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다가오면서 전국 곳곳이 각종 시위로 시끄럽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는 지난 11월29일 경찰의 집회 원천 차단 방침에도 불구하고 '범국민 총궐기대회'를 강행했다.

민주노총 역시 국민적 우려에도 정치적 성격이 강한 총파업을 강행했다.

민주노총 산하 현대자동차 노조의 경우 7일에 한 번꼴로 파업을 하는 부끄러운 기록을 세웠다.

전국이 이처럼 '시위 공화국'으로 변하는 상황에서 불법·폭력 시위에 대한 일반의 경각심이 높아진 전환점은 11월22일 있었던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의 1차 집회였다.

당시 광주시청과 충남도청에서 시위대의 투석과 방화로 시청 건물 유리창과 집기가 파손되고 많은 부상자가 속출했다.

죽봉과 각목이 시위 현장에 다시 등장했고 전·의경의 방패를 빼앗아 불태우고 경찰 버스를 부수는 시위대의 폭력 행태도 재연됐다.

보도블록이 전·의경을 향해 날아가는 흉기로 변했고,100m가량 나란히 심어져 있던 대전시청 담장의 향나무들도 대부분 불에 탔다.

검찰에 따르면 당시 전국 13개 지역에서 발생한 한·미 FTA 반대 폭력시위로 6억7000만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하고,경찰관 35명 등 총 63명이 다쳤다.

전국 각지에서 시위대의 불법 차로 점거로 인한 교통체증으로 발생한 손실을 비롯해 같은날 열린 민주노총의 총파업,전교조의 불법 집단 연가투쟁에 의한 손실을 합친다면 손실 규모는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이처럼 폭력·과격 시위가 빈발하고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정부는 같은달 24일 한명숙 총리 주재로 긴급 관계장관회의를 연 후 김신일 교육부총리,김성호 법무부 장관 등의 공동 명의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정부는 담화문에서 "불법·폭력에 대해 더 이상 관용은 없다"면서 "위법한 행위를 하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감수토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불법·폭력 집단행위에 대해 형사처벌은 물론 징계와 민사상 손해배상청구 등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단순 가담자를 기소유예하던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 약식 재판을 통해 벌금을 부과하고,기소해 법정에 세우는 등 형사처벌을 강화하기로 했다.

핵심 가담자는 구속 수사도 배제하지 않기로 했다.

또 불법을 저지르거나 교통혼잡을 야기한 전력이 있는 단체의 도심 집회는 원칙적으로 금지키로 했다.

그러나 정부 발표 이후에도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나 민주노총 등은 정부가 헌법에 보장한 집회결사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비판하며 강경 시위 노선을 견지해 마찰이 계속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법 질서가 무너지고 이익단체들이 공권력을 무력화하는 '떼법 만연' 현상이 번지는 이유로 법원·검찰·경찰 등 소위 준법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크게 훼손된 점을 꼽는다.

권위주의 통치를 벗어난 지 20년이 지났지만 과거의 굴레가 여전히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정 이익단체들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정치권력을 우습게 보는 것도 한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러한 법 질서의 훼손과 공권력 무력화,정부의 신뢰 상실 등은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근간부터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국민들은 무엇을 기준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우왕좌왕하고 있고,경제인들은 정부 정책이 보내는 신호를 믿고 따를 수 없어 관망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긍정적인 변화의 신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강경 투쟁을 주도하는 조직 내부에서도 강경 일변도의 시위문화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평화적 시위문화의 모범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11월25일 2만5000명이 모인 한국노총의 '전국노동자 대회'는 평화집회 공약을 실천해 호평을 받았다.

김광두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무질서의 비용은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의 후진화를 가져온다"며 "무질서가 이어질 경우 국제사회에서도 한국을 우습게 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동욱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기자 kimdw@hankyung.com