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 4월28일 A8면

[뉴스로 읽는 경제학] 수능성적 공개하면 안되나요?
대학수학능력시험 원데이터에 이어 국가 수준 학업 성취도 평가 결과도 공개해야 한다는 항소심 판결이 나왔다.

이들 자료가 가공될 경우 교육인적자원부가 우려하는 출신 고교·지역별 학력 격차 등이 드러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판부가 우리 사회의 교육 문제 개선을 위한 연구 과정에 이들 자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고법 특별2부(김종백 부장판사)는 27일 뉴라이트닷컴 신 모 대표 등이 "2002∼2005학년도 수능시험 원데이터와 2002·2003년도 국가 수준 학업 성취도 평가 자료를 공개하라"며 교육부를 상대로 낸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 소송에서 "이들 정보는 비공개 대상이 아니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신씨 등은 우리나라 교육 실태를 연구한다는 이유로 교육부에 관련 자료를 공개해줄 것을 청구했으나 거부당하자 소송을 냈고,1심은 연구 목적을 위한 수능 성적 결과를 공개하라고 하면서도 국가 수준 학업 성취도 평가에 대해서는 비공개 판결을 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수능과 학업 성취도 평가 원점수를 공개할 경우 학교·지역 간 과열 경쟁과 서열화로 인해 교육과정을 도저히 정상 운영할 수 없게 된다"며 "이를 막기 위해 곧바로 상고하겠다"고 반박했다.

박민제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기자 pmj53@hankyung.com

--------------------------------------------------------

수학능력시험의 성적뿐만 아니라 국가 수준 학업 성취도 평가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는 항소심 판결을 놓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이번 소송을 제기한 쪽에서는 공교육 정상화는 물론 교육정책의 품질 제고를 위해 수능이나 학업 성취도 자료뿐 아니라 교육 당국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정보의 공개가 시급하다며 판결을 지지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정부 쪽에서는 이들 자료가 출신 고교·지역별 학력 격차는 물론 평준화 및 비평준화 지역 간 학력 격차를 쉽게 비교해볼 수 있는 자료로 가공될 수 있다며 판결에 반발하고 있다.

물론 이들 성적의 공개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새삼스러운 얘기는 아니다.

지난번 1심에서도 이미 연구 목적을 위한 수능 성적 결과(개인정보 제외)를 공개하라는 판결이 내려진 바 있다.

하지만 교육부는 고교 및 지역 간 서열화와 사교육 조장을 우려해 수능 및 학업 성취도 원점수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번에도 그런 입장에는 전혀 변화가 없다.

수능 성적과 학업 성취도 평가 결과 공개를 둘러싼 논란의 초점은 바로 성적 공개가 공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냐는 데 모아진다.

한마디로 성적 공개 여부는 공교육을 정상화할지,아니면 붕괴시킬지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정부 측,"원점수 공개시 학교·지역 간 서열화로 공교육 파행"

교육인적자원부는 비록 연구 목적에 한정한다 하더라도 학교별 성적이 공개될 경우 서열화와 이로 인한 학교 교육의 정상적 운영 저해,사교육 조장 등 부작용이 우려스러우므로 학업 성취도 및 수능시험 원자료를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수능 및 학업 성취도 원자료가 출신 고교와 지역별 학력 격차는 물론 평준화 및 비평준화 지역 간 학력 격차를 쉽게 비교해볼 수 있는 자료로 가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그동안 대학 교수와 일부 국회의원들의 수능 및 학업 성취도 원점수 공개 요구에 대해서도 평준화 정책을 거스르는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며 이를 거부해 왔다.

교육부는 또 대법원에 상고한 후 최종 판결이 나오기까지 최소 1년이 넘게 걸리므로 2008학년도 대입에는 전혀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도 성적 공개는 인권 침해에 해당할 뿐 아니라 학업 성취도 평가 또한 학교 간 서열화를 유발해 교육을 파행으로 몰고갈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재판부 측,"교육 정상화 위해선 정확한 자료 공개 불가피"

하지만 재판부는 "이미 만연한 입시 경쟁과 공교육 파행,사교육 의존 등의 현실을 개선해 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라도 교육 상황에 관한 정확한 자료를 국민과 전문가들에게 공개할 필요가 크다"고 판결했다.

특히 연구자들에게 학업 성취도 평가와 수능 자료가 제공되면 현행 교육 문제가 어떻게 발생하고 있는지에 대한 실증적 분석이 가능하고 생산적인 정책 토론의 기회를 제공하며 관련 정책을 입안하거나 교육정책을 개선하는 등의 목적으로 쓰일 수 있다고 밝혔다.

말하자면 비공개로 보호되는 업무 수행 공정성 등의 이익보다는 공개에 따른 국민의 알권리 보장과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의 참여 및 교육정책 투명성 확보 등의 이익이 더 크다는 것이다.

교원단체총연합회 또한 연구 목적을 위해서라면 성적을 공개하는 게 마땅하며,만약 지역·학교별로 차이가 있다면 연구를 통해 이러한 차이를 줄일 수 있는 합리적 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3불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 서둘러야

교육부는 사교육 추방과 교육 평등화 등을 내세우면서 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를 금지하는 이른바 '3불 정책'을 고수하고 있지만 교육 현실은 판이하다.

학생과 학부모 등 교육 수요자들이 어느 학교가 잘하고 못하는지를 훤히 알고 있는 마당에 '공개 불가'를 고집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더욱이 수능 정보를 비롯해 지역·학교의 학력평가 자료를 공개함으로써 교육제도와 정책을 개선하고 교육의 질을 끌어올리는 효과를 거둘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과도한 입시 경쟁과 공교육 파행,사교육 의존 등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자료 공개가 필요하다는 재판부의 판결 취지도 바로 그런 맥락이다.

따라서 교육 당국은 또다시 대법원 상고에 매달릴 게 아니라 정보 공개를 통해 3불 정책의 근본적 수술에 나서야 한다.

교육 당국이나 연구자는 이들 정보가 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개인정보 유출 방지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아울러 연구 목적을 벗어나 학교 서열화 및 과당 경쟁을 부추기는 자료로 악용되지 않도록 대책 마련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용어 풀이]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초·중·고교생의 학력을 측정하기 위해 매년 실시하는 시험으로,전체 학생의 1%를 표집해 국어·수학·영어·과학·사회 등 5개 과목에 대해 평가하게 된다.

학교별·교육청별 교육격차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다.

◆수능시험 원자료=수능 수험생들의 답안지를 채점한 개인별 점수를 말한다.

이 자료를 활용하면 출신 고교별·지역별 학력 격차는 물론 평준화·비평준화 지역간 차이도 비교할 수 있다.

◆'3불' 정책=대학입학과 관련해 교육인적자원부가 금지하고 있는 3가지 정책으로,본고사를 비롯 고교등급제와 기여입학제를 금지하는 것을 말한다.

정부는 고교평준화 등을 위해 3불 정책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인데 반해 대부분 대학들은 교육의 자율성과 국가경쟁력 제고를 이유로 이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