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1997년,그해 겨울은 몹시도 추웠다.

'괴물'과도 같던 IMF 외환위기는 온 국민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중산층이 나락으로 떨어지고,수많은 기업과 금융회사들이 몰락했으며,주가도 곤두박질쳤다.

환율이 두 배로 뛰면서 국민의 소득수준은 앉아서 절반으로 줄어버렸다.

그렇게 캄캄한 터널 속에서도 한줄기 희망이 있었다.

국민들은 앞다퉈 금반지를 모았고,기업들은 역경 속에서도 수출을 위해 뛰었으며,모두가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감내했다.

그렇게 보유 달러가 다 떨어져 부도로 내몰렸던 외환위기는 오래지 않아 극복할 수 있었다.

이제는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자 연간 3000억달러 넘게 수출하는 무역강국으로 올라섰고,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도 임박했다.

그런데도 대부분 국민들은 10년 전이나 이번 겨울이나 춥기는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있다.

희망의 불씨는 더 꺼져가고,많은 부분에서 국력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갖게 됐다.

부동산 거품은 건드리면 터질버릴 것처럼 팽팽해져 있고 최근에는 거품 붕괴를 경고하는 사이렌도 울리기 시작했다.

정부,공기업 등 공공부문이 비대해지면서 민간경제의 활력은 갈수록 시들해지고 있다.

창의와 패기로 국제 사회의 도전거리를 찾아나서야 할 청년들은 '철밥통'으로 불리는 공무원이 되려고 시험준비에 매달리고 있다.

바늘구멍인 취업시장에서 좌절하는 젊은이들은 더욱 많다.

기회의 평등이 아니라 결과의 평등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법과 질서는 집단이기주의 앞에 무력해지기 일쑤여서 사회기강이 흔들린다는 우려도 높아졌다.

경제가 활력을 잃는 가운데 양극화는 더욱 심각한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1990년대의 일본처럼 우리나라도 '잃어버린 10년'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고 있다.

거품 붕괴 직전의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고 그 경우 일본보다 더욱 상황이 나빠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경제규모가 커지고 소득이 늘었다고 선진국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역사적으로 경제규모에 걸맞은 성숙된 정치·사회구조와 시민의식을 갖추지 못하고서 선진국 반열에 오른 나라는 없다.

국민소득이 2만달러가 되든,3만달러가 되든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는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한국은 '상실의 10년'으로 가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본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