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함께 쇠고기 외식 저렴하게

美드라마 실시간으로 보는 재미에도 푹~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가장 큰 폭의 개방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세계 최강대국과 통상의 고속도로를 놓게 돼 국내 산업 각 분야에는 미꾸라지(국내 산업)를 기르는 논에 메기(미국 기업)를 풀어놓은 셈이다. 가을 추수 때(FTA 효과가 본격화 될 때) 쯤이면 미꾸라지는 날쌔고 튼실하게 살이 올라 있을 것이다.

소비자들에게는 시장을 개방할수록 이익이 커진다. 미국산 쇠고기 등 저렴한 농산물이 들어와 장바구니 물가를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FTA로 인해 약값이 오르고 지식재산권 보호가 강화되는 등 다소간 불이익도 감수해야 한다. FTA로 달라질 실생활을 가상 고등학생 '한경'이의 생활을 통해 알아보자.

▶도움말 주신분=양윤덕 선생님(경기 덕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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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쇠고기 외식할 수 있겠네"

[Cover Story] 한경이의 하루로 본 한미FTA로 달라지는 생활
한경이는 쇠고기를 참 좋아하는데 지난 설날 이후엔 먹어본 적이 없다. 가족끼리 외식은 맨날 삼겹살집인데, 부모님은 삼겹살 값도 무지하게 올랐다고 하신다. 고깃집에서 네 식구가 한우 꽃등심을 제대로 먹으려면 20만원은 든다고 한다.

왜 이리 비쌀까? 알고 봤더니 2003년말 미국산 쇠고기 수입 중단 이후 독점적인 유통구조 탓이란다. 귀한 한우는 값이 두 배로 올랐고, 미국산을 대체한 호주산 쇠고기는 독점적인 수출업자들이 가격을 대폭 올렸다.

그런데 올 여름쯤이면 미국산 쇠고기가 다시 들어온다. 그동안 비정상적으로 오른 한우나 수입 쇠고기값이 꽤 내릴 테니 실컷 먹을 수 있게 생겼다. 한경이는 12월 생일날 친구들과 안심 스테이크를 폼나게 썰어볼 꿈에 부풀었다.

한경이 부모님들은 와인을 참 좋아하신다.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이 싸게 들어오면 이미 FTA가 체결된 칠레산 와인과 경쟁이 붙어 가격은 더욱 내려갈 것이다. 콧대 높은 프랑스, 이탈리아산 와인값도 안 내리고 배길 수 있을까?

◆ "사시사철 싱싱한 과일 실컷 먹는다"

[Cover Story] 한경이의 하루로 본 한미FTA로 달라지는 생활
한경이는 귤과 오렌지를 다 좋아한다. 미국산 오렌지가 싸게 들어온다고 하니 실컷 먹을 수 있어 좋지만 아무래도 제주 감귤농가가 타격을 입게돼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런데 오렌지는 감귤 수확기(9월~2월)에는 50%의 관세가 계속 붙지만, 3~8월에는 계절관세 30%가 붙고 7년안에 이 관세가 철폐된다고 한다. 그래도 제주 감귤과 한라봉이 오렌지보다 훨씬 맛있다. 겨울엔 감귤, 여름엔 오렌지를 먹으면 어떨까.

미국 사과, 배도 10년안에 관세가 사라진다. 하지만 미국 다녀온 친구들 이야기로는 미국산 사과, 배는 우리나라 것에 비해 맛이 형편없단다. 특히 배는 한국산을 세계 제일로 쳐준다.

◆ "국산 자동차란 이유만으론 안 산다"

[Cover Story] 한경이의 하루로 본 한미FTA로 달라지는 생활
한경이네 집은 차를 바꿀 때가 됐는데 부모님께선 고민이 많으시다. 가격이 엇비슷한 미국 자동차와 국산 자동차를 놓고 저울질하신다. 그동안 국산차만 고집했는데, 같은 값이라면 품질을 꼼꼼히 따져보고 고르겠다는 말씀이다.

미국 자동차는 FTA가 발효되면 관세(8%) 없이 수입된다. 3년 뒤엔 중대형차의 특별소비세도 인하(10→5%)돼 배기량 2000cc급 이상 미국 차는 소비자가격이 10% 가량 싸진다. 이렇게 되면 2500cc급 미국산 승용차와 현대의 소나타 2.4의 가격이 비슷해진다. 하지만 부모님은 차값보다 앞으로 유지비, 수리비 등을 따져 어떤 차를 살지 결정하시겠단다.

◆ "폴로 티셔츠, 나이키 신발도 싸질까"

[Cover Story] 한경이의 하루로 본 한미FTA로 달라지는 생활
한경이는 대형 마트 의류매장에 갔는데 폴로 티셔츠나 나이키 신발 가격이 예전과 변함이 없어 의아했다. 미국 브랜드인데 FTA가 체결됐는데도 왜 가격이 안떨어지지. 백화점 직원에게 물어보니 미국산이 아니라 중국, 베트남이나 중남미산이어서 관세가 그대로 붙는다고 한다. 아빠가 피우시는 미국 담배도 알고 보니 '메이드 인 코리아'여서 가격이 변함이 없단다.

하지만 동생이 즐기는 미국산 게임기는 예전보다 10%나 싸게 샀고, 아빠 골프채도 그만큼 가격이 내렸다. 글로벌 시대에 다국적 기업들은 세계 곳곳에 공장을 갖고 있으니까, 미국 브랜드라고 해서 관세가 다 없어지는 것은 아닌가 보다.

◆ "약값은 왜 이렇게 올랐어"

[Cover Story] 한경이의 하루로 본 한미FTA로 달라지는 생활
한경이가 하루는 배탈이 나서 병원에 갔다. 처방전을 받아들고 약국에 가서 약을 샀는데, 예전에 비해 약값이 거의 두 배에 달했다. 왜 이렇게 올랐을까? 약사 아저씨 말씀이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미국 제약회사의 오리지널 신약에 대해선 특허권 보장이 강화돼 국내 제약회사들이 싼 가격의 복제약을 만들기 힘들어져서 비싸졌다는데 왠지 찜찜했다. 대신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신약은 오히려 가격이 내렸다고 한다.
 
◆ "요즘 '미드' 보는 재미에 살아"

[Cover Story] 한경이의 하루로 본 한미FTA로 달라지는 생활
한경이는 요즘 자신이 '미드족'(미국 드라마 마니아)이 된 것 같다. 케이블TV에 나오는 '프리즌 브레이크'의 주인공 석호필(스코필드)이 너무 멋지다. 요즘은 시즌 3가 미국과 거의 동시에 시작돼 드라마 방송하는 날이면 가슴이 설렐 지경이다. 가끔 부모님에게서 공부 안하고 TV만 본다고 야단 맞긴 하지만, 질질 늘어지는 우리나라 드라마는 안보니까 그게 그거라고 항변도 해본다.
 
극장에 가보니 외국 영화가 좀 늘어난 것 같다. 스크린쿼터가 146일에서 절반인 73일로 줄어서 그렇단다. 하지만 예전에 보았던 '미녀는 괴로워' '괴물' 같은 잘 만든 한국영화라면 앞장서 달려가 본다. 한경이는 속으로 생각했다. "영화인들은 관객들을 바보로 아나 봐. 스크린쿼터가 무슨 상관이람. 영화만 좋으면 알아서 다 보는데…."

◆ "별 희한한 것도 지식재산권 인정하네"

[Cover Story] 한경이의 하루로 본 한미FTA로 달라지는 생활
저작권 보호기간이 50년에서 70년으로 늘어, 당장 헤밍웨이의 작품은 2011년에 저작권이 만료될 것이 2031년으로 늘어난다. 지금도 로열티를 물고 번역한 책이니 책값이 더 오를 여지는 없지만, 미국 현대 작가들 책값이 떨어지려면 20년을 더 기다려야 한단다.
 
근데 저작권 보호대상에 소리, 냄새도 들어간다는 게 뭔 소리지? 미국 MGM영화사의 동영상 로고는 사자가 으르렁거리는 모습으로 유명하다. 근데 이것도 앞으론 상표로 등록돼 아무나 흉내낼 수 없게 된단다. 미국 젊은이의 꿈이라는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의 윙윙 거리는 소리도 마찬가지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선 소리, 냄새, 도형, 문자 등까지 상표권을 인정한다고 한다. 세상이 참 재미있게 변하는 것 같다고 한경이는 생각했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