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이나 모험보다는 안전한 직업을 선호하는 젊은이들이 너도나도 '공시(공무원 시험을 줄여 부르는 말)' 열풍 속으로 뛰어들고 있다. 우수한 인재들이 민간이 아닌 공공 부문에 몰리는 현상을 보면서 "10년 뒤 한국은 과연 무얼 먹고 살 것인가"에 대한 걱정도 커지고 있다.

각 대학들의 겨울방학이 시작되면서 대학가 주변 상가는 썰렁해진 대신,공무원 시험 중심지인 노량진ㆍ종로 일대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계속되는 취업난과 고용불안 속에 '공시'로 몰려드는 대학생들 때문이다. 웬만한 대학의 도서관은 이미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들이 장악한 지 오래다. 열람실 책상 둘에 하나 꼴로 공무원 시험에 관련된 수험서가 놓여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최근에는 대학 졸업을 앞둔 학생들 뿐만 아니라 '잘 나가는' 대기업을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는 이들까지 점차 늘고 있다. 고용이 안정적인 데다 정년 뒤 연금 혜택까지 있어 공무원직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최근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청년층 취업준비자 10명 중 4명 꼴로 7급 혹은 9급 일반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교사 등 다른 직종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준비생까지 모두 합치면 2명 중 1명꼴(48.5%)로 공무원 시험준비에 매달리고 있다고 한다.

◆'괜찮은 일자리'가 없다


공직에 나가려는 젊은이들이 이처럼 많은 것은 '안정성'을 직업 선택의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 탓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대량 실직사태를 목격한 젊은이들이 '뭐니뭐니 해도 안정적인 게 최고'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 높은 연봉을 주는 대기업에서 일찍 '잘리는' 것보다 조금 적게 받더라도 긴 정년을 보장받는 게 경제적으로 유리하다는 의미의 '생애 기대소득 가설'도 이 같은 논리를 뒷받침하고 있다. 실제로 평생 버는 전체 소득을 따지면 퇴직 후 퇴직금과 국민연금을 받는 민간기업보다 오래 근무할 수 있고 공무원연금을 받는 공무원직이 오히려 더 높다는 분석도 있다.

경제가 활력을 잃으면서 대졸 이상 고학력층의 눈높이에 맞는 '괜찮은 일자리(decent job)'가 점점 줄고 있는 것도 공무원 선호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일자리가 많이 늘어난 직업은 청소원(24만3000명) 경비직(13만8000명) 학원강사(13만1000명) 웨이터(12만9000명) 부동산중개인(12만6000명) 등이었다. 정부는 '사회적 일자리' 창출 등을 통해 5년 동안 80만개의 일자리를 새로 만들겠다고 공언했지만 실상은 저임금,비정규직 직종이 대부분이었다는 얘기다.

기업에 대한 행정 규제를 대폭 완화해 양질의 일자리가 공급되도록 하지 않으면 이 같은 공무원 시험 열풍을 해소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민간 부문의 '인재 엑소더스'


우수한 자질을 가진 인재들이 공무원 등 공공 부문으로만 몰리면서 기업 등 민간 부문에는 '인재 부족 현상'이 현실화하고 있다. 지난달 대한상공회의소는 기업의 71.9%가 핵심 인재 확보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인재 확보에 미래가 걸린 기업들은 경영진이 주요 대학을 돌며 핵심 인재 구하기에 나서는 등 대책 마련에 바쁘다.

중견ㆍ중소기업으로 갈수록 이 같은 현상은 더 심각하다.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한결같이 인력 수급에 차질을 빚는다고 호소하고 있다. 한 중견 자동차부품업체 사장은 "직원 10명을 뽑아놓으면 1년 안에 나가는 직원이 절반"이라며 "급여 수준도 대기업의 95%까지 끌어올렸지만 '회사에 비전이 없다'며 나가는 것을 붙잡기엔 역부족"이라고 털어놨다. 민간 부문의 이 같은 높은 이직률은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려 우리 경제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

젊은이들 사이에 '도전 정신'이 사라지고 있음을 우려하는 시각도 많다. 과감하게 민간 기업에 뛰어들어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겨보겠다는 패기는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 대신 안정적인 공무원이나 공기업에 취직해 편안한 삶을 추구하려는 경향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부활하고 중국의 뜀박질이 빨라지고 있는데 그동안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사람의 힘''도전하는 정신'까지 사라진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과연 누가 끌고갈 것인가.

차기현 한국경제신문 생활경제부 기자 kh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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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조직은 언제나 몸집 불리는 관성있다'

파킨슨 법칙

공무원의 특징을 꼬집는 용어로 가장 유명한 것이 파킨슨 법칙(Parkinson's law)이다.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경영연구가인 시릴 파킨슨은 1955년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에 현대 각국의 공무원 수 증가 현상을 실증분석을 통해 이론화한 법칙을 발표했다.

파킨슨 법칙이란 '공무원은 해야 할 일의 많고 적음이나 경중에 관계없이 승진하기 위해서는 공무원 수가 많을수록 좋기 때문에 항상 일정한 비율로 증가한다'는 것.

파킨슨 법칙은 이외에도 '유능하지 못한 사람은 공무원과 군인이 되고 유능한 사람은 비즈니스맨이 된다''예산심의에 필요한 시간은 예산액에 반비례 한다''업무는 그에 할당된 시간만큼 늘어지게 돼 있다''공무원은 서로를 위해 서로 일을 만들어 낸다'는 등 신랄하고 풍자적인 내용들도 담고 있다.

파킨슨 법칙은 영국 식민성이 관리할 식민지가 크게 줄었어도 직원은 오히려 늘었다는 실증적 연구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1935년 영국 식민성의 행정직원은 372명에 불과했지만 19년이 지난 1954년에는 1661명으로 늘었다. 2차대전 이후 식민지가 대거 독립했는데도 식민성 직원은 오히려 5배나 늘어난 것이다.

국내에서도 파킨슨 법칙이 맞아 떨어지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1998년 2월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서 옛 총무처와 내무부를 행정자치부로 합쳤다. '작은 정부'를 구현한다며 조직을 슬림화한 것이었다. 하지만 옛 총무처 업무는 일부만 행자부에 남고 대부분 중앙인사위원회로 넘겨져 부처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다. 게다가 내무부가 맡던 민방위ㆍ재난관리 업무는 소방방재청으로 확대됐다.

이로써 8년 만에 옛 총무처와 내무부를 합친 조직보다 공무원 수는 훨씬 늘어났고,행자부는 복수차관제를 도입해 차관이 둘로 늘었다. 중앙인사위도 사무처장을 차관급으로 격상토록 입법예고했으니 조직은 더욱 커지게 됐다.

인구가 줄어드는 지방자치단체를 둘러봐도 이 같은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예컨대 경상북도 인구는 최근 5년 새 10만1000명이 줄었지만 공무원 수는 오히려 817명이 늘었다. 같은 기간 공무원이 감소한 기초자치단체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