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뿐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과격시위의 소용돌이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세계화(지구화)가 가속화되면서 '반세계화'를 주장하는 측에서 각종 시위를 주도하는 형국이다.

그렇지만 주요 선진국에선 합법적인 집회와 시위 자유는 보장하면서도 합법의 테두리를 넘는 행동에 대해서는 예외없이 엄벌로 다스리고 있다.

'폴리스 라인'(police line)을 넘어서거나 폭력을 사용하는 집회에 대해선 경찰의 무자비한 곤봉세례와 체포는 물론,막대한 손해배상 소송으로 끝까지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평화적인 집회는 최대한 보장한다.

백악관 앞에서도 수시로 피켓을 든 시위대를 볼 수 있다.

하지만 폴리스 라인을 넘는 등 법규를 위반한 불법·폭력시위에 대해선 단호히 응징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미국 경찰은 2003년 봄 샌프란시스코에서 반(反)이라크전쟁 시위가 벌어졌을 때 1300여명을 체포했다.

1999년 시애틀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 반대시위 때는 최루탄을 사용하며 시위대를 무차별 진압했다.

프랑스에선 시위대가 총포류는 물론 화염병과 같은 인명 살상 가능성이 있는 무기를 소지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폭력시위가 발생하면 전문 진압병력을 현장에 투입,철저하게 불법행위자들을 체포한다.

선진국들은 또 허가받지 않은 불법 시위나 파업인 경우엔 평화적으로 진행됐더라도 참가자들에게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끝까지 책임을 물린다.

온정주의나 포퓰리즘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그래야만 법의 권위가 서고 사회질서가 유지되며 궁극적으로 시민들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난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25년 만에 미국 뉴욕 대중교통노조가 파업을 일으켰던 게 대표적인 사례.당시 뉴욕 교통노조는 어떤 폭력도 사용하지 않고 사흘 동안 평화적 시위를 고수했지만 시민들은 걸어서 출퇴근해야 하는 불편을 겪었다.

평화적이었지만 불법인 파업에 대해 미국 정부와 법원,시민들이 보인 태도는 가혹하리만치 준엄했다.

노조의 행동(파업)이 불법적으로 타인(출퇴근하는 시민들)의 자유를 침해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건 발생 4개월 후 뉴욕주 지방법원은 뉴욕교통노조 위원장에게 불법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징역 10일과 벌금 1000달러(약 100만원)을 선고했다.

파업이 오래 전에 끝났지만 불법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져야한다는 것이었다.

노조위원장은 "불법 파업인 점은 인정하지만 노조원의 권익을 지키기 위한 시민 불복종 운동이었다"고 항변했지만 '어찌됐건 파업은 불법'이라는 재판정의 준엄한 심판 앞에 고개를 숙여야 했다.

개인에 대한 처벌은 상징에 불과했다.

불법파업을 주도한 노동조합에 대해 하루 100만달러씩 총 300만달러(약 30억원)의 벌금이 부과됐기 때문이다.

노조 건물을 팔아서라도 갚아야 할 만큼 큰 액수였던 것이다.

독일의 경우도 불법 파업 참여자에게 징벌적인 손해배상을 물리고 있다.

'규칙은 철저히 지킨다'는 독일 국민들에게 '불법'파업은 용납하기 힘든 '사태'로 간주된다.

일부 노조가 복면을 쓰고 파업을 하려하자 독일 사법 당국은 '복면을 하는 행위 자체에 대해 1년 징역'이라는 법규를 들어 불법 가능성을 싹부터 없앴다.

이에 따라 독일에서는 불법파업이 현저하게 줄었다는 평이다.

과격한 폭력시위 문화가 생활화된 한국 시위대가 이렇듯 엄격한 외국의 시위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국제문제가 된 경우도 있다.

홍콩에서 열린 WTO 반대시위에서 한국 원정시위대의 각목,쇠파이프를 동원한 '폭력시위'가 현지인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당시 시위 주동자는 홍콩 경찰에 억류돼 3개월 동안 돌아오지 못하기도 했다.

올초 미국에서 열린 한·미 FTA 반대 원정시위의 경우 미국 당국은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한국 시위대의 출국 전부터 불법행동은 엄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결국 원정시위대는 현지 한국인 변호사를 통해 '경찰이 허용한 폴리스라인을 어겼다가는 즉각 체포돼 강력한 제재를 받는다'는 것을 골자로 한 미국 집회·시위 관련 법률 교육을 받아야 했다.

물론 구미의 경우라도 폭력 또는 불법 시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올초 프랑스를 강타한 최초고용계약제(CPE) 반대 시위다.

프랑스 정부가 23%에 달하는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용 유연성을 내걸고 추진했던 CPE는 프랑스 전역에서 10주간에 걸쳐 프랑스 역사상 최대인 300여만명 학생과 노조원들이 참여한 대규모 시위로 결국 철회됐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가 CPE 철회의사를 밝히며 시위대 요구를 수용하고서야 소요가 마무리됐다.

격렬한 시위로 법안이 무효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청년실업 해소라는 근본문제는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다.

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시위에 대해 반세계화를 주장하는 측에선 신자유주의 공세에 대한 중요한 승리라고 평가하지만,이 조치가 치열한 국제경쟁 속에서 프랑스 기업의 경쟁력 약화를 가져오고 고실업에 대한 해결책을 포기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진보와 변화를 주장하는 측에서 변화를 거부하고 기득권 지키기에 안주했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장 로베르 피트 소르본대 총장은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모든 것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으면서도 일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는 다른 사람들의 실수로 몰아붙인다"며 대안없는 시위문화에 대해 비판했다.

김동욱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