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정부개입 늘 옳은가‥담합 규제 필요하지만 '구체적 증거' 있어야
정부가 담합을 규제하는 것은 '자유로운 경쟁'을 가로막는 불공정 행위이기 때문이다.

담합하는 기업들은 시장에서 사실상 독점적인 가격 결정권을 행사해 소비자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부당하게 빼앗는 경우가 생긴다.

이에 따라 시장 경제를 채택하고 있는 모든 나라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독점과 더불어 담합도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담합 여부에 대한 판단이 그렇게 쉽지는 않다.

가격을 비슷한 시기에 올렸다고 해서 담합이라고 판단하면 해당 기업은 물론 소비자들에게까지 손해를 끼칠 수 있다.

◆가격 같으면 담합이다?

농수산물 시장에 모여 과일을 판매하는 가게들을 생각해 보자. 소비자들은 여러 가게를 들러 보고 물건을 구입하기 때문에 가게들은 손님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한푼이라도 싸게 팔려는 경쟁을 벌인다.

그래야 손님이 모인다.

그 결과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의 가게들은 더 이상 깎아주기 힘든 수준으로 수렴하는 가격에 상품을 팔게 된다.

자유로운 경쟁 시장에서 똑같은 품질의 재화 가격이 동일한 가격으로 수렴하는 현상을 경제학자들은 '일물일가(一物一價)'라는 용어로 설명하고 있다.

[Cover Story] 정부개입 늘 옳은가‥담합 규제 필요하지만 '구체적 증거' 있어야
만약 가뭄이나 홍수가 발생해 과일 공급이 줄어들었다고 치자. 그만큼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가게들은 가격을 인상하게 되는데, 인상폭 역시 엇비슷할 수밖에 없다.

너무 많이 올리면 과일을 팔 수 없기 때문이다.

결과만 놓고 보면 담합 행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담합이 아닌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경쟁이 자유로운 시장에서는 업체마다 사정에 따라 조정하는 가격이 비슷해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해 공정거래위원회 등 담합을 단속하는 기관들도 '정황'이 아닌 '구체적인 증거'를 가지고 담합 판결을 내린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담합 과징금이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도

하지만 기업의 현실은 공정위가 주장하는 것과는 약간 다르다.

구체적인 증거가 없는데도 담합 혐의로 처벌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항변한다.

정황만으로 담합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공정위로부터 담합했다는 판정을 받은 기업들이 공정위에 제기한 소송은 모두 7건이다.

해당 기업들은 엄청난 소송 비용과 이미지 추락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들 기업은 "경쟁하다 보니 가격이 비슷해졌을 뿐인데 담합으로 몰아서 과징금을 물린다면 소비자들도 오히려 손해를 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기업들이 부과된 과징금을 제품 원가에 반영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결국 제품의 가격만 올려놓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담합 규제는 정부의 딜레마

어찌 보면 담합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본질적인 유혹이다.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가장 많은 이윤을 취하려는 것이 시장 경제의 핵심 동력인데, 이 과정에서 경제력 집중이 생겨나고 이윤을 늘리려는 동력이 담합을 부추기는 또 다른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담합에 대해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언제나 정당하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보다 세심하게 이 제도를 운용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담합을 방치하고 시장에만 맡겨놓는다면 결국 국민들이 피해를 입고 시장의 실패를 초래할 수 있다.

하지만 담합을 규제하려는 의욕이 지나치게 되면 독과점 기업을 원천적으로 규제하려는 행동으로 이어지게 되고, 결국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하는 기업들에 사후적으로 정부가 벌을 주는 결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시장의 실패보다 정부의 실패가 더 큰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담합 규제의 필요성이 지나치게 강조되다 보면 공정위 같은 규제 조직을 늘려야 한다는 논리에 빠지게 되고, 결과적으로 비대한 정부를 초래할 수도 있다.

정부는 직원 수나 예산 등을 늘려 무리하게 시장에 개입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오히려 시장에 맡겨 두는 것보다 나쁠 수 있다.

송형석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기자 click@hankyung.com

♣ 교과서읽기


▷고교 『경제』(두산) 56, 66, 68, 102쪽=Ⅱ.시장과 경제활동(시장가격, 시장의 역할, 시장의 실패)

▷고교 『사회』(디딤돌) 228, 229쪽=정부는 왜 경제활동을 규제하는가

▷고1 『공통 사회』(지학사) 236, 241쪽=정부 규제와 경제성장 간략히 언급

♣ 선생님 의견

경제 교과서가 시장의 실패는 상세히 설명하고 있으나 정부의 실패에 대해선 좀 더 체계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 교복은 수요 탄력성이 별로 없어 비싼 가격에도 살 수밖에 없는 품목이다.

*도움말 주신분=김선정 선생님(대전외고),양윤덕 선생님(경기 덕계고),이상수(경기 양평고).정재만 선생님(인천 작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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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독점규제를 외국기업 벌 주는데 쓴다?

'담합의 정수'는 독점이다.

여러 기업들이 모여 아무리 담합해 봐야 독점 기업이 단독으로 결정하는 것에는 훨씬 못 미치기 때문이다.

담합 행위에 대한 규제는 따라서 '독점기업에 대한 규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독점기업은 여러 가지 규제를 받는다.

한국에서는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인수·합병(M&A)을 통해 50% 이상으로 높아질 경우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기업결합 심사'를 받아야 한다.

공정위는 기업 결합을 승인하지 않거나 시장점유율을 인위적으로 낮추도록 요구하게 된다.

예컨대 2004년 삼익악기가 영창악기를 인수하려 했을 때 시장점유율이 92%에 이른다는 이유로 공정위는 합병을 허락하지 않았다.

독점 규제에 엄격한 미국에서도 법원은 1982년 전화회사인 AT&T에 대해 기업 분할을 명령해 7개 회사로 쪼갠 적이 있다.

하지만 최근 미국 연방 대법원의 판결을 보면 독점에 대해 관대하게 처분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미국 연방 대법원이 '대형 석유회사 셸과 텍사코가 공동으로 설립한 회사가 독점금지법에 위배된다'는 하급 법원의 판결을 뒤집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독점 규제를 완화하려는 미국의 태도는 국경 없는 세계 시장의 새로운 흐름으로 볼 수 있다.

자국 시장에서는 독점기업이라 하더라도 세계 시장에서는 치열하게 경쟁하는 기업의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독점 규제로 자국 기업의 경쟁력을 굳이 떨어뜨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 주요국 정부들의 최근 생각이다.

이 때문에 독점 규제의 칼날은 '자국 기업에는 관대하게, 외국 기업에는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 임원들이 미국에서 반독점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고,중국 정부가 반독점법 도입을 검토하는 것은 외국 기업들을 겨냥한 성격이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