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강자에 약한, 약자에 강한 한없이 비겁한 당신의 종족주의, 당정 걷어 치워라
"큰 피해가 우려됐던 태풍이 '다행히' 일본으로 진로를 틀었습니다."

TV 기상캐스터는 엄청난 규모의 태풍이 한반도를 비켜 일본열도 쪽으로 방향을 바꾸자 '다행'이란 표현을 쓴다.

물론 한국에는 다행이지만 다른 나라에 큰 불행을 몰고올 기상 뉴스에 대해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까?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 일본의 동포가 차별을 받았다면 모두들 흥분하지만 한국 내 화교나 제3세계 사람들이 받는 차별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

하인스 워드에 열광했지만 그 이후 국내 혼혈인에 대한 시선이 별로 나아지지 못했다.

가수 인순이가 성공하기까지 흘린 땀과 눈물은 보통 한국인들은 상상하기 힘든 것이다.

왜 한국인들은 유독 민족이나 핏줄 따위에 목을 매는 것일까? 이중적인 잣대로 세상을 보면서 스스로는 제대로 보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일까? 함께 생각해 보자.

◆ 우리 안의 종족주의의 뿌리

한국의 교육에선 누누이 '5000년 역사, 단일민족'이란 개념이 강조돼 왔다.

다른 민족은 곧바로 침략자의 형태를 띠었을 뿐, 여러 민족과 다양하게 접촉할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현대에 들어서조차 이 같은 '우물 안 개구리' 속성은 개선되지 못했다.

오히려 더욱 깊어졌다는 지적도 있다.

1970년대 학생들이 무조건 외워야 했던 국민교육헌장의 첫 구절도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이고, '민족'이란 단어에 코끝이 찡해지는 감성적인 반응을 보이곤 했다.

못사는 개도국 시절에는 이런 저급한 형태의 민족주의 혹은 국수주의가 통했다.

하지만 매년 결혼하는 커플의 10% 이상이 국제결혼이고, 외국인 노동자가 50만명을 넘으며, 연간 1000만명이 해외를 드나드는 현실에선 이 역시 바뀌어야할 때가 되었다.

몸은 커졌는데도 여전히 종족주의적 세계관이라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계속 입고 있는 꼴이란 얘기다.

◆ 종족주의의 다양한 행태들

앞서 예로 든 기상캐스터나 하인스 워드 사례와 유사한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갓난아이 때 스웨덴에 입양된 한 여류 작가는 한국을 다녀간 뒤 "한 핏줄임을 입증하려고 달려드는 한국인들의 태도에 대해 당혹스러웠다"고 고백했다.

미국 우주인 마크 폴란스키의 모계가 한국인 하와이 이민자였다는 가족 족보까지 대대적으로 보도되기도 한다.

한마디로 "잘나가는 그 사람 알고보니 한국인"이라는 자기최면적 반응들이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So what)?"라고 반문한다.

스포츠 분야에선 더욱 두드러진다.

지난해 독일 월드컵 스위스전에서 오프사이드 논란을 일으켰던 둘째 골을 내준 뒤 보여준 한국 축구팬들의 반응은 집단 광기에 가까웠다.

FIFA 홈페이지를 집단 공격하고, 주한 스위스 대사관을 폭파하겠다고 협박하는 것은 이미 도를 넘은 것이었다.

미국 쇼트트랙 선수 안톤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이 미국인 전체에 대한 맹비난으로 이어졌던 사례도 마찬가지다.

그가 일본계라는 이유만으로 '가뜩이나 꼴보기 싫은' 일본인들까지 도매금으로 폄훼되었다.

이처럼 순전히 개인적 차원의 문제를 그가 속한 집단과 민족 혹은 국가의 문제로 확대 해석하는 게 한국인의 특징인 것처럼 깊어지고 있다.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범이 한국계 영주권자란 사실이 알려졌을 때 국내에서 보인 집단 죄의식 같은 것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범인이 일본인,중국인 또는 미국 흑인,히스패닉이었다면 한국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일본인은 원래 잔인해" "중국인은 아직 덜 개화됐어" 혹은 "미국은 이라크도 공격했잖아" 따위의 반응이 나올 수 있다.

개인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그가 속한 집단의 문제로 곧장 확대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그런 종족적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 이중적인 잣대들

한국인들은 근대화 이후 신분제도가 사라졌다고 주장한다.

미국 프랑스 등 다민족 국가의 인종차별이 알려지면 맹비난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인종 차별, 민족 차별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하인스 워드가 미국 슈퍼볼 MVP가 되지 못했다면 지금쯤 그를 기억하는 한국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다니엘 헤니가 잘생긴 백인 혼혈이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인기를 누릴 수 있었을까?

한국 사회에서 소수인 탈북자, 중국 동포(한족들이 비하해 붙인 '조선족'이란 이름으로 불린다), 혼혈인, 제3세계 이주노동자 등에 대한 시선은 결코 백인들을 보는 시선과 동일하지 않다.

엄밀히 말해 약자에 강하고 강자에 약한 비겁자의 모습이 아닐까.

말로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한국만큼 직업에 귀천이 있다고 여기는 나라도 드물다.

이렇듯 평등사회로 포장된 이면에는 엄청난 불평등 의식이 도사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한국인들만 애써 모른 척 할 뿐이다.

한국인은 자신들이 무척 작은 나라에 산다고 여기지만 세계 어느 나라도 한국을 작은 나라로 보지 않는다.

세계 11위 경제대국, 5000만명에 육박하는 인구, 연간 수출 3000억달러, 1인당 소득 2만달러 육박…. 그런데 아직도 한국인의 의식은 개도국 수준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왜곡된 이중심리는 어쩌면 선진국이 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일 수도 있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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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거슨 < '대한민국 사용후기'의 저자 >

『발칙한 한국학』(2002년)으로 화제를 모았던 미국인 J 스콧 버거슨은 최근 『대한민국 사용후기』라는 책을 출간해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전작이 비교적 '애정' 어린 쓴소리였던 데 비해 이번엔 마치 '절교선언'이라도 하는 것처럼 신랄한 독설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버거슨이 제기한 문제들은 다양하고 뜨거운 논쟁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자칭 '문화 건달'인 버거슨은 이 책에서 한국을 "가장 저질스런 고등학교이며 버릇없는 우물 안 개구리들이 우글거리는 매트릭스"라고 규정한다.

한국인들은 진정한 인류 평등주의 시대정신으로 무장한 민주주의 사회인 양 주장하지만, 실은 조선 시대만큼이나 봉건적이고 차별적인 새로운 유형의 신분제도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은 애국주의의 감성적인 면과 민족주의의 정치적인 힘이 맹목적으로 융합된 천박한 민족주의의 특징을 드러낸다고 비판한다.

남북한 정치 지도자들은 즉각적이고 단기적인 이익을 위해 수시로 이런 특징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 천박한 민족주의의 거대한 물결에 휩쓸리고 나면 개인은 사라지고 집단의 감정이 모든 것을 압도하고, 언론의 오도방정과 사이버 공간의 난리법석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네티즌 역시 "유치하고 막돼먹은 행동을 하느라 너무 바빠서 자신들에게 붙은 '인터넷 시민(network citizen)'이란 이름의 의미조차 이해하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한국에서 10년을 산 버거슨은 "작은 미국이 되려고 용을 쓰는 한국이 싫었다"고 단도직입적으로 감정을 드러냈다.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와 스타벅스를 무슨 새로운 매스마켓 종교라도 되는 듯이 숭배하는 한국의 젊은이들을, 음악에서 패션 댄스에 이르기까지 온 나라를 지배하는 힙합문화를, 백화점에서 12만9000원에 파는 쓰레기 같은 백인들이 쓰는 '폰 더치' 트럭모자를 쓴 꼭두각시 한국인들을 혐오한다고 했다.

건수만 있으면 반미 시위가 열리고 인터넷이 가마솥처럼 들끊지만 그런 소동은 점점 미국과 비슷해지는 현실을 위장하기 위한 가면일 뿐이고, 한국인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