는 스님들마저 객장으로 뛰어들어 중국의 주식계좌는 이미 1억개를 돌파했다.

지난 몇 년간 2~3배의 오름세를 보여온 세계 부동산 시장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미국과 중국에서 상승세가 한풀 꺾였지만 여전히 절대 가격은 높은 수준이다.

특히 90년대 혹독한 버블 붕괴의 시련을 겪었던 일본의 부동산시장도 최근 경기 회복과 맞물려 다시 살아나고 있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 부동산시장 역시 다시 강세로 전환되고 있고 인도 러시아 등 신흥시장 부동산 가격도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상황이다.

중국의 경우 정부의 잇따른 부동산투기 억제책에도 불구, 10%대 안팎의 높은 경제성장률과 2008년 베이징올림픽, 2010년 상하이 월드엑스포 등의 영향으로 부동산 수요는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각종 투기자본이 계속 부동산으로 몰려들고 있어 열기가 쉽게 꺾이지 않을 전망이다.

원자재 시장도 뜨겁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배럴당 80달러까지 치솟았다가 이후 50달러대까지 하락했던 국제유가는 올 들어서만 배럴당 10달러가량 상승,다시 강세를 보이고 있다.

금값도 올 들어서만 10% 넘게 오르며 온스당 700달러대를 위협 중이며 지난해부터 상승세를 이어 온 구리가격 역시 올 들어 20% 넘는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심지어 망간 비스무트 이리듐 몰리브덴 코발트 등 특수금속 가격마저 최근 급등,사상 최고치를 잇따라 경신하고 있다.

투기바람은 미술품 시장도 비껴가지는 않는다.

1억달러가 넘는 미술품도 탄생하고 있다.

가격 급등 덕에 지난해 세계 미술품 시장 규모는 30% 가까이 성장했다.

종전에 선진국 일부 애호가들의 전유물이다시피 했던 미술품 수집은 최근 중국 러시아 등 신흥국 갑부들 사이에서 커다란 인기를 누리면서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말 그대로 투기등급채권인 정크본드에도 묻지마 투기가 판치고 있다.

투자은행 메릴린치가 집계한 정크본드 지수는 지난 10개월간 평균 12% 넘게 상승,같은 기간 국채 관련 지수 상승률(2%)의 6배에 달했다.

위험한 채권의 인기가 정상적인 채권보다 훨씬 높은 셈이다.

기업 인수합병(M&A) 바람이 불면서 기업가치에도 거품이 끼고 있다.

전 세계 M&A 규모는 올 들어 벌써 2조달러에 달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0%가량 늘어났다.

특히 인수할 기업을 담보로 돈을 빌려 그 기업을 인수하는 방식이 크게 유행하면서 기업투기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무엇이 투기열풍을 불러왔나

기본적으로 전 세계에 돈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돈이 넘쳐 나는 이유는 수년간 지속된 글로벌 저금리의 영향이 가장 크다.

비록 미국이 2004년 6월부터 지속적으로 금리를 인상, 현재 기준금리가 5.25%까지 올랐지만 현 금리도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게다가 세계 최대 경제권인 유로존 13개국이 아직도 3.75%의 낮은 기준금리를 유지하고 있고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경제대국 일본의 기준금리가 아직도 제로금리에 가까운 0.5% 수준에 머물고 있다.

금리가 상대적으로 싸면 돈을 빌려 다른 곳에 투자해 은행이자보다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게 되고 따라서 대출이 늘어나 유동성이라고 부르는 돈의 양이 많아진다.

2003년 3월부터 시작된 글로벌 증시 활황세는 저금리 기조와 넘치는 유동성의 힘이 크다.

전 세계 헤지펀드 운용자산은 10년 만에 열 배로 불어난 1조4000억달러에 이른다.

헤지펀드에 돈을 맏기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돈이 넘친다는 뜻이다.

돈이 되는 것이라면 가리지 않고 투자하는 헤지펀드가 굴리는 돈이 많아지니 자연스레 이들의 투자 대상인 주식 채권 부동산 원자재 심지어 미술품 가격까지 오르는 것이다.

이처럼 '묻지마 투기'가 유행하다 보니 종전에는 국제유가가 오르면 기업원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해 주가는 내리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최근에는 주가와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그리고 부동산까지 포함한 모든 자산 가격이 동반 상승하는 기현상이 생기고 있다.

기업 M&A를 전문으로 하는 사모투자펀드(PEF)로 돈이 몰리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미국 달러화가 약세를 지속하고 있는 것도 글로벌 투기 붐의 또 다른 원인이다.

미국 달러화는 금 본위제가 끝난 이후 국제적으로 가장 안전한 투자자산으로 꼽혀왔다.

그러나 미국의 막대한 무역적자가 해소되지 않으면서 달러화 약세가 지속되자 달러 이외의 자산으로 투자수요가 분산되기 시작했고 이것이 풍부한 유동성과 맞물리면서 여러가지 자산의 가격 급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투기 버블 터질까

세계 거의 모든 자산이 거침없는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버블 경고도 잇따르고 있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최근 "아시아에서 주식 등 자산과 관련된 위기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밝혔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최고경영자 켄 르위스 역시 "지난 6년 동안 역사적인 저금리로 지탱해 온 버블이 곧 붕괴될 것"이라며 "바보 같은 짓을 했다고 후회할 시점에 근접했다"고 경고했다.

최근에는 특히 중국 증시 과열에 대한 경계론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긍정적인 시각도 많다.

미국과 유럽을 비롯,세계 경기가 여전히 호조를 보이고 있는 데다 중국 경제도 여전히 높은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든다.

특히 올해 초 미국 경제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문제를 무난하게 넘겨 부동산 시장 급락에 대한 우려가 많이 잦아든 데다 미국의 기업 이익도 호전되고 있어 적어도 가까운 장래에 투기 버블이 급속도로 터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결국 중요한 점은 버블이 꺼지는 속도라고 볼 수 있다.

전 세계적인 긴축정책이나 경기 둔화의 영향으로 서서히 거품이 꺼질 경우 글로벌 경제에 큰 충격 없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문제는 예상하기 어려운 커다란 충격이 단기적으로 세계 경제에 가해질 경우다.

최근 전 세계 자산 및 금융시장은 거의 장벽 없이 실시간으로 통합돼 있는 만큼 한 국가에서 발생한 단기적인 경제위기가 엄청난 파급효과를 미치며 급속도로 전 세계로 퍼져 나갈 수도 있다.

그렇게 될 경우 사상 처음 1600포인트를 돌파한 한국의 주가는 물론 '강남불패'로 상징되는 높은 부동산 가격도 어느날 급격한 하락세로 전환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