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시위는 근대의 산물이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전후로 활성화된 대중 시위는 19세기 유럽을 '혁명의 시대'로 결정지었고,이는 도시의 모습에도 큰 변화를 줬다.

프랑스 파리의 경우 나폴레옹 3세는 황제로 등극한 후 대대적인 도시개조 작업에 나선다.

1789년 이후 인구가 두 배로 늘어난 파리를 개조한다는 명분으로 이뤄진 도시개조 작업은 각종 민중봉기를 막는데 주안점을 뒀다.

1789년 이래 파리는 크고 작은 정변에 시달렸고,당시 비좁은 파리 시가지는 시위대가 공권력과 맞서는데 유용하게 활용된 무대였다.

협소하고 복잡한 도로에 바리케이트를 치던 관행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나폴레옹 3세는 도로를 넓히고 직선화해 신속하게 군대와 경찰을 투입할 수 있도록 고쳤다.

현재의 파리의 아름다운 모습은 이런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도 마찬가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오스만투르크의 침입을 막던 빈 구시가 성벽을 허물고 19세기에 그 자리에 환상형의 도로인 '링슈트라세'를 건설했다.

반지 모양의 이 도로는 군대와 경찰이 빠른 속도로 시내 이곳저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데 주안점을 뒀는데 1848년 이후 독일과 오스트리아 각지에서 빈발하던 각종 시위에 대한 두려움이 도시 모양까지 바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