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부모님과 지난번 설 연휴 때 고향에 다녀왔습니까."

올해 설날은 고향에 내려가지 못한 사람들이 예년보다 많았다고 한다.

고향에 계신 노부모님을 직접 찾아뵙지 못하는 대신 선물을 보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덕분에 대한통운이나 현대택배 한진택배와 같은 운송회사들은 올해 설 배송물량이 지난해보다 최대 73%나 늘어나는 호황을 누렸지만,주머니 사정 때문에 고향에 내려가지 못하는 직장인들과 연휴에도 쉬지 않고 장사를 해야했던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았다.

국내 총생산(GDP)은 매년 늘어나고 1인당 국민소득도 2만달러에 거의 육박했다는 데 사람들의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는 것 같다.

동네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장사가 안된다고 울상이고,월급쟁이들은 빚을 내지 않으면 생활하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늘어나는 세금 국민연금 의료보험료….

실제로 한 직장에서 12년째 일하고 있는 A씨의 사례를 살펴보자.그는 요즘 들어 지갑이 무척 얇아졌다는 느낌이 들어 4년 전 월급명세서를 찾아내 지난1월 월급명세서와 비교해봤다.

"4년 전 월급 지급총액이 227만1000원이었는데 지금은 284만7000원…." 계산기로 증가율을 계산해봤다.

"음….4년 동안 월급이 25.4% 늘어났군….그런데 웬 공제총액이 이렇게 많지?"

A씨는 공제내역을 찬찬히 훑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2003년 소득세는 4만9120원을 냈고,올해는….아니,이게 얼마야!"

그는 올해 1월에 낸 소득세 항목을 보고 깜짝 놀랐다.

9만3140원이나 빠져나가 있었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증가율이 무려 89.6%에 달했다.

그는 다음 항목으로 눈길을 돌렸다.

"국민연금도 16만2000원씩이나 내고 있잖아!4년 전에는 11만4300원이었는데…." 2003년 5만820원이었던 의료보험료는 올해 9만660원으로 무려 78.4%나 늘어나 있었다.

그나마 월급 증가율 수준과 비슷하게 오른 것은 고용보험이었다.

그는 세금과 국민연금 의료보험 건강보험 등 반드시 내야 하는 돈을 합쳐봤다.

2003년 1월에 낸 돈은 22만9360원이었다.

하지만 올 1월에는 36만7920원으로 무려 60.4%나 늘어났다.

월급 총액이 25% 늘어난 것에 비해서는 증가율이 너무 높았다.

게다가 그의 월급에서는 전셋값을 올려주느라 받아낸 사내 대출금의 원리금이 70만원씩 빠져나가고 있었다.

A씨가 손에 쥐는 월급은 2003년 175만원에서 지금은 161만원으로 줄어 있었다.

◆세금·사회부담금이 소득보다 더 빨리 증가

소득이 매년 조금씩이나마 늘어나는 데도 살림살이가 팍팍해졌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갈수록 늘어나는 세금과 사회부담금,여기에다 주택대출이자 등 소비와 직접 관련이 없는 지출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세금이나 국민연금 등 사회부담금 부담률이 월급보다 더 큰 폭으로 늘어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세금은 누진세율이 적용되는데,현행 소득세법에는 과세표준 소득액 기준으로 △1000만원까지는 8% △1000만~4000만원까지는 17% △4000만~8000만원까지는 26% △8000만원 초과분에 대해서는 35%의 세율이 각각 적용되고 있다.

소득이 늘어나는 만큼 상위 세율을 적용받는 소득구간이 늘어나 세금 증가폭이 증가한다.

소득은 거북이 처럼 늘어나지만 어느 단계에서 세금은 토끼처럼 껑충 뛰어오르게 된다.

(조금 어렵지만 세심하게 읽어봅시다)

물가상승률도 세금 증가와 함수 관계가 있다.

예컨대 물가가 4년 전보다 20% 올랐다면 명목상 소득이 20% 늘어났더라도 실질소득은 예전과 같다.

하지만 세금은 명목 소득금액을 기준으로 부과하기 때문에 징수액은 그만큼 늘어나게 된다.

예컨대 1500만원의 연봉을 받는 사람은 예전에는 각종 공제혜택을 감안하면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으나 지금은 명목소득이 25% 늘어난 만큼 과세대상자로 바뀌어 세금을 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낮은 세율을 적용받는 사람들은 실질소득이 늘어나지 않더라도 높은 세율을 적용받는 구간이 늘어나 실효세율은 높아진다.

따라서 국민의 세금 부담을 동일한 수준으로 유지하려면 정부는 매년 물가상승률만큼 과세표준 소득구간을 상향 조정하거나 세율 인하 등을 통해 세금을 깎아줘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큰 정부,효율적인 정부'를 지향하면서 적자국채를 발행하거나 세금을 오히려 늘리는 방안을 궁리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더 내고,덜 받는'구조로 바뀌는 개혁안이 통과될 경우 그 부담이 상당히 늘어나게 된다.

현행 개혁안에 따르면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소득액의 4.5%에서 단계적으로 인상돼 1018년에는 6.45%까지 높아진다.

의료보험은 2003년 보험료율이 소득액의 3.94%였으나 지금은 4.77%로 높아졌다.

의료보험기금의 재정 상태를 감안하면 앞으로 보험료율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가계빚·교육비 지출 등도 부담

경기가 좋다면 세금이나 각종 사회부담금이 증가하더라도 소득이 큰 폭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생활이 풍족해진다.

1960년대와 1970년대 경제개발 과정에서 세금이 많이 늘어났지만 이보다 더 빨리 경제가 성장했기 때문에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경제성장률이 둔화되는 상황에서 세금과 연금보험료가 늘어나는 것은 큰 부담이다.

여기에다 집사느라 은행에서 빌린 돈의 이자 부담이 늘어나고 자녀 사교육비까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대부분 가계의 생활은 예전보다 쪼들리는 사례가 많아졌다.

가계대출 잔액만 봐도 지난해 9월 말 529조4527억원으로 2000년 말(241조688억원)에 비해 119.6% 늘어났으니 이자지급액은 엄청나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사교육비 지출 실태는 학생 여러분도 잘 아실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