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지러운 풍경
"80년대 중반,부산 문현동 산비탈 마을에 산사태가 나서 수십 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중략) 흙더미에 깔려 참변을 당한 피해자들은 대부분 '무작정 대도시로 몰려들어온' 그야말로 가난하고 힘없는 서민들이었습니다.
(중략) 나아가 대도시 집중은 단순히 공해와 비용의 문제만이 아니라 정신병,마약,청소년 범죄 문제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삶을 뿌리째 황폐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도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중략) 도시가 클수록 건강하고 쾌적한 삶을 누리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덩치만 크다고 일류도시가 아닙니다.
인구가 많고 땅값이 비싸다고 살기 좋은 도시가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국가의 균형발전을 위해서는 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해야 한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에게 쓴 서신의 일부다.
균형발전을 호소하는 이들은 도시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문제의 원인이 바로 도시 집중 그 자체라고 전제한다.
최근 통계청은 서울의 기대수명이 전국에서 가장 높다고 발표했다.
공기도 나쁘고 스트레스도 많은 거대 도시의 기대수명이 가장 길다는 것은 뜻밖이다.
산 좋고 물 좋은 산골이나 바닷가에 살아야 장수한다는 생각을 뒤엎기 때문이다.
해석이 분분하다.
응급체계나 의료복지 시설을 꼽거나 건강 정보에 대한 민감도를 생각한다.
기대수명이 가장 길다고 해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라는 해석은 섣부르지만,도시 집중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현실 간에는 큰 간극이 있어 보인다.
◆ 당기고 밀어내는 두 개의 힘
'모든 형태는 상반된 힘이 이룬 균형의 결과이며 균형이 바뀌면 형태가 바뀐다'라는 것이 과학자들이 사물을 이해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역학적 균형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현재의 수도권 집중은 균형의 이탈이 아니라 바로 균형의 결과인 셈이다.
도시를 키우는 힘은 무엇일까? 도시에는 많은 시설이 밀집되어 있다.
대형 유통체인이나 기업뿐 아니라 생활과 밀접한 교육·문화·의료 시스템도 집중되어 있다.
왜 이런 시설들은 좁은 곳에 집중하려 할까? 수요가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요자들은 왜 많을까?
시골에서 도시로 진입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기대는 일자리다.
최초의 힘이 무엇이 되었건 일자리가 있어 사람들이 몰리고 사람들이 몰려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는 순환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 힘은 너무 거대해서 누군가 제어하지 않으면 무한히 확장될 것 같다.
대기압이 풍선의 팽창을 억제하듯이 도시 규모를 제한하는 힘은 없을까? 당연히 있다.
이 힘이 없다면 이미 도시는 팽창하다 파열되어 버렸을 것이다.
놀랍게도 이 힘은 바로 대통령이 지적한 도시 문제들이다.
도시 서민의 삶은 고달픈 면이 많다.
근원적으로는 치열한 경쟁 때문이다.
공간을 대상으로 벌이는 경쟁이 가장 치열하다.
그래서 지대(地代)가 높다.
한정된 땅을 놓고 많은 용도가 경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간에 높은 가격을 지불할 수 없는 서민들은 산비탈에 빼곡히 밀집한 판잣집에서 비좁게 살아간다.
일자리 경쟁도 치열하다.
오염된 공기,교통 체증도 값비싼 비용이다.
도시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문제들은 이미 도시민들이 꼬박꼬박 지불하고 있는 도시생활의 비용이다.
서울에 이미 안정된 직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수도 분할 정책'에 찬성하는 이유도 이런 높은 비용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 지독한 역설
역학적 균형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도시 집중 해소가 도시 문제를 해결한다는 주장은 지독한 역설이다.
도시 문제 자체가 도시 팽창을 억제하는 힘인데 도시 문제를 해결하게 되면 이 힘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풍선은 바람을 불어넣지 않아도 대기압을 낮추면 팽창한다.
도시살이의 비용을 절감해주면서도 도시 팽창을 막는 방법은 거주 이전의 자유를 제한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도시살이는 단순히 비싼 게 아니라 모든 것을 희생하고도 획득해야 할 신분으로 승격한다.
상하이시는 세계에서 불법 이주노동자가 가장 많은 도시다.
이 불법 노동자들은 사실 중국인들이다.
중국은 아직도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다.
그래서 이들은 같은 중국인이면서도 온갖 차별 속에서 상하이살이를 감내해야 한다.
이들에게 상하이 거주권은 단순한 선망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신분'이다.
◆ 두 개의 확실한 방법
국민의 거주를 제한할 수 있는 중국조차도 도시 집중을 막지 못하고 있다.
하물며 자유국가에서 이 문제를 손쉽게 해결할 방법은 없어 보인다.
아니 확실한 방법이 두 가지 있다.
도시로 이주해도 일자리가 없으면 된다.
어디건 못살면 된다.
한편 어디를 가도 일자리가 넘친다면 굳이 높은 비용을 지불하면서 버틸 필요도 없어진다.
도시건 지방이건 구별 없이 잘 사는 것이다.
고르게 잘사는 것은 좋은 목표가 분명하다.
그러나 구호나 정책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고르게 못사는 것은 어떨까? 드러내놓고 내세우기는 어렵지만 정책적·인위적인 달성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 균형을 잃기 쉬운 균형감각
인간은 균형을 꿈꾼다.
한 쪽으로 기울면 불안정해서 혼란이 쉽게 예상되기 때문이다.
균형을 잃으면 사물은 움직인다.
변화와 관련 있다는 점에서 안목의 균형이나 역학적 균형은 통한다.
문제는 인간이 선호하는 균형이 힘의 균형과 동일하지 않다는 점이다.
아무리 불안정해 보여도 그것이 힘의 균형이라면 생각보다 안정적이다.
반대로 안목의 균형을 기준으로 애써 달성한 균형이 만약 역학적 균형점과 크게 어긋나 있다면 어떨까? 이 균형은 오래 갈 수 없을 것이다.
안목의 균형만 갖고 수도권 집중이라는 논제를 분석하게 되면 결국 당위의 반복을 넘어서지 못한다.
수도권 집중이 균형과는 멀어 보이는 것이 명확해서 무슨 수를 쓰건 이 집중을 해체하는 것이 당연해 보이기 때문이다.
역학적 균형이라는 관점으로 '국가균형발전론'을 비판한 학생의 글이다.
같은 균형이라도 역학적 균형에 대한 이해는 분석의 수준을 한 차원 높여준다.
오태민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slowforest@eduhankyung.com
▶자세한 강의는 생글생글i 동영상(www.sgsgi.com)
▶ 학생 글: 배진현 (명지외고 2학년)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균형이 깨질 경우 다시 균형점으로 돌아가 안정하기 위한 조정 능력을 발휘하여 문제를 해결하곤 한다.
다시 말하면 도시와 농촌의 인구 불균형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완화된다는 것이다.
이 현상은 이미 일어나고 있다.
일명 인구의 U-턴 현상이라고 불리는 현상이 그것이다.
도시에 인구가 지나치게 집중됨으로 인해 과거 있었던 집적 이익을 웃도는 손해―교통 체증,환경 오염,소음 공해 등―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도시로 모여들었던 인구가 반대로 도시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이 인구의 이동을 따라,그리고 지가의 상승 때문에 각종 시설이나 공장들도 도시 밖으로 이동한다.
이러한 현상은 당장 공장 몇 개를 벽촌에 세우는 것보다는 눈에 띄지 않겠지만 보다 점진적으로,그리고 확실하게 작은 시골 마을에까지 부(富)를 전달해 줄 수 있다.
그 의도가 어떤 것이든,많은 경우에 인간이나 정부의 인위적 개입은 자연의 질서를 흩뜨리고 왜곡시킨다.
내버려 두면,그 진폭에 따라 시간은 걸리겠지만 모든 주체는 균형점을 찾아 나아가게 된다.
결국 가장 최선의 개입은 무개입이며,최선의 관심은 무관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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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논술은 더디 깨닫기 대회
"미국 친구들은 익숙해서 당연하게 여기고 넘어가는 것도 저는 이해할 수 없었죠.곰곰이 따져나가다 보니 숨겨진 뜻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버드대 법대를 수석 졸업했다는 한국계 여성의 말이다.
익숙지 않은 다른 문화권의 법을 공부하다가 숨겨진 이치를 꿰뚫게 되었다는 말은 단순한 겸양은 아닐 것이다.
2008년도 논술은 교과서 위주로 출제될 것이다.
교과서를 이해하면 좋은 점수를 받게 될까? 제시문이 교과서라고 해서 교과서적인 말만 늘어놓아선 눈에 띄기 힘들다.
교과서를 뒤집을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이치를 꿰뚫고 교과서를 보는 학생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쉬운 수능을 위해서라면 굳이 이치까지 깨달을 필요가 없다.
공식을 이해하는 정도의 이해력과 다양한 형태로 비튼 문제에 적응하기 위한 훈련을 감내할 성실함이면 충분하다.
무엇이든지 덥석덥석 이해하는 친구는 사실 아무것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천재들도 교과서적인 지식을 납득하지 못해서 자기 학설을 만들었던 것이 아닐까? 무거운 것은 빨리,가벼운 것은 느리게 떨어진다는 상식을 너무 쉽게 이해해 버렸다면 우리는 갈릴레이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논술을 통해 대학은 속도가 좀 느리더라도 결국 이치를 꿰뚫을 수 있는 학생을 찾고 있다.
이해가 느려 머리를 쥐어박고 싶은 학생이라면 한 번 해 볼 만한 시험이다.
"80년대 중반,부산 문현동 산비탈 마을에 산사태가 나서 수십 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중략) 흙더미에 깔려 참변을 당한 피해자들은 대부분 '무작정 대도시로 몰려들어온' 그야말로 가난하고 힘없는 서민들이었습니다.
(중략) 나아가 대도시 집중은 단순히 공해와 비용의 문제만이 아니라 정신병,마약,청소년 범죄 문제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삶을 뿌리째 황폐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도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중략) 도시가 클수록 건강하고 쾌적한 삶을 누리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덩치만 크다고 일류도시가 아닙니다.
인구가 많고 땅값이 비싸다고 살기 좋은 도시가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국가의 균형발전을 위해서는 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해야 한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에게 쓴 서신의 일부다.
균형발전을 호소하는 이들은 도시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문제의 원인이 바로 도시 집중 그 자체라고 전제한다.
최근 통계청은 서울의 기대수명이 전국에서 가장 높다고 발표했다.
공기도 나쁘고 스트레스도 많은 거대 도시의 기대수명이 가장 길다는 것은 뜻밖이다.
산 좋고 물 좋은 산골이나 바닷가에 살아야 장수한다는 생각을 뒤엎기 때문이다.
해석이 분분하다.
응급체계나 의료복지 시설을 꼽거나 건강 정보에 대한 민감도를 생각한다.
기대수명이 가장 길다고 해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라는 해석은 섣부르지만,도시 집중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현실 간에는 큰 간극이 있어 보인다.
◆ 당기고 밀어내는 두 개의 힘
'모든 형태는 상반된 힘이 이룬 균형의 결과이며 균형이 바뀌면 형태가 바뀐다'라는 것이 과학자들이 사물을 이해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역학적 균형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현재의 수도권 집중은 균형의 이탈이 아니라 바로 균형의 결과인 셈이다.
도시를 키우는 힘은 무엇일까? 도시에는 많은 시설이 밀집되어 있다.
대형 유통체인이나 기업뿐 아니라 생활과 밀접한 교육·문화·의료 시스템도 집중되어 있다.
왜 이런 시설들은 좁은 곳에 집중하려 할까? 수요가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요자들은 왜 많을까?
시골에서 도시로 진입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기대는 일자리다.
최초의 힘이 무엇이 되었건 일자리가 있어 사람들이 몰리고 사람들이 몰려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는 순환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 힘은 너무 거대해서 누군가 제어하지 않으면 무한히 확장될 것 같다.
대기압이 풍선의 팽창을 억제하듯이 도시 규모를 제한하는 힘은 없을까? 당연히 있다.
이 힘이 없다면 이미 도시는 팽창하다 파열되어 버렸을 것이다.
놀랍게도 이 힘은 바로 대통령이 지적한 도시 문제들이다.
도시 서민의 삶은 고달픈 면이 많다.
근원적으로는 치열한 경쟁 때문이다.
공간을 대상으로 벌이는 경쟁이 가장 치열하다.
그래서 지대(地代)가 높다.
한정된 땅을 놓고 많은 용도가 경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간에 높은 가격을 지불할 수 없는 서민들은 산비탈에 빼곡히 밀집한 판잣집에서 비좁게 살아간다.
일자리 경쟁도 치열하다.
오염된 공기,교통 체증도 값비싼 비용이다.
도시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문제들은 이미 도시민들이 꼬박꼬박 지불하고 있는 도시생활의 비용이다.
서울에 이미 안정된 직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수도 분할 정책'에 찬성하는 이유도 이런 높은 비용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 지독한 역설
역학적 균형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도시 집중 해소가 도시 문제를 해결한다는 주장은 지독한 역설이다.
도시 문제 자체가 도시 팽창을 억제하는 힘인데 도시 문제를 해결하게 되면 이 힘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풍선은 바람을 불어넣지 않아도 대기압을 낮추면 팽창한다.
도시살이의 비용을 절감해주면서도 도시 팽창을 막는 방법은 거주 이전의 자유를 제한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도시살이는 단순히 비싼 게 아니라 모든 것을 희생하고도 획득해야 할 신분으로 승격한다.
상하이시는 세계에서 불법 이주노동자가 가장 많은 도시다.
이 불법 노동자들은 사실 중국인들이다.
중국은 아직도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다.
그래서 이들은 같은 중국인이면서도 온갖 차별 속에서 상하이살이를 감내해야 한다.
이들에게 상하이 거주권은 단순한 선망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신분'이다.
◆ 두 개의 확실한 방법
국민의 거주를 제한할 수 있는 중국조차도 도시 집중을 막지 못하고 있다.
하물며 자유국가에서 이 문제를 손쉽게 해결할 방법은 없어 보인다.
아니 확실한 방법이 두 가지 있다.
도시로 이주해도 일자리가 없으면 된다.
어디건 못살면 된다.
한편 어디를 가도 일자리가 넘친다면 굳이 높은 비용을 지불하면서 버틸 필요도 없어진다.
도시건 지방이건 구별 없이 잘 사는 것이다.
고르게 잘사는 것은 좋은 목표가 분명하다.
그러나 구호나 정책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고르게 못사는 것은 어떨까? 드러내놓고 내세우기는 어렵지만 정책적·인위적인 달성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 균형을 잃기 쉬운 균형감각
인간은 균형을 꿈꾼다.
한 쪽으로 기울면 불안정해서 혼란이 쉽게 예상되기 때문이다.
균형을 잃으면 사물은 움직인다.
변화와 관련 있다는 점에서 안목의 균형이나 역학적 균형은 통한다.
문제는 인간이 선호하는 균형이 힘의 균형과 동일하지 않다는 점이다.
아무리 불안정해 보여도 그것이 힘의 균형이라면 생각보다 안정적이다.
반대로 안목의 균형을 기준으로 애써 달성한 균형이 만약 역학적 균형점과 크게 어긋나 있다면 어떨까? 이 균형은 오래 갈 수 없을 것이다.
안목의 균형만 갖고 수도권 집중이라는 논제를 분석하게 되면 결국 당위의 반복을 넘어서지 못한다.
수도권 집중이 균형과는 멀어 보이는 것이 명확해서 무슨 수를 쓰건 이 집중을 해체하는 것이 당연해 보이기 때문이다.
역학적 균형이라는 관점으로 '국가균형발전론'을 비판한 학생의 글이다.
같은 균형이라도 역학적 균형에 대한 이해는 분석의 수준을 한 차원 높여준다.
오태민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slowforest@eduhankyung.com
▶자세한 강의는 생글생글i 동영상(www.sgsgi.com)
▶ 학생 글: 배진현 (명지외고 2학년)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균형이 깨질 경우 다시 균형점으로 돌아가 안정하기 위한 조정 능력을 발휘하여 문제를 해결하곤 한다.
다시 말하면 도시와 농촌의 인구 불균형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완화된다는 것이다.
이 현상은 이미 일어나고 있다.
일명 인구의 U-턴 현상이라고 불리는 현상이 그것이다.
도시에 인구가 지나치게 집중됨으로 인해 과거 있었던 집적 이익을 웃도는 손해―교통 체증,환경 오염,소음 공해 등―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도시로 모여들었던 인구가 반대로 도시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이 인구의 이동을 따라,그리고 지가의 상승 때문에 각종 시설이나 공장들도 도시 밖으로 이동한다.
이러한 현상은 당장 공장 몇 개를 벽촌에 세우는 것보다는 눈에 띄지 않겠지만 보다 점진적으로,그리고 확실하게 작은 시골 마을에까지 부(富)를 전달해 줄 수 있다.
그 의도가 어떤 것이든,많은 경우에 인간이나 정부의 인위적 개입은 자연의 질서를 흩뜨리고 왜곡시킨다.
내버려 두면,그 진폭에 따라 시간은 걸리겠지만 모든 주체는 균형점을 찾아 나아가게 된다.
결국 가장 최선의 개입은 무개입이며,최선의 관심은 무관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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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논술은 더디 깨닫기 대회
"미국 친구들은 익숙해서 당연하게 여기고 넘어가는 것도 저는 이해할 수 없었죠.곰곰이 따져나가다 보니 숨겨진 뜻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버드대 법대를 수석 졸업했다는 한국계 여성의 말이다.
익숙지 않은 다른 문화권의 법을 공부하다가 숨겨진 이치를 꿰뚫게 되었다는 말은 단순한 겸양은 아닐 것이다.
2008년도 논술은 교과서 위주로 출제될 것이다.
교과서를 이해하면 좋은 점수를 받게 될까? 제시문이 교과서라고 해서 교과서적인 말만 늘어놓아선 눈에 띄기 힘들다.
교과서를 뒤집을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이치를 꿰뚫고 교과서를 보는 학생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쉬운 수능을 위해서라면 굳이 이치까지 깨달을 필요가 없다.
공식을 이해하는 정도의 이해력과 다양한 형태로 비튼 문제에 적응하기 위한 훈련을 감내할 성실함이면 충분하다.
무엇이든지 덥석덥석 이해하는 친구는 사실 아무것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천재들도 교과서적인 지식을 납득하지 못해서 자기 학설을 만들었던 것이 아닐까? 무거운 것은 빨리,가벼운 것은 느리게 떨어진다는 상식을 너무 쉽게 이해해 버렸다면 우리는 갈릴레이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논술을 통해 대학은 속도가 좀 느리더라도 결국 이치를 꿰뚫을 수 있는 학생을 찾고 있다.
이해가 느려 머리를 쥐어박고 싶은 학생이라면 한 번 해 볼 만한 시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