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암시적인 속성있어 수시로 왜곡된 결과 초래

[Cover Story] 예측은 왜 빗나갈까
인간이 내리는 예측은 대개는 틀린다.

그래서 점(占)을 보지만 이 역시 문제 투성이다.

버틀란드 러셀은 "미래를 예언하는 점은 맞으면 맞기 때문에 볼 필요가 없고, 틀리면 틀리기 때문에 역시 볼 필요가 없다"고 갈파했다.

사람들은 인간사회와 자연현상에 대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예측하기를 좋아한다.

지구가 언제 멸망할지에서 당장 내일 날씨까지…. 예측들은 대개 빗나가기 일쑤다.

자연현상은 정보가 부족하거나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고, 사회에 대한 예측은 그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일찍이 칼 포퍼는 '오이디푸스 효과'라는 말로 사회과학적 예측의 문제점을 갈파했다.

예언 신탁 점 등으로 표현되는 예측은 자기 암시적인 속성을 가져 왜곡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 오이디푸스 효과

그리스 신화 속 오이디푸스(Oidipus, '퉁퉁 부은 발'이란 뜻)는 테베의 왕 라이오스와 왕비 이오카스테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다.

라이오스는 이 아들이 "아비를 죽이고 어미를 범한다"는 신탁(神託)을 받았기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버렸지만 우여곡절 끝에 코린토스의 왕자로 자랐다.

오이디푸스는 신탁이 실현되는 것을 피하려고 일부러 방랑하다가 사소한 시비 끝에 노인을 죽였는데 그가 아버지였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내 테베의 왕위에 올랐는데, 어머니인 줄 모르고 결혼해 네 자녀를 낳았다.

오이디푸스의 기구한 운명은 신탁에 따라 버려졌기 때문에 신탁이 실현되는 이상한 자기 회귀의 구조를 갖는다.

애초에 점(占)이나 마찬가지인 신탁(예측)이 없었다면 오이디푸스가 그렇게 내버려졌을까? 그렇다면 신탁대로 됐을까? 이 같은 자기 회귀, 자기 암시를 내포한 예측이 바로 '오이디푸스 효과'다.

그럴 거라고 예언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 왜 마르크스의 예언은 빗나갔나

칼 포퍼는 저서 『역사주의의 빈곤』『추측과 논박』에서 오이디푸스 효과를 통해 칼 마르크스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예언적으로 결정되어 버린 유토피아적 미래(공산사회)가 현실의 문제를 보지 못하게 만드는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이 공산주의며, 이는 미래를 지향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미래에 대해 더욱 폐쇄적이란 이야기다.

자기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를 모으기에만 급급할 뿐 반증을 허용하지 않는 독선에 빠진 사이비 과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산주의는 마르크스의 예상처럼 '자본주의의 모순이 극에 달한' 서유럽이 아니라, 당시 유럽에서 가장 낙후된 러시아에서나 가능했다.

인간세상에 대한 예측은 숙명적으로 오류에 빠질 수밖에 없다.

변덕스러운 인간이 변덕스러운 세상을 예측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예측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인간의 행동은 변한다.

예측의 전제조건들이 제거되고 엉뚱한 방향으로 치닫는 것이다.

일본이 미국을 추월할 것이란 예상은 1980년대 일본인과 미국인에게 어떻게 작용했는지 상상해 보라.

◆ 자연과학의 예측은 왜 틀리나

[Cover Story] 예측은 왜 빗나갈까
인간의 변덕과는 무관한 자연과학의 예측은 왜 틀릴까.

온난화 문제를 단순히 화석연료를 과도하게 사용한 데 따른 온실효과 탓으로만 파악한다면 충분한 정보를 제대로 해석한 것일까? 지금은 지구온난화가 세계의 화두가 됐지만 1970년대만 해도 지구가 추워진다고 걱정들을 했다.

화석연료만의 문제라면 1960년대보다 석유 석탄을 더 많이 쓴 1970년대의 지구 온도가 낮아진다고 걱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지구냉각화나 온난화나 뭔가 정보가 부족했거나 잘못 해석한 부분이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적지 않은 과학자들이 지구의 주기적 온도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 경기예측이 어려운 이유

국내 최고의 경제전문가들이 모였다는 한국은행조차 번번이 경제전망 수치가 빗나간다.

전철환 전 한은 총재는 "지금 이 순간의 경기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지금 경기를 판단할 각종 경제지표들이 빨라야 한두 달 뒤에나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정책당국자가 보는 경기는 KTX의 역방향 좌석에 앉아 주변 풍경을 보는 것과 같다"고 고백했다.

차창 밖 풍경은 휙휙 지나가는데 앞에 무엇이 나타날지 알 수 없어 정책 결정이 답답하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인간 세상이나 경제를 예측하겠다는 수많은 예언가들이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

미래를 모르기 때문에 더 살 만한 게 인간세상이 아닐까 싶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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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기대 이론-정부의 정책이 안먹히는 이유

매일 아침 버스를 타고 학교에 등교하는 과정을 생각해보자. 오전 6시30분이면 오던 버스가 오늘따라 30분이 지나서야 왔다.

이때 적응적 기대(adaptive expectation)에 따른 행동과 합리적 기대(rational expectation)에 근거한 행동은 큰 차이를 보인다.

적응적으로 기대하는 사람은 '내일은 버스가 6시35분이면 오겠지'하고 똑같은 시간에 나가 기다린다.

버스는 또 7시에 와 지각한다.

이런 식으로 일주일쯤 지각을 반복하고서야 지하철로 등교할 것이다.

반면 합리적으로 기대하는 사람은 어떻게 행동할까? 버스회사에 늦어진 이유를 묻고 일시적인 지연인지, 아닌지를 알아본다.

배차 간격 조정, 버스기사 파업 등이 원인이라면 다음날 아침엔 아예 지하철을 타고 등교해 지각을 피할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인간 심리는 합리적 기대에 따라 행동하게 만든다.

가계 기업 등 경제주체들은 바보가 아니다.

정부는 과거 경험에 따라 정책을 펴지만 경제주체들은 이미 정부가 내놓을 정책과 그 결과까지 훤히 꿰고 있다.

그러니 정부가 경기를 예측하고 이에 맞춰 펴는 정책이 좀체 적중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같은 합리적 기대 이론은 1970년대 로버트 루카스 시카고대 교수에 의해 형성돼, 케인즈학파가 지배하던 경제학계에 일대 혁명을 몰고 왔다.

요약하면 경제주체들은 활용 가능한 모든 정보를 이용해 경제상황의 변화를 합리적으로 예측하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정부의 재량적인 재정·통화정책은 무용지물이 된다.

1930년대 대공황 때 탄생한 케인즈 이론은 돈을 풀면 당연히 소비가 늘어 다시 생산이 증가하므로 불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1970년대 오일 쇼크를 겪으면서 세계경제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겹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직면했다.

철저한 '정부 실패'를 경험한 것이다.

이때 합리적 기대이론은 정부가 불황 때 돈을 풀면 인플레이션이 높아질 것을 합리적으로 예측할 수 있으므로 경제주체들은 생산을 늘리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이미 경험해 뻔히 아는 정책을 어설프게 남발하는 것보다는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는 게 더 낫다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경제주체들이 예측하지 못한 정책을 불쑥 내놓는 깜짝쇼는 오히려 시장 혼란을 극대화해 역효과를 빚는다.

그래서 경제학계에선 TV 영화 '스타 트렉'의 대사가 격언처럼 통용된다.

"나를 한번 속이면 네가 나쁜 놈, 두번 속이면 내가 바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