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들, 후진국에 돈 주며 시장 키운 후 물건 팔아

[Cover Story] 해외원조에 숨은 경제원리?
'포항제철(현 포스코), 경부고속도로, 서울지하철, 소양강댐, 서울대병원….'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정답은 바로 모두 '해외 원조'로 지어졌다는 것. 한국이 1945년 광복 이후 1999년까지 들여온 유·무상 차관은 모두 331억달러(우리 돈 약 32조원)에 이른다.

이 중 갚지 않아도 되는 무상 원조는 69억달러(21%)이고,나머지 262억달러는 갚아야 하는 유상 원조였다.

해방 이후 미국 일본 등이 제공한 원조 자금은 한국이 지금과 같은 경제 성장을 하는 데 적잖은 도움을 주었다.

그렇다면 대(對) 한국 원조를 주도한 미국과 일본은 무엇을 얻었을까.

전후 대대적인 차관을 한국에 퍼부었던 미국은 정치적으로는 냉전체제 속에서 한국을 당시 소련의 태평양권 진출을 억제하는 방패막이로 삼을 수 있었다.

경제적으로도 이득이 없지 않았다.

미국 내 잉여 농산물을 식량 원조를 통해 소화해 농산물 가격 안정을 얻는 한편,소득이 늘어난 한국에 자국산 제품을 수출할 수 있었다.

한국을 도와 결과적으로 가장 큰 이익을 본 것은 일본이다.

표면적으로는 일제 강점기에 대한 간접 배상으로, 양국 국교 정상화를 앞당겼다는 외교적 의미를 중요하게 여기는 듯 보인다.

하지만 차관 제공에 따른 경제적 이득도 만만치 않았다.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도입한 유·무상 차관을 바탕으로 산업화에 매진하면서 여기에 필요한 생산 설비,부품·소재 등 원·부자재를 수출해 막대한 무역수지 흑자를 얻었던 것.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한국은 단 한 해도 일본에 대해 무역수지 흑자를 낸 적이 없다.

◆서로 주겠다고 나서는 '차관 전쟁'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6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선진국들은 세계 곳곳의 개발도상국에 무상 원조를 베풀고,싼 이자로 차관을 빌려주고 있다.

최근에는 개도국을 상대로 선진국들이 서로 차관을 제공하겠다고 나서는 일까지 생기고 있다.

'원조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렇게 된 것은 선진국의 경제 발전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건설, 중공업 등 분야의 자국 기업들이 새로운 시장을 끊임없이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는 국토를 개발할 돈이 한 푼도 없는 나라에 선진국이 무상 또는 저리로 차관을 제공해 개발사업을 시행하도록 하고, 자국 민간 기업들로 하여금 그 공사를 맡게 한다.

자기 돈을 들여 남의 나라 공사를 해주는 셈이다.

물론 이런 투자를 통해 개도국 경제가 부흥하면 제품 수출 시장이 돼 장기적으로 원조를 준 선진국에 이익이 된다.

다른 나라의 원조를 바탕으로 일어선 한국도 이젠 개도국에 무상 원조를 하고 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이 사업을 맡는다.

2000년 KOICA는 미얀마 정부에 전력 산업에 대한 무상 컨설팅을 해줬다.

한국전력공사를 통해 284만달러를 들여 미얀마의 전력산업 진단과 송전망 설계를 도왔다.

그러자 2005년 미얀마 정부는 자국 중심부를 관통하는 420km의 송전망 사업을 한전이 맡아 달라고 제안해 왔다.

이 사업의 규모는 무려 2억5000만달러. 우리가 베푼 무상 전력산업 컨설팅이 씨앗이 돼 100배에 달하는 전력개발 사업의 열매를 맺은 셈이다.

당초 경제적·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 업체에 사업권이 돌아갈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지만 한국의 '무료' 컨설팅을 기억한 미얀마 정부가 한국 기업에 사업권을 줬다.

◆차관 제공의 경제학

세계 각국이 개발 원조 경쟁을 벌이는 것이 비단 '인도적 동기' 때문만은 아니다.

원조를 주는 나라들은 자국 기업들의 해외 진출 기회를 늘리면서, 자국이 개발한 각종 '시스템'을 깔아 해당 국가에 대한 산업 영향력을 장기적으로 확보하는 수단으로 무상 원조를 적절히 활용하고 있는 것.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 유·무상으로 차관을 제공하고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는 과정 역시 '양면 시장' 이론으로 일부 설명이 가능하다.

차관 도입을 통한 개발이라는 플랫폼 아래에서 선진국 정부가 개도국 정부에 차관을 대는 조건으로 해당 국가의 기업에 개발 사업을 맡기는 방식이다.

여기서 보조금을 받는 쪽은 개도국 정부이고, 사업에서 이윤을 얻어 국가에 세금을 내는 기업이 돈을 내는 쪽이다.

또 일부 선진국은 차관 제공으로 국가 이미지를 좋게 한 뒤 개도국의 각종 자원 개발권을 따내는 직접적인 이득을 취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선진국들이 앞다퉈 해외 원조에 나서는 것은 이처럼 자국보다 못한 나라의 경제 발전에 기여한다는 대의명분과 경제적 실리(實利)를 동시에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차기현 한국경제신문 생활경제부 기자 kh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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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 공들인 중국 이젠 '과실'

중국이 펼친 15년간의 '아프리카 공정(工程)'이 최근 결실을 맺고 있다.

내전이 끝나고 재건에 나선 앙골라, 유전을 가진 적도기니, 구리 광산을 보유한 잠비아 등에 중국 자본과 인력이 들어가 자원과 공항·철도·항만 공사를 싹쓸이하고 있는 것. 그간 아프리카 국가들과 탄탄하게 다져 놓은 협력관계 덕분이다.

대(對)아프리카 교역 규모도 가파르게 늘고 있다.

1999년 20억달러에서 2005년에 와서는 397억달러까지 늘었다.

아직 규모만으로는 미국, 프랑스에 뒤지지만 과거 아프리카에 많은 식민지를 거느렸던 영국을 앞질렀다.

중국과 아프리카는 정치적으로도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했다.

지난해 11월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아프리카 협력 포럼'에 무려 45개의 아프리카 국가가 몰려와 중국과의 우애를 다졌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매년 아프리카 국가들을 방문한다.

지난 1월 말에도 8개국을 순방하고, 잠비아와 '잠비아·중국 경제무역협력기구' 설립에 합의하기도 했다.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사(史)는 무려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9년 중국 당국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한 '톈안먼(天安門)사태'가 터지자,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들이 서방 국가들의 왕따로부터 중국을 구해냈다.

그 뒤에도 중국은 외교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 아프리카 국가들에 원조를 듬뿍듬뿍 집어줬다.

지난해엔 아프리카에 제공하는 차관 규모를 두 배로 늘린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렇게 쌓은 공든탑 덕분에 지구의 마지막 '엘도라도'로 통하는 아프리카에서 중국이 주도권을 쥐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