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생전'에서 독점, '동물농장'에선 계획경제를 비판

소설 시 등 문학작품은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그려내는 작업이다.

어느 시대건 그 밑바탕엔 경제적 토대가 자리한다.

따라서 대부분 문학작품은 그 자체로 당대의 경제·사회사를 담아내기 마련이다.

특히 몇몇 문학작품에선 아예 형상화된 경제원리를 만날 수도 있다.

따라서 문학작품은 속담 못지않게 경제원리와 경제·사회 역사를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재료가 된다.

문학의 세계에서 경제원리를 살펴보자.



◆인어공주의 선택과 기회비용

하나 얻으면 하나는 포기해야 돼!

[Cover Story] 문학작품 속 경제원리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는 왕자를 사랑한 인어공주의 슬픈 사랑 이야기로 읽히지만,이야기 속에 기본적인 경제원리가 숨어 있다.

인어공주는 자신의 '욕구'(사람이 되는 것)를 충족하기 위해 아름다운 목소리를 마녀에게 대가로 지불해야 했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며,'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경제원칙이 작용한 결과다.

'심청전'에서도 심청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는 대가는 공양미 300석이었고,이는 심청의 목숨이 갖는 교환가치로 묘사된다.

인어공주와 심청의 경제적 효용은 사람이 되는 것과 아버지 눈을 뜨게 하는 것이고,대가이자 기회비용은 목소리와 목숨이다.

마크 트웨인의 동화 '왕자와 거지'에서도 선택과 교환의 경제원리가 작동한다.

왕자가 자신에게 희소가치가 있는 재화(거지가 되어보는 것)를 얻으려면 자신이 가진 것(왕자라는 신분)을 일시적이나마 포기해야 한다.

인생 자체가 선택과 포기에 따른 기회비용의 연속임을 알게 된 사람이라면 로버트 프루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합리적 소비와 허망한 과소비의 차이

소비, 현명함과 허망함의 두 얼굴

오 헨리의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선물'에서 남편이 손목시계를 팔아 산 빗과 아내가 긴 머리카락을 잘라 산 시계줄은 그들에게 최선의 선택이자 가장 합리적인 소비였다.

가진 것이 없는 부부는 서로에게 가장 의미있는 선물을 주려고,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포기했다.

빗과 시계줄은 서로에게 가장 필요한 선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파상의 단편소설 '목걸이'에서 주인공 마틸드가 빌린 다이아몬드 목걸이의 상징은 과소비의 허망함으로 읽힌다.

잃어버린 목걸이를 변상하려고 10년을 고생한 끝에 알게 된 사실은 그 목걸이가 가짜였다는 것.보석 명품 과소비 같은 단어들에선 합리적이지 못한 허망한 반전을 연상시킨다.

◆홀로 사는 삶,함께 사는 삶

'파리대왕'에서 무엇을 느끼지?

[Cover Story] 문학작품 속 경제원리
대니얼 데포의 '로빈슨 크루소'처럼 인간이 무인도에서 홀로 자급자족하며 살 수 있을까? 홀로 사는 삶이 과거 원시시대에는 가능했을 수 있어도,자급자족 경제의 생산성은 극히 낮을 수밖에 없다.

인간이 굶주림에서 해방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로빈슨 크루소는 완전한 자급자족이 아니라 목공도구와 총 칼을 가졌고,문명사회에서 익혔던 지식과 기술도 기억 속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지 모른다.

이와 유사한 설정이 노벨 문학상 수상작인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이다.

비행기 불시착으로 무인도에 남겨진 25명의 소년생도들은 동물적 생존법칙에 따르며 섬에서 살려는 잭 일파와,사회인격체로서 질서를 고수하며 섬을 나가려는 랄프 일파로 나뉘어 대립한다.

잭은 무질서와 혼란을,랄프는 질서있는 사회를 상징하는데 최후의 구원자는 역시 랄프다.

함께 사는 삶은 홀로 사는 삶에 비해 비교가 안 될 만큼 많은 갈등을 낳지만 인간은 그래도 경제·사회적 동물이다.

◆불합리한 경제체제에 대한 신랄한 비판

사회주의 계획경제 체제 경멸

[Cover Story] 문학작품 속 경제원리
조지 오웰의 1945년작 '동물농장'은 철저한 정치 풍자소설로 읽힌다.

사회주의자였던 오웰이 현실의 공산주의 체제에 실망해 한껏 조롱한 대상은 바로 스탈린 치하의 소련이다.

이는 모든 전체주의 국가에도 똑같이 해당된다.

주인공 돼지 나폴레옹을 중심으로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에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라는 문구가 추가된다.

'농장은 점점 부유해지는 것 같았지만 어찌된 까닭인지 정작 동물들 자신은 넉넉하지 못했다.

물론 돼지와 개들은 예외였다'는 구절은 사회주의 계획경제 체제에 대한 경멸이기도 하다.

프랭크 바움의 '오즈의 마법사'(1900년)에서 오즈(Oz)는 금 등을 재는 무게 단위인 온스(ounce)의 약자다.

주인공 도로시가 은(銀)구두를 신고 금(金)길을 걷는다.

여기서 은구두는 모든 소원을 이뤄주는 은본위제,금길은 금본위제를 의미한다.

19세기 말 미국은 디플레이션 시대로,20년간 물가가 23%나 하락했다.

화폐가치가 급등하면서 돈을 빌린 사람이나 빈민 노동자들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다.

금이 귀해 디플레이션이 유발됐으므로 당시 보유량이 풍부한 은으로 화폐의 기준을 삼으면 인플레이션이 촉진되면서 경제가 살아날 것이란 주장을 담은 것이다.

하지만 알래스카와 남아공에서 금광이 발견되면서 금과 은의 싸움은 소설과는 달리 금의 승리로 끝난다.

◆문학은 경제·사회사의 압축판

요즘의 신체 포기각서와 유사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선 16세기 유럽의 상거래와 분쟁 조정 과정을 읽을 수 있다.

당시 베니스(베네치아)는 국제무역의 중심지인 자유로운 도시국가였음에도 유대인에 대한 반감이 적지 않음을 보여준다.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이 단순히 히틀러의 광기 때문만은 아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요구한 1파운드의 살은 요즘 국내 악덕 사채업자들이 인신 포기 각서를 요구하는 것을 연상시킨다.

우리나라 근대 문학작품으로 채만식의 '탁류'와 '태평천하' 같은 리얼리즘 소설들은 식민지배 아래 경제·사회상을 신랄하게 드러낸다.

'탁류'에선 '미두'(米斗)가 등장한다.

미두란 현물(쌀) 거래 없이 쌀값 변동을 이용한 투기거래로,요즘으로 치면 선물(先物)에 해당된다.

초봉의 아버지가 당시로선 선진 금융기법인 미두에 투자하면서 몰락하고,초봉이 기구한 삶으로 전락하는 과정은 투기자본과 식민지경제의 귀결로 해석된다.

'태평천하'에서도 주인공 윤직원 영감은 식민지 경제환경이 태평천하라고 독백하지만,이는 거꾸로 대다수 백성들에겐 지옥과도 같은 삶이란 의미로 읽혀진다.

◆독점의 원리,경제의 윤리

자신의 욕심만 채울수는 없지

[Cover Story] 문학작품 속 경제원리
연암 박지원의 소설 '허생전'의 허생은 단순한 장사꾼이 아니라 왜란과 호란을 겪은 17세기 조선을 개혁하고자 하는 이상주의자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허생이 돈을 버는 과정으로 좁혀볼 때 흥미로운 사실은 현대의 경제원리를 고스란히 소설 속에 구현한 것이다.

허생은 매점매석(독점) 대상으로 과일과 말총을 택했다.

조상에 대한 제사를 중시하는 당시 조선에서 대추 밤 배 등 제삿상에 쓰일 과일은 가격이 올라도 수요가 줄지 않는,가격 변화에 대해 수요가 비탄력적인 품목이다.

말총은 망건을 만드는 유일한 재료여서 대체재가 없음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활동에서 자신의 욕심만 채울 순 없다.

그래서 상거래에서도 도의가 필요하다.

최인호의 '상도(商道)'(2000년)는 조선시대 거상 임상옥의 좌우명인 '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와 '계영배'(戒盈杯,넘침을 경계하는 잔)의 교훈을 던져준다.

욕구가 지나쳐 탐욕으로 흐르기 쉬운 오늘날 경제상황에 대입해봐도 크게 어긋남이 없다.

다만 경제의 문제를 개인의 도덕심으로 환원하는 것은 문제로 지적될 수도 있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ohk@hankyung.com

■도움말 주신분 = 신성식 선생님(충남 서야고),육근록 선생님(서울 청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