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수출을 나쁜 짓'이라고 생각했다.

피땀을 흘려가며 애써 만들어놓은 것을 왜 외국에 내다파느냐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실제로 1950년대 광목을 수출했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상당수 사람들의 반응은 "돈 버는 것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만 우리나라에 부족한 광목을 해외로 내다팔면 어떡하느냐"는 것이었다고 한다.

상당수 사람들은 수출 기업인, 특히 일본 쪽으로 물건을 내다파는 사람들을 '매국노'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1960년대 이후부터 수출 중시

국민들의 인식이 확 바뀐 것은 1960년대 경제개발 계획이 시작되면서부터였다.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수출 드라이브 정책이 시작점이었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우리나라에 필요한 석유나 원자재,자본재를 사들이려면 외화가 필요한데,외화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수출밖에 없다"며 '수출 100억달러 달성'을 기치로 내걸었다.

우리가 물건을 만들어서 해외로 내다팔아야 우리가 필요한 것들을 해외에서 사들일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 때부터 수출을 많이 한 기업인들은 각종 상을 받았고 국민이 낸 세금으로 보조금까지 받았다.

대신 양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단속의 대상이었다.

일본으로의 수출이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대일 무역 역조(수입이 수출보다 지속적으로 많은 상태)가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로 등장했다.

수입보다 수출을 많이 해야 한다는 인식이 더욱 확고해진 계기는 1997년 말의 외환위기였다.

외화가 모자라 국가 부도 상태에 빠졌고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 기구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회생했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 사람들은 무역과 서비스 교역에서 흑자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겼다.

아기 돌반지와 결혼 예물까지 처분하면서 금 모으기 운동을 했던 국민들의 마음 한 구석에는 '다시는 적자를 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목표와 수단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위해 목표를 세우고 수단을 정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목표와 수단으로 정해놓은 것은 그대로 남아 있는데,왜 그런 목표와 수단을 정해놓았는지에 대한 이유는 잊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우리가 무역수지 흑자를 목표로 정하고 여러 가지 정책을 수단으로 동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수입을 하기 위해서다.

국민 생활에 필요한 석유와 원자재,해외의 좋은 상품들을 사들이기 위해 우리는 수출을 한다.

'수입하기 위해 수출한다'는 기본적인 진리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교역하는 이유가 '해외에서 좋은 상품을 들여와 우리의 삶을 풍족하게 누리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출에 지나치게 드라이브를 걸다 보니 때때로 수입의 가치를 잊고 살게 된다.

경제학 교과서들은 무역의 이익을 '국내에서보다 값싸고 질 좋은 상품을 해외에서 들여옴으로써 효용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단순히 외화를 버는 것과는 다르다.

저축과 소비도 마찬가지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으는 이유는 소비를 하기 위해서다.

젊은 나이에 저축을 많이 하는 것도 나이가 든 뒤 안정적으로 소비하기 위해서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종종 이런 사실을 잊고 산다.

돈을 모으고 부자가 되는 것에만 열중한다.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해외 소비

지난해 해외 여행과 유학·연수 등으로 인한 여행 수지 적자는 무려 129억2000만달러였다.

전년보다 34.6%나 증가했다.

외국인들이 국내에서 관광하거나 공부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외로 나가고 있다는 얘기다.

해외 여행과 유학·연수가 늘어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나쁜 것이라고 봐야 할 이유는 없다.

수출로 벌어들인 돈으로 필요한 물품을 해외에서 사들였는데도 돈이 남는다(무역수지 흑자)면 그 돈으로 해외에서 공부도 하고 여행을 다니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해외의 좋은 상품을 구매하고 해외 여행도 다니기 위해 흑자를 내고 있다는 말도 성립한다.

우리가 문제로 삼는 것은 해외 여행과 유학·연수 그 자체가 결코 아니다.

해외 여행과 유학·연수가 너무나 빠른 속도로 증가해서 수출로 벌어들인 돈만으로는 도무지 충당할 수 없는 지경으로까지 치닫는 게 아니냐는 걱정들이 있다.

이 같은 우려는 어느 정도 타당한 부분이 있다.

주식 투자나 차입 등 자본 거래를 제외한 경상 수지에서 한국은 여전히 흑자를 내고 있지만 그 규모는 2004년 281억7350만달러에서 2005년 149억8090만달러,2006년 60억9260만달러로 급감하고 있는 추세다.

이 정도 속도라면 올해는 균형 또는 소폭의 적자로 반전하고 내년에는 구조적인 적자 기조에 빠져들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수출로 벌어들인 돈으로 외국의 상품을 사거나 해외 여행을 하는 수준을 넘어 빚을 내 해외 소비를 해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현승윤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hyuns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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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수지 187억달러 적자 … 해외여행ㆍ유학이 69%

지난해 해외여행과 유학·연수,사업용역(컨설팅 등) 등을 포함한 전체 서비스 수지는 187억6290만 달러 적자였다.

2005년보다 37.4%나 늘어났다.

이 가운데 해외여행과 유학·연수 적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69%를 차지했으니 ‘서비스수지 적자를 키운 주범’이라는 비판을 받아도 그리 억울할 것은 없어 보인다.

해외여행과 유학·연수가 급증하는 것은 국내 여행과 교육에 대한 만족도가 그만큼 떨어진다는 방증이다.

소득수준에 비례해서 여가를 즐기고 여행을 다닐 만한 곳들이 계속 업그레이드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자녀교육에 대한 욕구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데도 우리나라의 공교육 수준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교역이 늘어나고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여행이나 교육과 같은 서비스에 대한 국민의 기대 수준은 높아지는 반면 국내 관련 산업은 이에 전혀 부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서비스수지 적자가 구조적으로 급증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해외여행과 유학·연수를 무작정 탓하기 보다는 쓸데없는 규제도 풀고 시장개방으로 해외의 선진기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국내 관광업과 교육의 질을 계속 높여가는 것이 바람직한 해법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