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이후에는 무엇을 하면서 살아갈 계획이십니까? 노후자금은 잘 준비되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의 부모가 이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어떻게 대답할까.

자신있게 노후 계획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부모는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될까. 회사일을 하느라,여러분을 뒷바라지 하느라 정신없이 지내다보니 어느덧 퇴직 이후를 걱정해야 할 나이가 가까워졌는데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혹시 아닐까.

◆늘어난 수명,변함없는 은퇴연령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사회에 진입하고 있다.

2000년 75세인 평균수명은 2010년 78.8세,2020년에는 80세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평균수명이 늘어나게 되면 일하는 나이도 함께 늘어나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60세가 되면 은퇴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직장들도 정년을 늘리지 못하고 있다.

'은퇴=60대'라는 개념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130년 전 독일에서 제시된 개념이다.

독일연방공화국의 토대를 마련한 오토 폰 비스마르크 총리가 연금지급 나이를 65세로 정한 데서 비롯됐다.

하지만 그 당시 평균 수명은 46세였다.

지금의 연령 분포도를 적용하면 은퇴 시기가 104세에 해당하는 셈이다.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도 1930년대 뉴딜 정책을 입안하면서 연금을 지급하는 은퇴 연령을 62세로 정했는데,그 당시 미국인들의 평균 수명은 63세였다.

당시에 정한 은퇴 연령은 사실상 평균수명까지 일하라는 얘기였다.

평균수명이 80세에 근접하는 사회로 접어든 상황에서 은퇴 연령을 60대 또는 50대 후반으로 정한 것은 지나치게 빠른 것이다.

한창 일할 나이에 은퇴를 한다는 얘기인데,사회적으로 경험이 축적된 노동력을 상실해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부정적인 효과를 낳게 된다.

한국은 전쟁 직후인 1955년부터 피임약이 출현한 1963년 사이에 베이비붐 현상을 겪었다.

현재 나이 43~51세인 베이비붐 세대는 바로 여러분의 부모들이다.

당시 해마다 출생자 수가 100만명을 넘어 현재 총인구의 16.8%를 차지하고 있다.

◆후진적인 한국의 은퇴 문화

여러분의 부모들 중 상당수는 자신의 부모를 어떤 형태로든 부양하고 있지만 정작 여러분들로부터는 전혀 도움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사교육비로 엄청난 돈을 썼기 때문에 갖고 있는 재산은 집밖에 없고,국민연금 등의 사회 안전망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외국계 은행인 HSBC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놀랍게도 100명 가운데 66명이 "노후를 위한 은퇴자금이 얼마나 필요한지 계산해본 적이 없다"고 응답했다.

전 세계 평균으로 100명 중 54명이 은퇴자금을 계산해본 적이 없다고 응답한 것과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그 수치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은퇴를 준비하기 위해 전문가와 상담해본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10%에 불과해 전 세계 평균치(30%)의 3분의 1에 그쳤다.

은퇴를 준비하는 방법도 한국 사람들은 매우 '후진적'이다.

신한은행이 20세 이상 고객 6483명을 대상으로 최근 이메일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응답자의 35%가 노후대책으로 '부동산 가격 상승'을 꼽았다.

아파트 한 채의 가격변동에 노후생활의 모든 것을 걸고 있다는 얘기다.

나라마다 저축하는 방식은 제각기 다를 수밖에 없지만 재산의 거의 대부분을 거주하는 아파트에 쏟아붓고 가격 상승을 기대하는 행태는 매우 이례적이다.

은퇴에 대한 한국인들의 사고방식도 선진국 국민들과는 차이가 있다.

한국인들은 은퇴를 '인생의 끝을 향한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서는 것'이라고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하루 종일 회사업무에 매달릴 뿐만 아니라 퇴근 후에도 주로 직장 동료들과 어울리다보니 '회사인간'으로 살아가는 데 매우 익숙하기 때문이다.

회사와의 인연이 끊어지면 대부분의 인간관계가 단절되고,집에 머물러 있는 것조차 생소하게 느껴져 공포와 두려움에 떨게 된다.

반면 대다수 외국인은 직장생활을 열심히 하면서도 가족과의 관계를 돈독히 유지하는 가정적인 생활을 해왔다.

저녁식사를 가족과 함께 하고 주말을 같이 보내기 때문에 은퇴는 인생의 일부분만 바뀌는 것이고,적극적으로 생각하면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은퇴를 행복하게 생각하게 된다.

가정의 따뜻한 격려를 받으며 은퇴를 인생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승윤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hyuns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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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후 아파트 한 채로 버티겠다고? 안된다

이제부터라도 은퇴에 대한 사회적인 통념을 혁명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아파트 한 채로 버티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노후자금을 구체적으로 준비해야 하고,새로운 직장이나 봉사활동을 포함한 삶을 지금부터 설계해야 한다.

미치 앤서니 어드바이저 인사이트 사장은 그의 책 'The New Retirementality'(은퇴혁명)에서 "은퇴란 부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은퇴할 재력이 있더라도 경주에서 완전히 물러나는 것은 최악의 선택이다"고 말했다.

"카리브해 연안에서 열대음료를 홀짝거리며 인생을 편안하게 쉬는 것이 금융계에서 제시하는 환상이지만 편안한 생활을 누리고 있는 은퇴자들은 경주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고 그는 밝혔다.

쓰러져가던 미국 자동차회사 크라이슬러를 회생시키고 미국 대통령 후보로까지 거론됐던 리 아이아코카조차도 1996년 포천지를 통해 "나의 은퇴생활은 실패했다"고 고백한 것을 보면 돈이 행복한 노후생활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2008년 7월에 은퇴해 자선사업 활동을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나,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이 "2009년 임기가 끝난 뒤 자선활동을 제2의 풀타임 직업으로 삼겠다"고 말하는 등 세계 최고의 부자들도 예외없이 은퇴 이후의 직업을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 엄청나게 쏟아져 나올 은퇴자들이 일을 즐기면서 가치 있는 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은퇴혁명은 지금 당장 준비하고 실천해야 나중에 성취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생글 독자인 학생 여러분들에게는 아직 먼 얘기 같지만 젊은 우리도 인생 전체를 한번쯤은 조망해볼 필요도 있다.

지금 여러분의 부모님들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