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은 1987년 6월항쟁으로 쟁취한 민주화 20주년이자,6·25 이후 최대 국난(國難)이라는 1997년 외환위기를 맞은 지 10주년이 되는 해다.

게다가 연말에는 대통령 선거까지 예정돼 있어 여느 해와는 비교가 안될 만큼 중차대한 기로에 서있다.

20년 전 독재에 대한 항거로 민주주의를 이뤄냈지만 우리 사회가 성숙한 민주사회로 이행했는지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이다.

또한 외환위기에서 탈출했고,경제 규모는 세계 10위권으로 커졌지만 오히려 장기화하는 구조적 위기를 염려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일본의 선례를 들어 부동산 거품을 우려하는 경고음도 커지고 있다.

한국은 2차 대전 이후 독립국 중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뤄낸 유일한 나라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중국 등 경쟁국들이 초고속으로 달려나가는데 반해 국내적인 갈등과 대립·반목으로 시간만 보내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지난 10년은 어쩌면 1990년대 일본보다 더한 '잃어버린 10년'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제의 위기'에선 벗어났지만 '내일에 대한 준비'는 턱없이 부족하다.

위환위기 이후 지난 10년을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는지,그리고 앞으로 10년은 어떻게 나아가야할지 생각해보자.

◆지난 10년간 이룬 것

1997년 11월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불과 38억달러까지 줄었다.

하지만 지금은 외환보유액이 너무 많아(지난해 말 2389억달러) 논란을 빚을 정도다.

수출은 세계에서 11번째로 연간 3000억달러를 돌파했다.

1인당 국민소득은 1995년 1만달러를 넘은 이래 12년 만에 선진국 진입의 관문이라고 할 2만달러를 눈앞에 뒀다.

이른바 '1만달러의 덫'에서 벗어날지 주목된다.

호된 구조조정의 결과 기업의 재무건전성은 외환위기 이전과 비교가 안될 만큼 개선(부채비율 1997년 396.3%→지난해 9월 81.5%)됐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국가 신용등급은 외환위기 이전(AA-)의 바로 밑인 A+까지 회복됐지만 지금은 기업들이 너무 투자를 하지 않아 문제가 되고 있다.

◆외환위기에서 '의식의 위기'로

이 같은 외형적인 성과와 달리 국민들의 의식 면에선 오히려 위기상황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0년간 증폭된 '의식의 위기'는 공동의 선(善)보다 집단·계층·조직 이기주의가 우선하고 법과 질서,공권력을 우습게 보는 행태가 대표적이다.

이와 함께 △시장경제체제와 개방화·세계화의 최대 수혜국이면서도 알레르기 반응에 가까운 반시장적·쇄국적인 국민의식 △기업이 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추진동력임에도 경제를 좀먹는 반기업 정서 △교육 등 취약부문에서 심화되는 결과의 평등주의 △국가 정체성까지 좀먹는 이념갈등과 안보불감증 등에서도 돈으로 풀 수 없는 '의식의 위기' 징후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국민의식을 일깨우고 제대로 이끌어가야 할 정치는 국민을 편안하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국민들의 걱정을 사는 상황이다.

'목소리 큰 사람','머리에 띠두른 사람'들 대신 묵묵히 맡은 바 임무에만 충실했던 '침묵하는 다수'만이 이런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뿐이다.

◆앞으로 10년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현재 나라 안팎의 환경도 결코 '내일의 한국'에 우호적이라고 할 수 없다.

국내적으로는 세계적으로도 유례 없는 저출산·고령화의 재앙이 다가오고 있고,잠자던 거대국가들(중국 인도 러시아 등)의 급부상으로 우리나라의 상대적인 경제지위도 위태로워졌다.

이런 상황에서 부풀대로 부푼 부동산 거품이 순식간에 꺼진다면 일본처럼 '상실의 10년'을 맞지 말란 법도 없다.

앞으로의 10년은 지난 10년간 쌓인 폐습·갈등을 떨쳐버리고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과정이 돼야 한다.

민주화 체제 20년으로 자유와 민주는 얻었지만 그에 걸맞은 책임의식은 체득하지 못했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소득 3만달러,수출 4000억달러 같은 외형적 목표나 자산이 아니라 사회·경제주체들 간의 '신뢰''존중''배려''관용'과 같은 무형의 자산이다.

경제적 성공이 선진국으로 가는 필요조건이지,충분조건은 아니다.

소득 2만달러이면 그에 걸맞은 성숙되고 사려깊은 사회를 이뤄야 선진국이다.

우리 사회가 법과 질서를 지키는 국민,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사회지도층,다음 선거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정치인을 가질 때,앞으로 10년 뒤엔 '속이 꽉 찬 10년'을 회고할 수 있을 것이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ohk@hankyung.com

[ 법.질서 안지켜 성장률 매년 1%P 까먹었다 ]

연초부터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시무식 난동사태'로 파장이 일고 있는 가운데 한국이 1991년 이후 법·질서를 지키지 않아 매년 1%포인트의 경제성장률을 까먹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발표한 '법·질서 준수가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미국의 리스크 분석기관인 정치위기관리그룹(PRS그룹)이 발표한 세계 113개국의 1991~2000년 평균 법·질서 지수를 분석한 결과 법·질서 지수가 한 단위 높은 국가는 낮은 국가보다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0.9%포인트 높았다"고 밝혔다.

KDI는 이런 결과를 토대로 우리나라가 1991~200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적인 법·질서 수준을 유지했다면 연평균 0.99%포인트씩 추가 성장이 가능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PRS그룹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법·질서 지수(1991~2000년)는 평균 4.4로,OECD 평균 5.5보다 훨씬 낮았으며 순위도 OECD 30개 회원국 중 28위로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이 연구를 진행한 차문중 KDI 선임연구원은 "우리나라는 법·질서 지수가 비슷한 나라 중 1인당 국민소득이 가장 높다"며 "이는 법·질서 준수의식이 국민소득 수준에 비해 매우 낮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KDI는 특히 법·질서 위반에 대해 정부가 강경대응 성명을 발표해도 실제적인 적발·처벌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법·질서를 위반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학습효과를 일으켜 법·질서 위반이 계속 발생할 것으로 우려했다.

차문종 연구원은 "이 연구 결과는 그동안 정부가 불법시위에 단호하고 일관성있게 대처하지 못했고 '고성불패(高聲不敗)' 현상이 사회적 기준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며 "최근 잇단 불법시위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손해배상 청구는 법·질서 위반 행위를 줄일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