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 12월21일자 A1면

이르면 2008년 말께 5만원권 10만원권 등 고액권이 나온다.

고액권 발행에 부정적인 입장이던 재정경제부가 '여야가 합의하면 적극 추진하겠다'고 입장을 전격 선회했고,여·야 정치권도 '고액권 발행촉구결의안'을 곧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재경부 고위 관계자는 20일 "여·야가 고액권 발행 촉구결의안에 합의할 경우 정부도 적극 추진키로 관계부처 간에 의견을 모았다"며 "실무준비 등에 2년가량이 걸리기 때문에 새 화폐 발행 시기는 2008년 말이나 2009년 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촉구결의안 채택이냐,한국은행법 개정이냐를 놓고 대립해 온 여·야도 정부의 입장 변화를 계기로 촉구결의안을 채택하는 쪽으로 사실상 합의했다.

차병석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chabs@hankyung.com

김인식 한국경제신문 정치부 기자 sskiss@hankyung.com
[뉴스로 읽는 경제학] 5만원.10만원 고액권 발행하나요?
고액권 발행에 반대해 온 재정경제부가 정치권의 합의를 전제로 사실상 고액권 발행안을 수용키로 입장을 선회하고,여·야 또한 '고액권 발행촉구 결의안'을 조만간 처리하기로 합의하면서 5만원권 10만원권 등 고액원 발행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고액권 발행을 내용으로 한 '한국은행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놓고 그동안 여·야는 물론 정부와 한국은행이 신경전을 펼쳐왔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번 법안을 발의한 한나라당은 법률을 개정해 고액권 발행을 강제하자는 입장인 데 비해,열린우리당은 국회 차원에서 고액권 발행 촉구 결의안을 마련해 정부를 압박하자는 입장이었다.

재경부와 한은은 아예 찬반론으로 입장이 확연하게 갈라져 있었다.

한은쪽에서는 1973년에 1만원권이 도입된 후 그동안 경제 규모가 커지고 물가도 크게 올라 고액권 발행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대해 재경부는 현재 경제 상황을 감안할 때 고액권을 반드시 발행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맞서왔다.

실제로 2004년 당시 박승 한은 총재가 화폐 선진화 방안으로 고액권 발행을 공론화시켰지만 재경부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그런데 또다시 정치권까지 이러한 논란에 가세하고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에는 고액권 발행이 과연 성사될 수 있을까.


○한은 여·야,"경제규모 확대와 물가상승으로 고액권 필요"

한은과 여·야가 고액권 발행의 첫번째 이유로 꼽는 것은 경제 규모의 확대다.

1만원권이 처음 등장한 1973년 이래 우리나라 경제 규모는 140배나 커졌고 물가는 12배나 올랐음에도 최고액권의 액면이 고정됨으로써 경제주체들이 일상 거래에서 큰 불편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은은 현재와 같은 물가 상승 추세가 지속된다면 10년 후 1만원권의 실질가치는 현재의 5000~7000원 정도 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수표 발행 비용도 문제다.

10만원권 자기앞수표 발행 비용이 연간 4000억원을 웃돌고 있으며,수표가 금고에 들어가 파쇄될 때까지의 비용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의 위상에 비해 화폐 액면가치가 너무 낮을 뿐 아니라,1만원권 5000원권 1000원권 등 3개에 불과한 권종을 다양화한다는 측면에서도 고액권 발행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여당 일부와 시민단체에서 탈세나 뇌물수수 등을 이유로 고액권 발행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지만 현금영수증 제도 등을 감안하면 이는 기우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재경부도 정치권 합의 수용,고액권 발행쪽으로 급선회

재경부는 신용카드 직불카드 등 전자화폐의 사용과 인터넷뱅킹의 발달로 현금 수요가 계속 줄고 있는데 굳이 고액권을 발행할 필요가 없다고 지금까지 주장해왔다.

게다가 고액권을 발행하면 화폐 착시현상이 일어나 심리적으로 물가를 끌어올릴 우려가 있다고 지적해왔다.

1만원 단위로 이뤄지던 거래가 5만원이나 10만원 단위로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고액권의 경우 자기앞수표와는 달리 음성적 거래를 추적하기가 어려운 만큼 현금을 이용한 뇌물 공여,소득 탈루 등이 크게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이러한 부작용을 차단할 수 있는 각종 제도와 장치를 완비한 다음 고액권 발행을 검토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참여정부에서의 고액권 발행이나 리디노미네이션(화폐 단위 변경)이 정치·경제·사회적 파장이 엄청난 화폐개혁으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으로 꼽혔다.

하지만 여·야가 고액권 발행에 사실상 합의함에 따라 재경부도 이를 추진하는 쪽으로 방향을 급선회했다.


○철저한 연구·준비 거쳐 부작용 최소화해야

고액권 발행에 따른 문제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화폐를 발행하는 데 따른 사회적 비용이 만만치 않을 뿐더러 물가 불안 등 충격 또한 적지 않을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고액권 도입으로 자영업자 등의 음성적인 무자료 거래(장부에 기재하지 않은 탈법거래)나 탈루가 성행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현행 화폐 단위가 도입된 지 30여년 동안 이를 그대로 사용함으로써 국내 거래는 물론 대외 거래에서 불편한 점이 많고,그에 따른 낭비와 비효율 또한 만만치 않은 게 사실이다.

특히 현재 최고액권인 1만원권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라는 위상에 비춰볼 때 구매력 가치가 너무 낮다.

그런 점에서 우리도 이제는 고액권 발행을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치권을 비롯한 정부와 화폐당국은 고액권 발행을 둘러싸고 주도권 다툼을 벌여서는 안 되며 충분한 시간을 갖고 철저한 연구와 준비과정을 거친 뒤에 이를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

무엇보다도 고액권 발행이 경제 전체에 미치는 파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대책 마련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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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어풀이 ]

◆권종=유통중인 지폐의 종류를 말한다.

우리나라에는 1만원권, 5000원권, 1000원권 3가지가 있으며 미국에는 1달러권, 2달러권, 5달러권, 10달러권, 20달러권, 50달러권, 100달러권 등 7가지가 있다.

유로화의 경우 5유로권, 10유로권, 20유로권, 50유로권, 100유로권, 200유로권, 500유로권 등 7가지가, 일본에선 1000엔권, 2000엔권, 5000엔권, 1만엔권 등 4가지가 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의 최고액권 가치는 평균 37만원이며, 최고액권의 가치가 한국보다 낮은 국가는 소말리아 수단 몽골 라오스 등 29개국에 불과하다.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한 나라의 화폐(모든 지폐와 동전)를 가치변동 없이 액면을 동일한 비율로 낮추거나, 새로운 통화단위로 화폐의 호칭을 변경하는 것으로 화폐단위변경으로 불린다.

예를 들면 1000원을 1원이나 10원 등 낮은 단위로 바꾸는 것을 말하며, 우리나라에서는 1953년에 100원이 1환으로, 1961년에는 10환이 1원으로 각각 변경됐다.

◆자기앞수표=발행인(은행)이 자기를 지급인으로 정하여 발행한 수표로, 발행한 은행이 도산하기 전에는 지급이 보장되므로 보증수표라고도 한다.

지급수단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