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CC를 넘어 PCC시대로] '마빡이' 부터 '대선주자'까지…소비자=공급자 시대
'애국가 맨'이 떴다.

지난달 25일 한 미국인이 우리나라 애국가를 부르는 UCC(사용자 제작 콘텐츠) 동영상이 '한국의 유튜브'라 할 수 있는 판도라TV(www.pandora.tv)에 올라와 화제를 모았다.

이 동영상을 단 1주일 만에 100만명이 시청하면서 '토니'라고 알려진 이 미국인은 급기야 애국가 맨으로 불렸다.

애국가 맨은 동영상을 본 사람들이 남긴 댓글을 보고 감동해 한국 가요를 부른 동영상을 후속 편으로 올리기도 했다.

이 역시 단 하루 만에 조회수 100만을 넘기는 인기를 끌었다.

이처럼 UCC가 국경도 무너뜨리고 있다.

전 세계 어느 곳이든 인터넷에 접속만 하면 지구촌 곳곳에서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동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그동안 매체 수용자에만 머물던 보통 사람들이 직접 제작자가 돼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기록하고 인터넷에 올려 손쉽게 공유하고 있다.

일반인이 동영상 정보를 제작·유통할 때 드는 비용도 획기적으로 낮아졌다.

미디어 제작 기기의 발달로 누구나 손쉽게 동영상을 촬영할 수 있는 데다 사용자가 직접 사이트의 내용을 채우며 진화해 나가는 웹2.0 기반의 서비스가 보편화한 것에 힘입었다.

비전문가가 제작한 몇몇 UCC 동영상은 인기 TV드라마보다 더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아마추어 기타리스트 임정현,개그맨 지망생 백두현·김경학 듀오 등을 순식간에 인기 스타로 만들어냈다.

◆2006년 올해의 인물은 '당신'

지난해 말 권위 있는 시사잡지 '타임'은 2006년 올해의 인물로 '당신(You)',즉 적극적인 참여로 세상을 바꿔 나가고 있는 보통 사람들을 선정했다.

또 올해의 발명품 자리에는 UCC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튜브'를 올렸다.

개방과 참여를 키워드로 하는 웹2.0 시대를 대표하는 인터넷 사이트로 부상한 유튜브는 사용자가 직접 동영상을 올리고 또 다른 사용자가 이를 재생할 수 있는 기본적인 플랫폼만 갖춰 놓고 나머지는 모두 사용자가 참여해 진화시키도록 열어놨다.

기존 VOD 사이트처럼 영화 TV드라마 다큐멘터리 등 전문가가 상업적 목적으로 만든 동영상을 일방적으로 공급하는 게 아니다.

국내에서도 판도라TV,엠엔캐스트,아우라 등 유튜브를 모델로 한 UCC 공유 사이트들이 대거 생겨났다.

적극적이기로 말하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한국의 네티즌은 그 어떤 나라보다 무서운 속도로 UCC 열풍을 만들어내고 있다.

웹2.0 기반의 열린 플랫폼 아래에서 인터넷 사용자들은 재미있는 동영상을 본 뒤 '또 다른 게 없을까'라는 반응보다는 '나도 한번 만들어볼까'하는 식의 적극적인 참여 의지를 보인다.

이 같은 UCC 열풍은 사회와 문화를 바꿔 나가는 것을 넘어 기업 비즈니스와 정치 영역에까지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기업들은 UCC 동영상을 마케팅의 수단으로 삼거나 UCC 스타를 광고에 출연시키고 있다.

또 인기 있는 UCC를 분석해 소비자의 욕구를 읽고 제품 개발의 아이디어를 얻는 '크라우드 소싱'도 확산되고 있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올 연말 대선은 UCC가 당락의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대선 주자들은 단순히 인터넷을 통해 후보자들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을 넘어 직접 정보를 만들고 전파시킬 만반의 준비가 돼 있는 수백만 동영상 제작자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단 한 번의 실수라도 UCC 제작자들의 카메라 앵글에 걸려들면 순식간에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퍼져 나가고 후보로서의 생명은 단숨에 끊길 수 있기 때문이다.

◆부작용은 없나

UCC 열풍의 이면에는 '사생활 침해'와 '명예 훼손' 등의 어두운 측면도 분명히 존재한다.

휴대폰으로 간편하게 동영상을 촬영할 수 있는 것이 UCC 제작자들에게는 편리하겠지만 자칫 악용할 경우 타인의 사생활 정보가 공공연하게 인터넷상에 노출되는 결과가 불러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UCC 사이트에 범람하는 각종 패러디 동영상은 늘 명예 훼손 논란을 빚기도 한다.

청소년이 음란물을 접할 기회가 더욱 많아졌다는 것도 UCC와 동영상 공유 사이트의 인기가 가져온 부작용이다.

대용량의 동영상 데이터가 별 무리 없이,누구에게나 접할 수 있도록 노출돼 있다 보니 UCC 사이트에는 낯뜨거운 동영상이 아무런 제한 없이 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칫 사생활 파괴와 무차별 감시 사회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걱정도 나온다.

경찰은 다음 달부터 시민이 휴대폰으로 범죄 현장을 찍어 신고하는 UCC 기반의 범죄신고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빅 브라더' 대신 최첨단 미디어 기기와 언제든지 전 세계에 이를 뿌릴 수 있는 공유 사이트로 무장한 수천만의 사용자가 지배하는 '철창 없는 감옥'이 올 것이라는 걱정이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차기현 한국경제신문 생활경제부 기자 kh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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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CC 관련 용어 알아두자

▶UCC(User Created Contents)=전문적인 콘텐츠 생산자가 아니라 사용자들이 직접 만든 콘텐츠.웹2.0 기반의 동영상 공유 사이트를 통해 유통된다.

▶PCC(proteur Created Contents)=준(準)전문가가 제작한 콘텐츠.UCC와 더불어 웹 2.0을 기반으로 한다.UCC는 화제성 내용을 중심으로 재미와 즐거움을 추구한다면 PCC는 각 분야에 대한 양질의 정보를 제공한다.

▶SCC(seller created contents)=판매자 제작 콘텐츠를 뜻하는 말.온라인 장터에서 물품 등록자가 직접 해당 상품에 대한 설명을 담은 동영상을 제작해 등록한다.이 서비스가 시작되면서 1인 홈쇼핑 시대가 열렸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웹2.0=사용자 중심의 인터넷 환경.웹 사이트는 개방과 참여를 전제로 열린 플랫폼 형태의 서비스를 제공하고,사용자는 이 공간을 스스로 채워 나간다.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인공지능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웹3.0'으로 지칭하는 경우도 있다.

▶크라우드 소싱(crowdsourcing)=군중(crowd)과 아웃소싱(outsourcing,기업 업무의 일부를 외부 제3자에게 맡겨 처리하는 것)을 합성한 신조어.이용자 중심의 인터넷 환경인 웹2.0 시대에 맞춰 등장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기업이 신제품 발굴이나 기술개발 과정에서 인터넷을 통해 소비자와 외부 전문가의 아이디어를 적극 반영하는 형태다.

▶RSS(Really Simple Syndication)='Rich Site Summary'의 약어이기도 하다.

정보를 얻고 싶은 웹사이트의 RSS 주소를 등록해 놓으면 그 사이트에 일일이 방문하지 않아도 업데이트한 새로운 콘텐츠가 내 블로그나 RSS 수집 사이트를 통해 나에게 배달된다.

▶소셜 북마크(Social Bookmark)=인터넷에서 읽은 글이나 논문 중 재미있다고 생각한 것에 북마크를 하거나,간단한 코멘트나 키워드를 붙일 수 있게 해주는 도구.북마크 리스트를 인터넷상에 게재해 모두가 공유하며 이용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