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輿論, public opinion)은 사회흐름을 좌우하는 방향키와 같다.

백과사전은 ‘사회 구성원 전체에 관계되는 일에 대해 대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인정되는 의견’이라고 여론을 정의하고 있다.

때로는 민심(民心)과 동의어로 쓰이며, ‘여론=민심=천심’이란 등식이 성립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다중의 의견은 쉽사리 한 쪽으로 휩쓸리기 쉽다.

정략가일수록 여론을 조작하기 쉬운 대상으로 여긴다.

한 사람을 설득하는 것보다 대중을 움직이는 것이 쉽다고 말한 사람도 있다.

냄비처럼 쉬 끓고,쉬 식는 군중심리는 오히려 사회를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가기도 한다.

정치적 사안도 그렇지만 황우석 사태와 2004년 만두소 파동도 그런 대표적인 사례다.

대중은 사건의 실체보다 분위기에 휩쓸려 판단할 가능성이 더욱 높다.

이 때문에 여론만 좇아 중대한 사회적 결정을 내렸다간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으로 치닫게 마련이다.

쏟아져 나오는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 없이 표피적이고 주관적인 다수의 의견들이 여론이란 이름으로 포장돼 등장하기 일쑤다.

또한 정치인들은 무슨 일이든 여론에 빗대 말하기를 좋아한다.

따라서 역사상 가장 정의로운 체제라는 민주주의는 언제든 중우(衆愚)정치와 조작된 여론에 함몰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1930년대 독재자 히틀러는 독일 국민들의 열화 같은 지지를 업고 선거에서 당선했고,북한 정권은 늘 '100% 투표,100% 지지'라는 우스꽝스런 풍경을 연출해낸다.

우리 사회의 여론은 과연 건전한지 물어보자.인터넷문화는 디지털 포퓰리즘이란 새로운 바이러스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렇다면 참된 민주주의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인가? 존 롤스는 '정의론'에서 '숙고(熟考)된 합리성을 통한 질서정연한 사회'를 조건으로 제시한다.

숙고란 깊이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 구성원들이 각자 자신의 의견이 보편적 가치에 합당한지,실체적 진실에 근접하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회가 그런 모습이 아닐까? 포퓰리즘의 뿌리와 민주주의의 조건에 대해 4,5면에서 자세히 알아보자.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