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미국 뉴욕의 플라자호텔.미국 고위 협상대표는 일본 대표에게 '125'라는 숫자가 쓰여진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달러당 250엔대에서 움직이던 엔화 환율을 125엔으로 낮추라는 미국측의 최후통첩이었다.

전후 경제 회복에 성공한 일본은 혁신적 제품,효율적 생산 방식 도입 등을 통해 1970년대부터 미국 소비재 시장을 장악했다.

이로 인해 일본의 대미 무역흑자 규모가 커지자 미국은 일본 엔화의 평가절상을 유도하도록 압력을 넣었고 결국 "정부의 '협조 개입'을 통해 목적을 달성한다"는 내용의 '플라자 합의(Plaza Accord)'를 이끌어낸 것이다.

일본인에게 천국과 지옥의 경험을 한꺼번에 선물해준 '버블 형성과 붕괴'의 출발점은 바로 플라자 합의다.

이 합의 후 엔화는 가파르게 절상(달러화가치 하락)됐다.

엔화가치가 절상되면 일본 기업 입장에서는 이전과 같은 가격에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더라도 (이전보다 가치가 하락한) 달러로 돈을 받기 때문에 수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반면 미국 기업들은 해외에 더 싸게 물건을 팔아도 (가치가 높아진) 외국 통화로 돈을 받기 때문에 수익이 더 생긴다.

결국 일본 기업들은 수출 시장에서 훨씬 불리해진다.

수출로 부강해진 나라인 일본은 이를 좌시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기업들을 위해 금리를 낮췄다.

금리를 낮추면 기업들이 싼 값에 자금을 조달받아 물건을 만들 수 있다.

실제 1986년부터 1987년 초까지 일본의 정책금리는 연 5%에서 2.5%로 떨어졌다.

은행들은 갖고 있던 자금도 풀었다.

하지만 풀린 자금은 산업자금으로만 쓰여진 게 아니다.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수준 이상으로 풀린 자금들은 새로운 투자처를 찾아 흘러갔다.

가장 손쉬운 투자처는 주식과 부동산이었다.

거품이란 쉽게 말해 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만으로 가격이 폭등하는 현상을 말한다.

최초의 거품 사례는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인데,튤립 한 송이가 집 값과 맞먹을 정도로 오르기도 했다.

물론 나중에 튤립 가격은 제 자리를 찾았고 높은 가격에 튤립을 샀던 사람들은 큰 손해를 봤을 뿐만 아니라 자살하는 사례도 속출했다.

하지만 인간의 탐욕적 본성은 수백년 전의 역사적 교훈도 잊게 만든다.

주식과 부동산으로 자금이 몰리면서 일본 닛케이 평균주가는 1980년대 후반 3만9000엔까지 폭등했다(참고로 현재 닛케이 주가는 1만7000엔 수준). 부동산으로 자금이 몰려들어 집값도 급등했다.

특히 일본의 경우 부동산 보유세 부담이 적었다.

따라서 일단 땅을 사놓고 활용하지 않더라도 큰 세금 부담 없이 매매차익을 기대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에 수많은 투자자금이 부동산으로 몰려들었다.

기업들도 거품 형성에 동참했다.

본래의 사업과 관련이 없더라도 은행에서 손쉽게 대출받은 자금으로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했다.

제조업 같은 사업을 해봐야 10% 이익을 남기기도 어렵지만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하면 몇 배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 속에서 제조업체들조차 투자회사로 변모했다.

결국 1990년대 초 일본 땅값은 평균 50%나 올랐다.

50%면 얼마 안 오른 것 같지만 이는 수십년간 가격 변화가 없는 일본 시골지역 땅까지 포함한 것이다.

도쿄나 나고야 같은 대도시는 200~900%까지 올랐다.

도쿄 땅값이 미국 전체 땅값보다 비싸다는 말이 현실화한 것이다.

하지만 튤립 사례처럼 비정상적으로 형성된 거품은 언젠가 반드시 터지게 돼 있다.

그것도 한순간에 터지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도 그랬다.

1990년대 초 일본 정부는 토지 대출을 규제하는 등 일련의 긴축 정책을 발표했다.

이를 계기로 초저리 융자를 해오던 은행이 돈줄을 조였다.

거품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자산 가격은 폭락했고 높은 가격에 주식이나 부동산을 사들였던 수많은 개인과 기업이 큰 손해를 봤다.

피해는 부메랑이 되어 은행으로 돌아왔다.

대출이 부실해지면서 파산하거나 합병한 금융회사가 50곳을 넘었다.

은행이 파산하니 멀쩡하게 영업하던 기업도 대출금을 구하지 못해 자금난을 겪다 파산하는 끔찍한 악순환의 고리가 생겨났다.

이후 일본 경제는 10년이 넘는 기간 장기 불황을 겪었다.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이다.

김남국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n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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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지출 늘렸지만 큰 효과 못봐

정부 구조조정ㆍ민간 자구노력 성공

어떻게 탈출했나

거품 붕괴로 촉발된 장기 불황에서 탈출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안간힘을 썼다.

대표적인 정책이 정부 지출 확대였다.

정부가 지출을 늘려 소비를 부양하고 이를 토대로 경기가 좋아지면 정부의 조세 수입이 늘어나 이전 재정 지출을 만회하는 케인스식 처방이 성과를 거둘 것으로 일본 정부는 기대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런 정책은 먹혀들지 않았다.

정부 재정 지출 확대는 일시적인 효과는 있었지만 장기 불황에 빠진 일본 경제는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개인과 기업의 정부 의존 성향만 커졌고 과도한 재정 지출로 국가 부채가 700조엔을 넘어서는 등 부작용만 속출했다.

2001년 4월 고이즈미 내각 출범을 계기로 이런 재정 지출 확대 정책은 전면 수정됐다.

고이즈미 내각은 재정 지출을 축소하고 공공부문 개혁을 통한 인력 축소 등 정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국가 부채 증가의 주범으로 지목됐던 공공투자도 대폭 삭감해 1990년대 약 40조엔대에서 2005년에 23조원으로 축소했다.

종신 고용을 관행으로 삼았던 일본 기업들도 단카이 세대의 본격 은퇴,임금 피크제 도입 등 구조개혁에 나섰다.

이와 함께 투자비 세액공제,규제 혁파 등으로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촉진하는 정책도 상당한 효과를 봤다.

중소기업들은 금융개혁을 통해 은행을 건전화시켜 자금의 선순환도 촉진했다.

작은 정부,민간 활력 제고라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성공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정부 정책과 민간 기업들의 자구 노력이 상승 작용을 하며 일본 경제는 본격적인 회복세를 보였고 2002년 2월부터 현재까지 장기간 경기 회복 국면을 이어나가고 있다.

물론 일본 경기 회복세를 냉소적으로 보는 견해도 적지 않다.

GDP 성장률이 본격적인 활황이라고 할 만큼 높은 수준도 아니고 좋아진 기업 실적도 고용비용 절감의 효과일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다시 장기 불황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적다는 점에서 일본 경제는 분명 완만하게 회복하는 새로운 전성기를 맞고 있다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