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 무료로 이용자 모은 뒤 광고 유치

결국은 소비자 부담… 양면시장 이론

일본 소니사(社)는 미국에서 차세대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3'(PS3) 보급형 1대를 팔 때마다 307달러(우리돈 약 29만원)씩 손해를 보고 있다.

미국의 시장조사기관 '아이 서플라이'의 분석 결과 20Gb(기가바이트) 하드디스크를 넣은 보급형 플레이스테이션3의 제조 원가는 806달러로 추정돼 미국 소매가인 499달러보다 훨씬 높았다.

소니가 게임기를 원가 이하에 파는 이유는 뭘까.

장사꾼이 '밑지고 판다'는 얘기는 세상에 절대 믿어서는 안 되는 3대 거짓말에 속한다는 말이 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한계비용(한 단위의 재화나 서비스를 추가로 생산할 때 늘어나는 비용)과 한계수입(시장가격)이 일치할 때까지만 생산을 늘린다는 것은 고전적인 경제 상식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원가 이하의 가격 파괴를 단행한 플레이스테이션3의 사례처럼 특정 재화나 서비스의 가격이 한계비용을 밑도는 경우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넘쳐나는 공짜 마케팅

[Cover Story] 이메일 서비스는 공짜! 만일 돈을 받는다면…
국내 각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이메일 서비스는 공짜다.

이메일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서버 구축비,시스템 유지·운영비,인건비 등 많은 돈이 든다.

그런데도 포털들은 이용료 한 푼 받지 않고 메일 서비스를 제공한다.

최근에는 앞다퉈 메일 용량을 1인당 2Gb까지 늘리는 등 서비스를 강화하고 나섰다.

넉넉한 저장 공간을 공짜로 제공할 테니 제발 와서 가입만 해달라는 식이다.

휴대폰 가게에는 공짜폰이 넘쳐나고,연회비를 평생 무료로 해주겠다는 신용카드도 부지기수다.

이 같은 공짜 마케팅은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일시적인 출혈 경쟁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공짜 마케팅을 펼치는 기업들은 그 때문에 입은 손실을 어디선가는 톡톡히 벌충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양면시장' 이론의 등장

비디오 게임 시장에서는 게임기의 보급량이 늘수록 게임기 생산업체는 타이틀 제작사로부터 더 많은 라이선스료를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소니는 원가 이하 공급으로 보급량을 늘린 뒤 여기서 입은 손실을 게임 제작업체가 플레이스테이션3 용(用)으로 발매하는 게임 타이틀에 더 많은 라이선스료를 붙여 메우고 있는 것.

무료 메일도 마찬가지다.

포털들은 메일 서버를 무료로 개방해 이용자를 끌어 모은 뒤 기업들로부터 검색어 광고,배너 광고 등을 유치해 광고료 수입을 올린다.

이용자가 많을수록 광고료를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공짜폰에는 다양한 부가서비스 의무가입 조건이 붙고,신용카드사는 회원수가 많을수록 가맹점과의 수수료 협상에서 발언권이 세진다.

최근 경제학계에선 이 같은 이면 거래가 일어나는 곳을 '양면시장(two-sided markets)'이라고 정의하고 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보통의 거래는 공급자(supplier)와 수요자(user) 사이의 양자 관계로 맺어진다.

전통적인 경제학의 관점에서 비디오 게임 시장은 '게이머-게임기 생산업체'와 '게임기 생산업체-타이틀 제작사'라는 두 가지 거래 관계로 파악된다.

하지만 이렇게 나눠서는 원가 이하로 공급되는 게임기에 대한 설명이 어렵다.

따라서 양면시장 이론은 이를 '게이머―게임기 생산업체―타이틀 제작사'라는 하나의 플랫폼으로 분석한다.

양면시장이 형성되려면 플랫폼 운영자를 매개로 보조금을 받는 쪽(subsidy side)과 돈을 내는 쪽(money side)이라는 복수의 집단이 존재해야 한다.

보조금을 받는 집단이 이익을 얻는 만큼 다른 그룹은 그 이상의 돈을 플랫폼 운영자에게 지불하게 된다.

이렇게 보면 게임기 생산업체의 가격 파괴나 신용카드사의 연회비 면제 등 다양한 공짜 마케팅은 타이틀 제작사,가맹점 등과의 이면거래를 감안한 다분히 전략적인 결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과연 '공짜 점심'은 있을까

[Cover Story] 이메일 서비스는 공짜! 만일 돈을 받는다면…
그렇다면 양면시장의 형성은 보조금을 받는 집단에 속하는 소비자들에게 항상 이익이 되는 것일까.

지난해 타계한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이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고 역설한 바 있다.

경제원리의 세계에서 비용 없는 편익,투입 없는 산출,희생 없는 만족,세금 없는 재정 집행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언뜻 보면 양면시장에서는 소비자들에게 '공짜 점심'이 주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타이틀 제작사가 라이선스료를 조금 더 부담하는 대신 게이머는 게임기를 싸게 살 수 있고,광고주들이 돈을 내주니 넉넉한 용량의 이메일을 공짜로 쓸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꼼꼼히 따져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결론이다.

돈을 내는 쪽은 결국 자신들이 초과 부담한 부분을 제품 가격에 얹어 소비자로부터 회수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라이선스료 부담 때문에 가격이 높게 책정된 게임 타이틀을 구입하는 것은 결국 게이머들이고,포털 사이트에 광고를 집행하는 광고주의 돈도 결국은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의 주머니에서 나온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다만 가격 파괴나 공짜 마케팅에 끌려 시장에 들어 오는 소비자가 늘어 그 규모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게 양면시장 이론 주창자들의 생각이다.

플레이스테이션3를 구입한 게이머의 수가 많아지면 게임 타이틀 소비도 그만큼 늘어 제작사의 '박리다매'가 가능해 소비자에 전가되는 라이선스료 부담이 결국 줄어든다.

양면시장에서도 '규모의 경제'가 힘을 발휘한다는 얘기다.

차기현 한국경제신문 생활경제부 기자 khcha@hankyung.com

[용어풀이]

◆한계비용(限界費用,marginal cost)

재화나 서비스 한 단위를 추가로 생산할 때 필요한 총비용의 증가분을 말한다.

기업은 수입에서 비용을 뺀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생산량을 결정할 때 한계비용과 한계수입이 일치할 때까지 생산을 증가 또는 감소시킨다.

그래야 이윤이 최대한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한계수입(marginal income)은 한 단위를 추가로 판매할 때 얻어지는 총수입의 증가분으로 일반적으로 시장 가격을 의미한다.

따라서 보통의 경우 기업이 한계비용보다 가격이 낮은 데도 생산을 계속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규모의 경제(規模의 經濟,economy of scale)

원래는 생산요소 투입량의 증대에 따른 생산비 절약 또는 수익향상의 이익을 뜻하는 말이다.

최근에는 대량 생산의 이익, 시장 참여자수 증가에 따른 이익, 대규모 경영에 따른 관리비 절감의 이익 등을 포괄하는 일반적인 의미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