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이미 세계적으로 가장 보편적인 정치 체제가 되었다.
가혹한 독재자조차 표면적으론 민주주의를 전면에 내세운다.
민주주의는 절차적 정의로 의사결정 과정에 집단 소속원 전원이 참여하기 때문에 책임 역시 전원이 고루 나누어 진다.
민주주의는 그러나 종종 포퓰리즘으로 치닫기 쉽다.
민주주의는 왜 포퓰리즘이라는 함정으로 쉽게 빠져드는 것일까.
극히 우수한 능력을 가진 1인이나 소수의 귀족계급이 아닌 전체 국민 대중이 참여하는 정치체제가 갖는 본질적인 결함일까.
사실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현대의 민주주의는 수천년 인류역사에서 근대 이전까지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전까지는 소수의 집권자가 다수의 민중 위에 군림하는 독재체제가 대부분이었다.
오늘날 우리 모두가 누리고 있는 민주적 주권을 노예와 여성 등은 수천년 동안 누리지 못하고 살아왔다.
민주주의의 전형이라고 말하는 고대 그리스조차 노예와 여성의 정치 참여는 허용되지 않았다.
민주주의는 프랑스와 영국 미국 등의 시민혁명 과정을 거쳐 비로소 성취되었다.
민주주의는 '모든 인간은 동등한 기본권을 지닌다'는 평등주의를 바탕으로 한다.
◆플라톤 민주주의를 비판하다
철학사의 대사상가들 중에는 의외로 민주주의에 반대했던 사상가들이 많다.
대표적인 사상가가 플라톤,공자와 맹자 그리고 현대의 니체와 슈펭글러 등이다.
특히 플라톤은 철학의 고전인 '국가론'에서 민주제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는 인간이 동등하지 않기 때문에 민주제는 어리석은 체제라고 비판했다.
플라톤은 모든 인간에게 교육의 기회를 평등하게 준다고 해도 태생적으로 능력의 격차가 존재하며,이것은 후천적인 노력이나 교육으로도 극복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개개인의 능력 격차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뛰어난 능력을 지닌 자가 통치하며,열등한 인간은 통치당하는 것이 당연하며,이것이 결과적으로 전체 민중들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이상적인 모델로서 '철인 독재'를 제시하고,그보다 열등한 국가 체제들도 열거하고 있다.
이상적인 국가 모델인 철인 독재 다음으로는 통치력이 뛰어난 자가 지배하는 '명예주의 체제'이며,그 다음은 재물을 많이 소유한 자가 지배하는 '금권주의 체제'이다.
그리고 가장 열등한 정치 체제가 민주제이다.
오늘날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이해하기 힘들 정도다.
플라톤에 의하면 민주제는 개인적 우수성에 의해 지배자가 선출되지 않는다.
오로지 대중의 지지를 얻는 능력에 의해서 정치 지도자가 결정된다.
이런 면에서 민주제는 개인주의적이라기보다는 전체주의적으로 묘사된다.
상식적으로 민주제는 독재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플라톤에게 민주제는 대중에 의한 독재라는 점에서 독재의 일종일 뿐이다.
민주제보다 열등한 체제는 폭군제가 유일하다.
폭군제는 폭군 자신이 권력을 쟁취하며,그러기 위해서 폭력을 동반한다.
◆허점 많은 민주주의
민주주의자임을 자부하는 우리는 플라톤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혹한 평가에 대해 적지 않은 저항감을 갖게 된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의 지적에 일면 타당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민주제의 두드러진 특징은 지배자를 선출하는 '객관적' 기준의 부재이다.
명예제와 금권제에는 '통치력'이나 '재물' 등의 개인적 특질이 기준이 된다.
하지만 민주제는 그것조차 없다.
쉽게 말해 '아무나' 대중의 지지만 얻기만 하면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정치에 문외한인 연예인이나 운동선수가 선출되기도 하고,특정 집단이나 특정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선출되기도 한다.
선거제도는 마치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를 선정하는 방식과 같다.
책이 담고 있는 가치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선택되는가가 선정 기준인 것이다.
플라톤은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시민들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고 죽은 사건을 계기로 민주주의에 대해 심각한 회의를 품게 됐다.
소크라테스는 여론에 의해 사형 선고를 받았다.
이와 같은 민주주의의 오용 사례는 그 후의 역사에서도 꾸준히 되풀이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는 히틀러와 나치의 집권이다.
히틀러는 가장 민주적인 방식으로 집권하였다.
모든 대중이 그를 '자발적'으로 지지했다.
그리고 대중의 지지에 힘입어 그는 역사의 참극을 연출해냈다.
중국의 마오쩌둥이 주도한 '문화대혁명'은 마오의 선동에 의해 수많은 젊은이들이 파괴와 폭력의 광기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한국에서도 지지기반이 미약한 집권자는 언제나 대중의 감정을 자극하는 언동으로 지지를 끌어내고 있다.
이런 점들을 보면 민주주의는 정말 나쁜 제도인 것 같기도 하다.
◆참된 민주주의를 위한 지식인·지도층·언론의 역할
민주주의는 플라톤이 비판한 것처럼 언제든지 포퓰리즘으로 변질될 가능성을 태생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링컨이 정의한 민주주의는 '국민에 의한,국민을 위한 국민의 체제'이다.
이러한 민주주의가 한걸음만 더 내디디면 '대중이 원하면 무엇이든 괜찮다'는 식으로 발전하는 것이 어찌보면 자연스런 귀결이다.
그렇다면 참된 민주주의가 가능한 조건은 진정 무엇일까.
존 롤스는 '숙고된 합리성'을 통한 '질서정연한 사회'를 그 조건으로 제시한다.
우리 사회가 '숙고된 합리성'을 지니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은 무엇일까?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이 의식의 간극을 좁히고 동질성을 최대한 확보해나가는 것,숙고된 합리성을 갖춘 구성원들을 배출하는 대학 교육기회를 넓혀 가는 것 등이 그에 대한 필요조건이 될 것이다.
이와 함께 숙고되지 않은 비합리적 여론을 걸러낼 여과장치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그것은 사회 지도층과 지식인들,그리고 언론이다.
현대의 대의민주제(의회)는 단순히 시·공간적 제약에 의해서 채택된 것이 아니다.
여론을 여과하기 위한 장치의 역할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사회의 공동선을 위해서는 때론 대중에게 맞서고 대중을 타이를 필요도 있는 것이다.
지식인들과 언론도 마찬가지이다.
여론에 편승하고 영합하여 인기를 끄는 것보다 여론을 이끌고 비판하기도 하는 것이 그들이 해야 할 몫이다.
다만 그들의 정의감이 선민주의적 엘리트주의로 변질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마지막 조건이다.
이중한 에듀한경 연구원 doodut@eduhankyung.com
가혹한 독재자조차 표면적으론 민주주의를 전면에 내세운다.
민주주의는 절차적 정의로 의사결정 과정에 집단 소속원 전원이 참여하기 때문에 책임 역시 전원이 고루 나누어 진다.
민주주의는 그러나 종종 포퓰리즘으로 치닫기 쉽다.
민주주의는 왜 포퓰리즘이라는 함정으로 쉽게 빠져드는 것일까.
극히 우수한 능력을 가진 1인이나 소수의 귀족계급이 아닌 전체 국민 대중이 참여하는 정치체제가 갖는 본질적인 결함일까.
사실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현대의 민주주의는 수천년 인류역사에서 근대 이전까지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전까지는 소수의 집권자가 다수의 민중 위에 군림하는 독재체제가 대부분이었다.
오늘날 우리 모두가 누리고 있는 민주적 주권을 노예와 여성 등은 수천년 동안 누리지 못하고 살아왔다.
민주주의의 전형이라고 말하는 고대 그리스조차 노예와 여성의 정치 참여는 허용되지 않았다.
민주주의는 프랑스와 영국 미국 등의 시민혁명 과정을 거쳐 비로소 성취되었다.
민주주의는 '모든 인간은 동등한 기본권을 지닌다'는 평등주의를 바탕으로 한다.
◆플라톤 민주주의를 비판하다
철학사의 대사상가들 중에는 의외로 민주주의에 반대했던 사상가들이 많다.
대표적인 사상가가 플라톤,공자와 맹자 그리고 현대의 니체와 슈펭글러 등이다.
특히 플라톤은 철학의 고전인 '국가론'에서 민주제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는 인간이 동등하지 않기 때문에 민주제는 어리석은 체제라고 비판했다.
플라톤은 모든 인간에게 교육의 기회를 평등하게 준다고 해도 태생적으로 능력의 격차가 존재하며,이것은 후천적인 노력이나 교육으로도 극복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개개인의 능력 격차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뛰어난 능력을 지닌 자가 통치하며,열등한 인간은 통치당하는 것이 당연하며,이것이 결과적으로 전체 민중들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이상적인 모델로서 '철인 독재'를 제시하고,그보다 열등한 국가 체제들도 열거하고 있다.
이상적인 국가 모델인 철인 독재 다음으로는 통치력이 뛰어난 자가 지배하는 '명예주의 체제'이며,그 다음은 재물을 많이 소유한 자가 지배하는 '금권주의 체제'이다.
그리고 가장 열등한 정치 체제가 민주제이다.
오늘날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이해하기 힘들 정도다.
플라톤에 의하면 민주제는 개인적 우수성에 의해 지배자가 선출되지 않는다.
오로지 대중의 지지를 얻는 능력에 의해서 정치 지도자가 결정된다.
이런 면에서 민주제는 개인주의적이라기보다는 전체주의적으로 묘사된다.
상식적으로 민주제는 독재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플라톤에게 민주제는 대중에 의한 독재라는 점에서 독재의 일종일 뿐이다.
민주제보다 열등한 체제는 폭군제가 유일하다.
폭군제는 폭군 자신이 권력을 쟁취하며,그러기 위해서 폭력을 동반한다.
◆허점 많은 민주주의
민주주의자임을 자부하는 우리는 플라톤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혹한 평가에 대해 적지 않은 저항감을 갖게 된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의 지적에 일면 타당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민주제의 두드러진 특징은 지배자를 선출하는 '객관적' 기준의 부재이다.
명예제와 금권제에는 '통치력'이나 '재물' 등의 개인적 특질이 기준이 된다.
하지만 민주제는 그것조차 없다.
쉽게 말해 '아무나' 대중의 지지만 얻기만 하면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정치에 문외한인 연예인이나 운동선수가 선출되기도 하고,특정 집단이나 특정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선출되기도 한다.
선거제도는 마치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를 선정하는 방식과 같다.
책이 담고 있는 가치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선택되는가가 선정 기준인 것이다.
플라톤은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시민들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고 죽은 사건을 계기로 민주주의에 대해 심각한 회의를 품게 됐다.
소크라테스는 여론에 의해 사형 선고를 받았다.
이와 같은 민주주의의 오용 사례는 그 후의 역사에서도 꾸준히 되풀이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는 히틀러와 나치의 집권이다.
히틀러는 가장 민주적인 방식으로 집권하였다.
모든 대중이 그를 '자발적'으로 지지했다.
그리고 대중의 지지에 힘입어 그는 역사의 참극을 연출해냈다.
중국의 마오쩌둥이 주도한 '문화대혁명'은 마오의 선동에 의해 수많은 젊은이들이 파괴와 폭력의 광기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한국에서도 지지기반이 미약한 집권자는 언제나 대중의 감정을 자극하는 언동으로 지지를 끌어내고 있다.
이런 점들을 보면 민주주의는 정말 나쁜 제도인 것 같기도 하다.
◆참된 민주주의를 위한 지식인·지도층·언론의 역할
민주주의는 플라톤이 비판한 것처럼 언제든지 포퓰리즘으로 변질될 가능성을 태생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링컨이 정의한 민주주의는 '국민에 의한,국민을 위한 국민의 체제'이다.
이러한 민주주의가 한걸음만 더 내디디면 '대중이 원하면 무엇이든 괜찮다'는 식으로 발전하는 것이 어찌보면 자연스런 귀결이다.
그렇다면 참된 민주주의가 가능한 조건은 진정 무엇일까.
존 롤스는 '숙고된 합리성'을 통한 '질서정연한 사회'를 그 조건으로 제시한다.
우리 사회가 '숙고된 합리성'을 지니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은 무엇일까?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이 의식의 간극을 좁히고 동질성을 최대한 확보해나가는 것,숙고된 합리성을 갖춘 구성원들을 배출하는 대학 교육기회를 넓혀 가는 것 등이 그에 대한 필요조건이 될 것이다.
이와 함께 숙고되지 않은 비합리적 여론을 걸러낼 여과장치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그것은 사회 지도층과 지식인들,그리고 언론이다.
현대의 대의민주제(의회)는 단순히 시·공간적 제약에 의해서 채택된 것이 아니다.
여론을 여과하기 위한 장치의 역할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사회의 공동선을 위해서는 때론 대중에게 맞서고 대중을 타이를 필요도 있는 것이다.
지식인들과 언론도 마찬가지이다.
여론에 편승하고 영합하여 인기를 끄는 것보다 여론을 이끌고 비판하기도 하는 것이 그들이 해야 할 몫이다.
다만 그들의 정의감이 선민주의적 엘리트주의로 변질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마지막 조건이다.
이중한 에듀한경 연구원 doodut@ed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